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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남유럽 이야기

이탈리아 2 : 베키오 다리 위에서

눈을 뜨니 7시 25분. 이상한 일이다, 분명 어제 알람을 확인했는데.

휴대폰을 열어 다시 확인을 해보니 일요일 알람이 해제되어 있다. 불치인 요일착각증이 다시 발병했다.

예정보다 늦었으니 어쩔 수 없다. 이럴 땐 그냥 눈꼽만 떼고 식당으로 바로 돌진해야 한다.

주문 즉시 바로 만들어주는 커피도 맛있고 아침 식사 메뉴도 제법 먹을만하다.

 

호텔을 나서며 보니, 인사를 건네는 호텔 프론트 직원이 친절하고 훈훈한 남자로 바뀌어있다.

어제 별로 친절하지 않았던 여자 직원은 알바가 분명하다니까~

 

두오모 성당
산 로렌초 성당

외관 전체가 공사 중인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으로 가는 도중, 여기저기서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산타마리아노벨라, 산로렌초 성당, 두오모 성당 모두 일요일 아침 미사로 문이 굳게 닫혀 있다.

타마리아노벨라 성당 앞엔 오후 1시부터 내부를 볼 수 있다며 이탈리아 억양이 그대로 발산되는 짤막한 영어를

내뱉는 남자 곁에, 아이 안은 남루한 아낙이 측은한 낯빛으로 구걸을 하고 있다.

 

작은밥돌은 로렌초 성당 옆 늘어선 가죽과 장신구 상점에서 가죽팔찌 하나를 집어들고는 1유로밖에 안한다며 싱글벙글이다.

그러나 부지런히 걸음을 떼어 다다른 시뇨리아 광장의 테이크아웃 슬러시 가격은 말도 안 되게 엄청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날씨 정말로 좋다~

 

베키오 궁전- 피렌체 시청사

지극히 이탈리아적인 여러 건물들로 둘러싸인 시뇨리아 광장엔 베키오 궁전이 있다.

피렌체 시청사로 쓰이는 이곳에 입장하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저 안에 뭐가 있다더라.

궁전 앞엔 성서와 신화 속 꿈같은 인물인 다비드, 헤라클레스, 페르세우스 등이 거대하고 생생한 조각으로 다시 태어나 있다.

 

시뇨리아 광장을 지나면 피렌체를 여행하는 사람이면 대부분 관람하는 우피치 미술관이 나온다. 

르네상스 발상지인 피렌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코스로 여겨지는 이 우피치 미술관을, 우린 그냥 지나친다.

혹여, 우리가 우피치 앞에 다다랐을때 지나치게 입장줄이 짧을 경우- 사실 그런 경우는 없다. 그래서 예약필수-엔 들어가

수도 있으리란 발상도 약간 했었으나 처음부터 우피치 관람 계획이 없었기에.

 

물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냥 거리를 걷고 거리에 앉아 도시를 바라보는 편을 택했다. 

이번 선택은 결과적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우피치는 다음에 관람하면 되니까.

미술관 앞엔 거리의 화가들과 함께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갈릴레이, 단테 등이 21세기 피렌체를 지키고 있다. 

 

우피치 미술관

우피치 미술관을 돌아 아르노 강에 이르니 다리가 하나 등장했다.

그 다리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아르노 강 위에 지어진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베키오 다리가 보인다. 

옛날엔 위층은 귀족과 부자들이, 아래층은 서민들이 이용했다고 하는데, 다가가서 보니 다리치고는 특이한 형태다. 

여러 형태의 창문과 공간이, 다리 가장자리 끝에 버팀목도 없이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베키오 다리

단층으로 남아있는 베키오 다리 양편으로 보석가게의 행렬이 끝없다. 추억을 조각하는 사람들의 행렬도 끝이 없다.

베키오 다리 위와 그 주변엔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풀잎처럼 생긴 긴 종이로 동물 모빌을 만드는 중국인들이 유난히 많다.

그들도 처음엔 베키오를 추억으로 만났을텐데, 이젠 생계가 되어 이곳을 마주하고 있다.

 

베키오 다리

아르노강을 보고 있으려니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달리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다리 위 어느 가게 꼭대기엔 청춘의 여신 헤베를 닮은 종신(딸림신)들의 작은 조각이 올려져 있다.

그녀들의 손에 들린 바구니에는 사랑과 청춘과 추억이 가득 들어있을 것만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발길은 베키오 다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 2007. 8.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