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탐사('04~08)/남유럽 이야기

이탈리아 1 : 그곳에 피렌체가 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빨리 지났다.

7월의 어느 날은 숨쉴 수 없이 더웠고, 8월 어느 날은 숨쉴 수 없이 분주했다. 몸이 바쁘고 마음도 뛰어다녀야 했다.

그 와중, 부지런함이 지나쳐 3개월전에 예약해놓은 비행기까지 타야 했던 상황~

 

큰밥돌은 서울에서 빈으로 돌아온 다다음날 또 이탈리아 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매력이 많은 나라임엔 분명하지만 이탈리아 예찬론자도 아닌데, 어찌하다보니 이탈리아 땅을 밟는 것이 벌써 4번째다.

물론 긴 일정 대신 짧은 일정을 선호 -타의적, 강압적 선호- 하다보니, 남들은 한 번에 다 훑고 오는 것을 조각조각으로

나누고 또 나눌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다.

 

토요일, 짐을 챙기고 여행 첫날의 최대 무기인 도시락도 싸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느 새 정오가 지나고,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흐렸던 하늘에선 빗방울이 떨어진다.

빈에서 운항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저가항공사인 스카이유럽의 수속 데스크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짐이라곤 작은 캐리어 하나와 쌕 하나가 전부인 우리.

얼른 수속을 마치고 점심으로 햄버거 하나씩을 뱃속에 넣은 다음 탑승구를 찾아가니 맨구석 게이트다. 

한 시간 반만에 후딱 도착한 피사공항에 안착이 확인되자 기내를 꽉 채운 승객들이 일제히 유쾌한 박수를 쳐댄다.

어, 뭐지, 작년에 로마 갈 때 다른 저비용항공 승객들은 안 그랬었는데...

 

피사 공항(갈릴레이 공항)
피사 중앙역

피사에서, 예약한 호텔이 있는 피렌체까진 기차로 움직여야 한다.

우선 피사 공항역에서 피사 중앙역까지 이동 후, 그곳에서 다시 피렌체 산타마리아노벨라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

인파 그득한 피사 중앙역에서 피렌체행 기차를 기다리자니 슬슬 배가 고파온다. 그럼, 기차에서 김밥 구경 좀 하지 뭐~

그러나, 지연 출발과 연착이 특기인 이탈리아 기차가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김밥에 대한 굳은 의지는 금세 날아가버렸다.

 

피사가 출발역이 아니었던 까닭에 이미 기차엔 승객들이 꽤 많았던 것.  

게다가 우리와 함께 기차에 오르는 사람들도 셀 수 없이 많았기에 고단한 엉덩이를 댈 자리 찾기도 쉽지 않았다.

기차의 여러 칸을 헤치고 지나서야 겨우 앉을 자리를 찾았는데, 그나마도 세 자리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좌석에 앉은지 얼마 안 되어 검표원이 등장하고 잠시 후 큰밥돌 옆자리의 사내가 하차한다. 얼른 셋이 모여 김밥 오픈~

 

피렌체 산타마리아노벨라 역에서 내린 우리는 눈에 안 띄는 인포를 찾는 대신, 5분 거리의 호텔로 바로 들어가기로 했다.

근데, 아무리 돌아도 호텔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여행 책자의 지도 방향을 잘못 잡는 바람에 엉뚱한 곳만 뱅뱅 돈다.

좁은 골목마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흑인들은 야릇한 눈빛을 날리고, 뒤따라오던 작은밥돌은 배가 아프다며 울상이다.

그러다가 우리 앞에 우뚝 나타난 호텔, 어느 새 저녁 7시가 넘었다. 

 

공화국 광장

체크인 후 아까 다 먹지 못한 김밥을 챙겨먹고 밖으로 나왔다. 7월보다는 짧아졌지만 8월 저녁 해도 여전히 짱짱하다.

호텔 프론트에서 받은 지도를 들고 산타마리아노벨라 광장에 서서 두오모 성당 쪽을 가늠하고 있으려니, 곱게 차려입은

이탈리아 할머니가 말을 걸어온다, 두오모 성당을 찾느냐며.

할머니가 알려준 두오모 가는 길에 어디선가 고운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화국 광장이 출현했다.

음, 여기 좋아, 괜찮다. 아주 마음에 드는 공간이다.

  

두오모 성당

붉고 둥근 돔이 보인다.

한눈에, 사진과 영화에서 무수히도 보았던 피렌체 두모오 성당이란 걸 알아챘다.

저녁인데도 많은 여행객들이 우리처럼 파스텔톤 대리석 외벽의 두오모를 둘러싸고 있다.

두오모 성당과 산조반니 세례당 주변엔 바닥에 자리를 깔고 오밀조밀한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피곤한 얼굴을 내비친다.

 

두오모 성당

호텔로 돌아오면서 살펴보니 호텔 바로 옆이 아르노강이다. 아까는 보이지도 않더니만.

살아갈수록, 곁에 있어도 놓치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아지기만 한다. 그러고 보니 호텔에서 신을 슬리퍼도 안 챙겼다.

르네상스 기운으로 가득 덮였던 도시, 피렌체의 첫밤이 이렇게 흘러간다.

 

 

< 2007. 8. 11. 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