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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삶과 사랑 사이

외출

인터넷이 안 된다고 컴을 놀릴 수는 없는 법. 그건 무한기능 컴퓨터를 모독하는 일이니까~

인터넷이 안 되던 이달 초, 한국 영화 '외출'을 보았다.

작년 연말, 우리나라에 갔을 때 동생이 만들어준 영화 CD중의 하나다. 뭐, 줄거리는 단순하다.

 

 

아내에게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강원도의 어느 도립병원으로 달려온 무대 조명감독 인수(배용준).

수술실 앞에는 그의 아내와 차에 동승했던 남자의 아내인 서영(손예진)이 망연한 표정으로 앉아있고,

경찰서에서 사고 유류품을 챙기던 인수와 서영은 자기들의 아내와 남편이 불륜임을 알아채는데...

 

 

 

아내 디카에서 동영상을 본 인수가 중환자실의 의식 없는 아내를 향해 던지는 말, "너 차라리 죽지 그랬니?"

나 같으면 설령 중환자실에 움직임 없이 누워있다하더라도 그냥 외면해버렸을 텐데...

신뢰는 분명 사랑보다 선행되어야 마땅할 덕목일 텐데...

그 믿음을 저버린 배우자에 대해 조금이나마 정과 연민이 필요했을까.

 

 

 

서영이 인수에게 건네는 말, "일단 깨어났으면 좋겠어요. 뭐라 변명이라도 듣고 싶은데."

어리석기 그지없는 천진한 백성이다. 변명은 변명일 뿐.

 

 

 

같은 병원, 게다가 간호를 위해 투숙한 여관까지 같은 인수와 서영.

그러다가 서서히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무언지 모를 감정이 들기 시작하면서 밤을 보내는 두 사람.

인수의 아내는 깨어나고 서영의 남편은 세상을 등진다.

서영은 남편을 향해 하염없이 흐느낄 뿐. 깨어난 아내에게 인수는, "처음엔 궁금한 게 많았는데, 지금은 없어."

그도 잠시 외출했었음을, 그 감정의 앙금을 인정하기 때문일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인수. 무대 조명 아래 눈부시게 환히 웃는 그.

화려한 조명 틈, 서영이 좋아하는 봄과 눈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거리에 그녀가 남긴 말이 그를 흔든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극장에서 봤더라면 어쩌면 꾸벅꾸벅 졸았을 영화다. 어여쁜 두 주인공의 모습 이외엔 크게 특별하지는 않다.

다만, 가장 중요한 신뢰가 묻혀버린 상황 속에서 절망하는 그와 그녀의 표정이 마음 아리게 남는다.

높디높이 쌓아올린 신뢰가 헤아릴 수 없이 아득하게 무너지는 그 장면이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영화 속의 서영처럼 '난 어디로 가야 할까'라고 반문했겠지.

 

 

눈 앞에 봄길도 보이고 꿈길도 보입니다.

저기 푸른 고지를 향해 모두 벗어던지고 달려가도 괜찮겠죠?

정말 마지막이면 좋을 눈이 또 내리는 비엔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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