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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서유럽 이야기

영국 3 : 헬로, 노팅힐

우리 가족에겐 여행시의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

아침 일찍부터 여행지 탐험에 힘쓸 것. 그런데, 이 호텔은 도무지 우리의 약속에 협조를 해 주지 않는다.

평소엔 7시 30분부터인 아침식사 시간이 휴일엔 8시부터란다. 뭐, 별 수 없다. 안 먹고 움직일 순 없으니.

 

게다가 유럽 대륙에 있는 국가보다 호텔비는 훨씬 비싸면서 식사는 왜 그리 부실한지.

오늘도 어제처럼 해 구경은 틀린 것 같은데, 일조량 결핍증인지 길가 승용차 안에선 한 남자가 잠에 취해 있다. 

 

호텔 근처의 하이드파크엔 벌써 사람들의 흔적이 보인다.

우리도 가서 흔적 하나 남겨볼까.  흐리고 을씨년스런 하늘 아래 공원 분수대는 굵은 물줄기를 내뿜는다. 

물줄기에서 떨어져나온 물방울 빛깔마저 흐린 아침, 백조와 비둘기 떼의 날개짓마저도 뿌옇다. 

 

하이드파크
하이드파크

역시 오늘도 '1일 트래블카드'를 구입하러 지하철 역으로 갔다.

런던 중심가를 둘러볼 예정이기에 1-2존짜리로도 충분하다. 휴일이라 오프피크타임용인데도 요금은 4.9파운드.

하루종일 버스, 지하철, 트램을 제한 없이 탈 수 있지만 카드를 들여다볼수록 비싸다는 생각.

물론 1회권 요금인 3파운드에 비하면 횡재 수준이지만, 빈의 1주일용 교통카드가 12.5유로인 것에 비하면 비싸다.

그럼 이제, 어제부터 잔뜩 재미들린 2층 버스 타러 간다.

 

여행객들이 런던에서 버스를 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버스 2층 전망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2층 앞자리가 주는 시원스런 눈높이의 매력을 떨쳐지 못하고, 가까운 거리도 2층까지 오르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한다.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 주연의 만화 같은 영화 '노팅힐'의 배경을 찾아 무작정 찾아간 노팅힐 거리.

노팅힐이라 이름된 정류장에서 내려 한참을 궁리해도 영화의 무대인 시장통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럼, 물어봐야 하는데. 그때 어디선가 계속 똑똑 하는 소리가 난다.

간이 레스토랑에서 혼자 아침을 먹던 젊은 남자가 작은밥돌이 모자 떨어뜨린 걸 보고 애타게 알려주고 있다. 

 

꽤 많이 걸어 다다른 노팅힐 시장 거리는 상점들이 대부분 개점하기 전이라 한산하고 조용하다.

영화 속 휴 그랜트의 서점이 이쯤 어디였던 것 같은데.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포토벨로 마켓을 거니는 발걸음이 가볍다.

 

노팅힐
노팅힐 포토벨로마켓

노팅힐에 아쉬움을 묻은 채, 버스를 탄다. 다행히 아까처럼 2층 앞자리가 비어있다.

파리나 로마, 빈과는 달리 런던 거리엔 벽돌을 그대로 드러낸 건물들이 무척 많다.

갖가지 색깔의 벽돌들은 회색빛 하늘과 묘하게 어우러져 고풍스럽고 독특한 런던의 품격과 개성이 된다.

금세 런던의 관문인 빅토리아역이다.

  

 

빅토리아역

빅토리아 역에서 가만히 지도를 보며 길 따라 걸어가면 출현하는 버킹엄 궁전.  

버킹엄 궁전은 1837년 빅토리아 여왕 때부터 왕실 주거지가 되었으며, 궁전 앞 광장엔 금빛 천사가 놓인 기념비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궁전 울타리를 둘러싸고 있다. 담 안으로는 무표정한 근위병들만 보일 뿐 작은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는다.

지금은 일반인의 궁전 관람이 금지되는 시기로, 중앙에 왕실 깃발이 걸려있으면 궁전 안에 여왕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역시나 주변에 넘치고 또 넘치는 한국말.

 

버킹엄 궁전

버킹엄 궁전의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다시 빅토리아 역이다.

그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있는데, 혼자 여행하는 한국 여인이 다가와 필름 카메라 싸게 살 수 있는 곳을 묻는다.

가족이 함께 -달랑 셋이지만- 있으니 그녀는 우릴 런던 시민으로 오해를 했나보다.

 

점심 배를 채웠으니 또 가야지, 줄기차게 또 버스다.

눈앞에 소설 '다빈치코드'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카톨릭에서 분리된 영국 국교회의 상징 웨스터민스터 사원이 있다.

 

  < 2006.12.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