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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남유럽 이야기

그리스 3 : 아테네, 네게 취한 오후

플라카 레스토랑에서 음식들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나니 아크로폴리스를 향하는 걸음은 더욱 경쾌하다. 

레스토랑 종업원에게 정확히 확인한 노선대로 다가가니 아크로폴리스 입구가 눈 앞에 있다. 

155m 높이의 석회암 산에 자리한 아테네의 상징 아크로폴리스는 고대에 올림포스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옛날엔 함부로 오를 수 없었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도 역시 18세 이하는 무료 입장인데, 아크로폴리스 입장권에 

다른 유적지의 입장권이 함께 포함되어있어 끼워팔기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니케 신전

고고학 박물관처럼 이곳 아크로폴리스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입구에 들어서서 바로 오른편에 위치한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은 기원전 4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무대와 관람석은

파괴되었던 것을 새로 지은-복원 아닌- 흔적이 지나쳐 아쉽기만 하다. 지금도 공연장으로 쓰이는 아티쿠스 극장을 지나

정면에 마주친 승리의 여신 니케의 신전 굵은 기둥 마다엔 애닯게 스쳐왔던 삶의 상흔이 긁혀있다.

이 거대한 기둥들을 이 높은 곳까지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이 얽히고 긁혔을까.

 

파르테논 신전
에렉티온 신전

기원 전 5세기. 상상할 수도 없는 아주 오래 전에 지혜와 정의로운 전쟁의 신 아테나를 모셨던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엔 더할 수 없이 화려하고 웅장했겠지만, 지금은 기둥들만 남아 아쉬운 옛 기억을 더듬게 한다. 

에렉티온 신전의 소녀상은 유럽 건축물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건축의 참고서 같은 느낌.

저 쪽에 한국인 단체 여행객이 보인다. 작은밥돌 왈, 13명이라나. 신전은 안 보고 숫자 놀음이라니. 

그래도 아테네에서 처음 보는 한국인이라 반갑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바라보는 아테네 시내는 서울 부도심 같다.

특별히 볼 거리도 없고 전해줄 이야기 거리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듯하다.

 

고대 아고라
아고라 박물관

고대의 시장이였고 정치와 종교, 예술의 중심지였던 아고라.

기원 전엔 신전과 행정관서, 상점들로 성시를 이뤘겠지만 지금은 그저 옛 흔적들만 아스라히 남아있을 뿐이다.

 

아고라 저 끝 낮은 언덕에 있는 신전이 뭐더라.

올림포스의 추남 신이자 아프로디테의 남편인 헤파이스토스 신전으로 가는 도중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유럽 여러 도시의 날씨가 대부분 그러하듯 빗방울, 뭐 그리 오래 가진 않는다.

헤파이스토스 신전에 테세우스의 행적이 새겨 있다던데 하며 부조를 찾아보는 중, 100년 만에 만난 연인 흉내를 내는,

젊지도 않은 남녀~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데 둘의 애정 행각은 끝날 줄을 모른다.  

 

아고라 내 헤파이스토스 신전

고대 아고라를 나와 걷다 보면 모나스티라키 광장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저기 가서 커피 한 잔 마시자. 너무나도 익숙한 맥도널드가 있다. 

그곳에서 커피와 음료를 마시며 저녁 스케줄을 의논하는데, 아까 어느 레스토랑에서처럼 예닐곱 살밖에 안 된 어린 아이가

손님들 사이로 휴대폰 줄과 라이터를 들고 다니며 장사와 구걸을 한다. 남의 나라 아이라도 마음 한쪽이 한없이 아프다.

 

플라카

저녁식사 하기엔 조금 이른 시각이지만, 여행 가이드북에 소개된 타베르나(식당)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리스 전통 음악인 부주키를 연주하는 곳이라 안내된 두 곳 다 허탕을 치고 말았다.

그러다가 근처에서 괜찮아보이는 타베르나를 발견했으나 부주키 연주 시각까진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플라카 지구를 1시간 동안 돌아다니다가 지친 다리를 이끌고 다시 들어간 그 부주키 식당.

아까 다시 오겠단 약속은 했지만 우리가 진짜 그곳을 다시 찾을 줄 몰랐나 보다. 종업원이 고맙다며 감탄한다.

 

은은한 불빛 감도는 식당에 들어섰지만 아무도 없다.

도 그럴 것이 공연은 8시 15분부터인데 우리가 들어간 시각은 7시도 더 전.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씩 테이블이 채워지고 무대도 채워지면서 흥겨우면서도 애처로운 부주키가 흐른다.

하나 둘 셋 넷. 4분의 4박자에도 흥과 한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우리 전통 노래와는 박자와 음보가 달라도 공감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부주키에 취해, 부주키를 좇는 몸짓에 취해, 또 그 서글픔에 취해 아크로폴리스 야경도 보지 못한 채

아테네의 마지막 밤은 부주키처럼 흥겹게 또 서글프게 이어지고 있었다.

 

  

< 2007. 4.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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