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하늘도 봄답다.
부활절 방학과 휴가가 한창인 요즘이라, 떠나는 사람들이 많으리란 예상을 하며 공항으로 향했다.
역시나 시내와 외곽 도로 모두 한산하고 공항은 인파로 북적인다.
기내에서 2시간을 보내자 비엔나보다 1시간 빠른 아테네가 보인다.
상형 문자 같은 안내판을 보니 비로소 그리스라는 실감이 든다.
아테네로 날아오면서 3시간(비행2시간, 시차1시간)을 떠나보내고 짐 찾는 데에도 30분이나 날려보냈다.
아테네 공항도 사람들로 북적이기는 만만치 않은데 벌써 오후 2시가 훨씬 넘어있다.
아테네 공항에서 예약 호텔이 있는 오모니아 광장까지는 공항버스로 신타그마까지 움직인 후 그곳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지만, 'E95'라고 쓰여진 공항버스 맨 뒷자리에서 바라보는 아테네 시내에는 고대의 모습이 전혀 없다.
하지만, 버스 밖 거리마다 쓰여진 그리스어는 볼수록 신기하다.
음가를 익히다 말았던, 그리스어가 적힌 프린트를 꺼내 맞추어봐도 여전히 신기하고 헷갈린다.
공항버스 종착지인 신타그마 광장에 내렸으니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주변에 정류장이 너무 많아서 타는 곳을 알 수가 없다.
도로 큰 표지판에는 그리스어와 영어가 함께 쓰여있지만, 버스 노선 안내도엔 그리스어만 적혀 있었으니까.
오모니아 광장 행 버스에 오르기 전, 기사에게 행선지 확인을 하니 친절하게도 내릴 곳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내릴 버스 정류장에서는 우리가 묵을 호텔까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이 친절함~
호텔에 짐을 들여놓고 거리로 나왔다.
호텔 바로 옆에 국립극장이 있는데 너무 볼품 없고 소박해서 보는 사람이 미안할 정도다.
중앙 시장으로 가는 길 양편에 늘어선 건물과 가게들은 왠지 우리나라 중소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최신 시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낡아버린 것도 아닌...
나는 구경하느라 정신없는데, 오토바이 탄 남녀가 우리 곁을 지나가다 동전을 떨어뜨렸나 보다.
큰밥돌이 바닥의 동전을 주워 건네주니 젊은 여인네가 환히 웃으며 소리친다. 고맙단 말이겠지~
좀 더 걷다보니 여기가 중앙 시장인가. 작은 만물상들 말고는 온통 정육점 밖에 없다.
그것도 따끈한 햇살에 그대로 노출되어 걸려있는, 몸통 전체 그대로의 양과 돼지들, 아....
중앙 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모나스티라키 광장이 있다.
이곳엔 지하철 역과 기차 역이 있고, 또 신타그마 광장과 아크로폴리스로 통하는 곳이라 늘 붐빈다고 한다.
여행객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파는 건장한 흑인들이 너무 많아 사실 조심스러운 장소이기도 했다.
이 광장의 바로 남동쪽으로는 아테네 구시가인 플라카 지구가 있다.
아까 공항버스에서 내려 잠시 헤맸던 아테네의 중심지인 신타그마 광장에 이르렀다.
정면으론 연주황빛 국회의사당이 보이고 광장 주변엔 현대적인 건물이 많으며, 한쪽엔 재활용품 배출공간이 있다.
따끈한 봄 햇살 아래, 광장을 거니는 사람들의 얼굴도 따스하다.
그리스 여행 첫날부터 역시 또 많이 걷는다.
신타그마 광장 남쪽에 눈에 띄는 건축물은 1878년에 지어진 전시장 자피온으로, 정면의 아름다운 열주는 이오니아 양식이다.
중앙에는 하얗고 파란 그리스 국기가 파란 하늘, 파란 바람에 맞춰 펄럭이고 있다.
저기 저 기둥들은 뭘까. 원래는 84개였지만, 4세기 경에 파괴되어 지금은 15개의 기둥만 남아있는 제우스 신전이다.
신전엔 신화 속 제우스는 보이지 않는다. 신전 하늘 위에도 올림포스는 보이지 않는다.
신전 건너 131년 하드리아누스 2세가 세운 하드리아누스문은 옛 그리스인 마을과 새 로마인 마을의 경계를 표시한 것이라 한다.
문 안에 어느 새 아크로폴리스가 들어와 있다.
첫날부터 이렇게 무리해서 걸어다니면 안 되는데...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로마시대의 공중 목욕탕을 보니 다리가 아파도 반갑다. 이젠 진짜 호텔로 들어가야지.
매표소에서 어른 4장, 어린이 2장의 버스표를 요구하자 어른표 5장을 내민다.
그중 어른표 1장을 들이밀며, 작은밥돌을 가리키면서 어린이 2장으로 바꿔달라고 해도 말이 안 통한다.
그러자 뒷줄에 서있던 남자가 영어로 도와주는데, 할인요금은 6살 이하만 해당되고 7살부터는 어른요금을 내야 한단다.
아테네 버스 요금(0.5유로)이 저렴한 편이라서 유아 할인만 있고 어린이 할인이 없는 건지.
저녁시간을 훨씬 넘긴 텔레비전에선 그리스어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창 밖 검은 하늘 아래에서도 그림 글자 같은 그리스어가 반짝이고 있다.
< 2007. 4. 3 >
'탐사('04~08) > 남유럽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 3 : 아테네, 네게 취한 오후 (0) | 2007.04.14 |
---|---|
그리스 2 : 신을 빚은 도시 (0) | 2007.04.12 |
이탈리아 7 : 귀로 (0) | 2006.07.27 |
이탈리아 6 : 소렌토 내음 (0) | 2006.07.21 |
이탈리아 5 : 폼페이에서 만난 그녀 (0) | 2006.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