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나폴리 바다를 보았음에도 이상스레 바다에 목말랐었다.
가을이 던져놓은 메마름 때문에 몸 속 물기가 빠져나가는 중이었을까. 바다로 떠나기로 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떠나는 아침은 여느 아침보다 더 분주하다.
전날 밤, 하늘에 달무리가 일더니 아침 길은 변덕의 집합체이다. 흐리다가 빗방울이 보이다가 햇살이 내리쬔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와 클라겐푸르트를 지나 국경을 넘어 슬로베니아로 들어가니, 국경에서 100m도 채 안 되는 거리에
통행 요금 징수하는 곳이 있다. 오스트리아와는 다르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체계다.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는 구간별로
통행요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운행 기간에 따라 자율적으로 통행권을 부착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1년치 요금이
70유로(9만원) 정도이니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하다.
통행 요금을 내고 톨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차량들이 꼼짝도 않고 정체해 있다.
벌써 12시가 넘었는데, 요금까지 무지하게 받아놓고는 이게 뭔일이래.
정체가 장기화 될 것 같은 예감에 김밥과 유부초밥을 꺼내놓고 요기를 하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도로에 나와있던 사람들이 갑자기들 차에 오른다. 어, 생각보다 일찍 뚫리네.
알고보니 범인은 눈 앞에 있던 터널이었다.
7.5Km나 되는 긴 터널이 보수공사 중이라 왕복 통행이 안 되었기에, 터널 양쪽 밖의 차량들을 번갈아 통행시키는
지극히 원시적인 방법을 쓰고 있던 것이다. 아니 그럼 말을 해 주든가. 아니, 우리가 슬로베니아 말을 못 알아들은 걸 수도.
슬로베니아는 유고연방공화국에서 독립한 인구 200만의 작은 나라로, 동유럽에선 경제력이 괜찮은 편이라 한다.
수도 류블랴나 시가지엔 서울처럼 고층아파트들이 많다. 나즈막한 주택들도 무채색 일색.
슬로베니아에서 1시간도 못 되어 금세 크로아티아다.
크로아티아 역시 슬로베니아처럼 유고연방공화국에서 독립한 나라다.
도로 이정표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세심하게 그리고 빠르게 안내한다.
40km넘게 이어진 아드리아 해안에 자리한 오파티아. 토파즈와 에머랄드를 풀어놓은 듯한 바다빛이 무척 예쁘다.
바다 저편 하늘은 조금 흐려 보인다.
모래톱을 막아 해안을 둘러선 석회암들마저 뿌연 가을에 물들어 있고, 잴 길 없는 수심은 속이 훤히 보이게 맑다.
호텔에서 들고온 지도를 보며 도시 중심을 향해 보기로 했다.
아직도 늦여름 같은 정취, 그러고 보니 비엔나보다 훨씬 따스하다.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허리에 매단 채 북적거리지 않는 오파티아 거리를 걷는 기분이 경쾌하다.
오파티아 중심가에서 몸을 돌려 다시 해안을 걷는다.
아까 호텔 엘리베이터에 걸려있던 날씨 정보엔 낮 최고 기온 22도, 수온 18도라 했던가.
한여름인 양 바닷속에서 첨벙거리는 사람들도 있고 해안에서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속이 다 비치는 훤한 바닷물, 그 가장자리의 크고 작은 석회암들.
그리고 신나는 놀잇감을 발견한 듯 석회암 사이사이를 드나드는 주먹만한 게들에게 홀린 밥돌들.
물 젖은 바윗돌 위를 아슬아슬 지나다가 휘청이면서도 용케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뭐하나, 바위에 붙어사는데 이력 난 게들이 그대들 손에 흔쾌히 잡혀줄까나.
게를 잡아 키우느니 삶아먹느니 하던 유쾌한 수다는 물 건너가버리고 즐거움만 남았다.
온유한 가을 저녁. 토파즈빛 가득 채운 아드리아의 하루가 지고 있다.
< 20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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