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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삶과 사랑 사이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2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

 

 

 

보고 싶지 않은 내 뒷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햇살 살아있는 하늘에서 별안간 뚝뚝 떨어지는 빗줄기 사이에, 번화한 도로 한가운데서 연명되고 있는 가로등불에,

무심결에 귓가를 어지럽히는 수상한 단어들 안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저편 아니 더 저편 멀리에,

고개 너머 시간에게 모질게 전가하고 왔다고 여겼던 뒷모습이 독충의 독처럼 퍼진다.

아니, 어쩌면 뒷모습보다는 뒷모습을 끌고 가던 빈곤한 그림자가 내겐 독이었을지도 모른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은 되새기지 않기로 했었다. 돌아갈 수 없는 길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었다.

날 수 없었던 하늘은 그저 외면하기로 했었다. 부서진 탁자는 폐기하기로 했었다.

그런데도, 가끔씩 이끌려오는 까닭은 잠시나마 그것이 내 삶의 어쩔 수 없는 일부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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