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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남유럽 이야기

이탈리아 6 : 소렌토 내음

폼페이

폼페이를 나와 폼페이를 바라보며 야외 카페에 앉았다.

힘들고 지친 모습으로 바닥만 보며 따라다니던 작은밥돌 얼굴이 그제서야 펴진다.

발을 보니 먼지가 얼마나 쌓였는지 까마귀 사촌이 되어버렸는데, 밥때 놓치기 일쑤인 이번 여행, 오늘 점심도 예외 없다.

 

폼페이에서 소렌토까지는 사철로 30분 거리.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 상쾌한 바닷 바람. 소렌토 출신 시인 이름을 딴 타소 광장에서 보이는 푸르른 바다.

얼른 늦은 점심을 먹고 바다로 향한다.

 

소렌토

서민적인 나폴리보다 소렌토는 휴양지 느낌이 많이 난다.

로마와 나폴리보다 훨씬 덜 시끄럽고 덜 뜨겁고 덜 지저분하다.

넓지 않는 거리엔 가로수들이 정연한 행렬을 하고, 곳곳의 자그마한 공원들도 기분 좋은 내음을 준다.

 

레스토랑에서 알려준 대로 내리막길을 따라 후딱 내려가다 보니 바다가 보인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툭 열리는 저 멋진 바다~

 

큰밥돌이 그리도 애타게 그리워하던, 수영할 수 있는 해변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수영복은 어디에 있지. 고운 에머랄드빛 바다에 사람들이 떠다닌다.

 

여기저기 퍼지는 여름다운 웃음들. 바다가 주는 빛깔과 내음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숙소가 있는 나폴리까진 배로 움직이기로 결정한 뒤 승차권을 끊고서는 소렌토를 좀더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일이 생겼다. 우리의 보물이 사라져 버렸다. 이탈리아 가이드북과 내 여행수첩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

 

아이스크림 먹은 카페에도, 머물렀던 바닷가 벤치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지, 승선 시간까지는 20분밖에 안 남았는데.

바로 그때, 기념품점에서 보물을 찾아들고 나타나는 큰밥돌~ 한참의 소동에도 소렌토는 예뻤다.

더 근사한 절경으로 알려진 아말피에 들르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소렌토만으로도 충분했다.

 

나폴리로 돌아오는 배는 동해안에서 울릉도로 향할 때 탔던 배와 꼭 닮아있다.

그때의 배멀미가 생각나 뱃속이 무언가로 스멀대는 것 같다.

그런데 하얀색 야외 선상에서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흥얼대고 싶었는데 야외는 출입 금지란다.

 

나폴리행 여객선

나폴리에 내려 항구를 뒤로 하고 몇 발자국 뗐을까. 낯익은 한국말이 들린다.

그제 도착해 유럽여행 초보라는 앳된 커플. 트램 티켓을 구해 건네주니 고맙다며 폴라로이드 가족사진을 찍어준다.   

 

"저 형이랑 누나랑 연애하는 거죠?" 그럼, 인생과의 사랑을 시작한 거지.

소렌토 바다처럼 나폴리 바다도 잔잔히 일렁이고 있었다.

 

 

< 2006. 7.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