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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서유럽 이야기

영국 1 : 런던을 향하여

조금이라도 더 보려는 마음에 너무 욕심을 부렸나보다.

아침 7시 출발 런던 행 비행기. 새벽 3시반에 일어나 여행 준비하는 손길이 바쁜 와중에도 눈꺼풀이 무겁다.  

 

비엔나는 서울만큼 크거나 번잡한 도시가 아니기에 공항도 복잡하지 않은 편이다.

늘 특별한 기다림없이 금세 수속을 할 수 있었기에 이번에도 서두르진 않았다.

그러나, 출발 1시간 전에 도착한 공항은 예상보다 무척 분주했다. 체크인카운터 앞의 긴 줄은 크리스마스가 원인이다.  

 

30분을 기다려 수속을 마친 후 모니터를 보니, 우리가 탑승할 항공기는 탑승 진행 중이다.

게다가 11월부터 강화된 유럽 항공기 내 액체류 물품 소지 제한에 대한 규정 때문에 검색대는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어찌됐든 다행히 지각은 면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저 사람이 누구더라, 우리보다 더 늦게 비행기에 들어온 낯익은 얼굴.

신문사의 긴급 호출로, 예정했던 휴직기간을 다 못 채우고 런던을 거쳐 귀국하는 길이란다.

 

오스트리아 항공

비행기 차창 너머로 구름이 가득하다. 구름 저편에 보이는 알프스 산들이 바다에 떠 있는 섬 같기만 하다.

멀리 아침 태양은 구름 아닌 바다를 뚫고 올라오는 것만 같다.

간단한 기내식 아침에, 준비해 온 도시락과 간식까지 꿋꿋히 챙겨먹다보니 금세 런던이다.

 

서울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갈아타는 C기자와 인사를 나누고 나니 우리를 기다리는 절차는 입국수속이다.  

유럽 대륙에서 영국으로 들어가려면 입국 카드와 여권을 들고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역시나 또 긴 줄, 우린 거의 마지막 순서인데 친절하고 젊은 여직원이 여권과 우리 얼굴을 대조한 후 질문을 던진다.

 

이제는 런던 히드로 공항을 탈출해야 한다.

포메이션 센터에서 교통 안내 자료를 받은 다음, 1일 트래블카드(1-6존 오프피크타임 6.3파운드)구입했다.

어른과 동반한 만11세 이하 어린이는 무료다.

 

런던 지하철

1863년 세계 최초로 개통된 런던의 지하철은 런던 시내를 6개의 존(zone)으로 나누어 운행하는데,-1존이 가장 중심,

6존으로 갈수록 외곽- 해마다 그 요금이 오르고 있다.

2006년12월 현재 1회권은 1존은 3파운드, 1-6존은 4파운드이고, 여행객을 위한 1일 트래블카드는 평일 아침 9시반

이후부터 그리고 주말, 휴일에 사용하는 오프피크타임용은 1존이 4,9파운드, 1-6존용이 6.3파운드이다.

 

평일 새벽부터 사용 가능한 피크타임 요금은 거의 오프피크의 두 배다.

런던 교통 사이트를 통해 미리 인지하긴 했지만, 정말 살인물가다. 게다가 100년도 더 된 지하철 시설은 정말 형편없다.

엘리베이터는 물론 에스컬레이터도 정말 드물고, 낡고 좁은 복도와 계단, 멀고도 먼 환승 거리, 좁고 낮은 객차 내부. 

 

체크인 하기엔 이른 시각이었지만 호텔 측의 양해를 얻어 객실에 짐을 들여놓은 후, 이른 점심을 먹고 거리로 나왔다. 

비엔나에서부터 서둘러야 했던 중요한 이유는 박물관 때문이었다. 12월 24일부터 26일까지 거의 모든 박물관이

휴관이었기에 박물관을 관람할 시간은 23일 하루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젠 런던 2층 버스로 이동해 볼까.  

 

버스 2층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는 원색의 빨간 2층 버스가 참 예쁘다.

버스에 올라 2층 제일 앞 자리를 차지했다. 출입문이 버스 왼쪽에 붙어있네, 운전 기사도 버스 오른쪽에 앉아있군.

런던 도로는 유럽 대륙 국가들이나 우리나라와는 차량 통행 방향이 반대이니 당연한 현상이다.

버스 2층 맨앞이 사방으로 다 트여있어 거리가 품 안으로 달려드는 듯하다. 

 

영국박물관
원반 던지는 사람

오늘은 첫번째 관문은 1759년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국립박물관인 영국박물관이다.

현재의 영국박물관 건물은 1844년에 건립한 것으로, 명성에 비해 대단히 소박해 보인다.

 

1층 계단 정면에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이 정밀한 포즈로 서 있다.

기원전 5세기의 청동상을 고대 로마에서 복제한 것으로, 바티칸을 비롯하여 여러 박물관에 이 조각상이 전시되어있다.

둥근 통로의 천장인, 유리와 강철로 만든 그레이트 코트에선 현대 영국의 힘이 보이고, 140여만 권의 책이 진열된

원형 열람실은 오래된 영화의 정지 장면처럼 눈앞을 가린다. 

 

그레이트코트(천장)

여기 왜 이렇게 이집트와 그리스 유물들이 많은 걸까.

아테나 여신의 신전인 파르테논은 남의 땅에 뿌리도 대지 못한 채 통째로 전시실을 떠돌고 있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 조각 중 가장 완벽하다는 7.25톤짜리 람세스 2세의 흉상, 고대 그리스어와 이집트 상형문자가 기록된

기원전 2세기의 로제타 스톤, 이집트에 남아있는 것보다 세계 여러 나라 박물관에 누워있는 것이 훨씬 많다는 미라.

옛 그리스와 이집트가 무대를 바꾼 채 남의 집살이 하듯 모여 있다.

 

파르테논
람세스 2세
로제타스톤
이집트 미라

한국이다. 남의 나라 박물관에서 만난 우리나라 전시관이 반가우면서도 애처롭다.

자그마한 전시실에 북한과 남한의 유물들이 나란히 자리해 있다. 김홍도의 화첩엔 서민들의 애환이 흐른다.

 

한국관
김홍도 화첩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2시간도 더 지나버렸다.

이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이곳도 내일부터 휴관이니까.

 

1838년에 건립된 내셔널 갤러리는 트라팔가 광장 주변에 위치해 있다.

51m 높은 기둥 위에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폴레옹을 물리친 영웅 넬슨 동상이 서 있는, 12월 오후의 트라팔가 광장은

크리스마스 정취에 흠뻑 젖어있다.

 

내셔널 갤러리

영국 박물관처럼 내셔널 갤러리에도 한국 사람들의 그림자가 잦다.

아, 여기에도 소설 '다빈치코드'의 열쇠인 루브르 박물관의 '암굴의 성모'와 같은 작품이 있지. 

영국 박물관과는 달리 아무도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다. 촬영 금지란다.

 

좋아하는 그림인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를 시작으로, 고흐의 '해바라기'와 '의자', 르느와르의 '우산', 모네의 그림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작은밥돌은 고흐를 제외한 대부분의 그림을 외면했지만, 명화들이 전해준 감동은 참으로 길다.

 

재빨리 떨어지는 겨울 해처럼 하루가 바빴다. 오늘 하루의 체험이었지만 런던이란 곳, 정말 만만치 않다.

넓은 만큼 번잡하고, 차량과 사람들의 부대낌은 물론 물가가 주는 위협 또한 거세다.

런던 펍의 담배 연기를 피해 걸었던 쌀쌀한 저녁 내음이, 이른 겨울 밤의 창문에 고단한 입김을 불어댄다

< 2006. 12.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