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3시, 파리의 첫 아침
4년 만에 맞는 유럽의 첫 아침, 새벽 3시도 안 되어 눈이 떠졌다.
핸드폰에 이미 많이 들어와있는 카톡 메시지는 파리와 서울 간의 시차가 7시간이라는 걸 보여준다.
메시지를 주고 받은 후, 출국 전에 신청해두었던 서울 가는 항공기의 기내식을 일반식으로 변경했다.
저칼로리식이 너무나 맛이 없어 도저히 먹을 수 없다는 아들 의견에 따른 것이다. 물론 나도 같은 의견이다.
사실 어제, 아들은 두번째 항공기의 두번째 기내식에 승무원에게 일반식 여분을 물어보고는 일반식으로 바꿔먹었다.
7시, 서울에서보다 훨씬 부지런히 기상한 아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으로 간다.
이른 시각이라 꽤나 한적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문하면 포트에 넣어 가져다주는 커피도 아주 맛있고 다양한 빵들도 모두 파리답게 아주 맛있다.
4성급 호텔이니 음식의 가짓수나 맛은 괜찮은 편. 아침을 먹었으니 이제 동네 산책을 좀 해 볼까.
아무리 호텔 코 앞에 있다지만 너무 자주 들러대는 베르시 빌라주. 봐도 봐도 볼 때마다 아주 마음에 든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파리시민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곳.
베르시 빌라주의 아침은 한적하다. 햇살 따스한 이곳엔 청소하는 사람, 가로질러 출근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 오르세, 별이 빛나는 밤
오늘의 첫 행선지는 오르세 미술관이다.
처음 파리에 왔던 9년 전엔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오로지 루브르만 생각했고, 파리의 더러움에 놀라기만 했었다.
깨끗하고 정돈된 오스트리아에서 살다가 눈앞에 펼쳐진 파리는 낭만의 도시가 아닌 오물과 낙서의 도시였다.
그렇게 무지의 결과로 놓친 오르세 미술관을 향해 지하철이 아닌 24번 시내버스로 이동한다.
지하철보다 훨씬 느린 버스의 장점은 가만히 앉아 차창 밖으로 파리 시내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0시 즈음의 버스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우린 버스 한 대를 그냥 보내고 금세 또 온 두번째 24번을 탄다.
리옹역을 지나고, 시테섬의 노틀담 성당을 지나고, 또 여러 개의 다리를 지나 드디어 40분만에 도착한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은 오르세역으로 지은 역사(驛舍)였으나 1939년 문을 닫은 후, 1979년 현재 미술관 형태로 내부를 변경했다.
1986년 12월 ‘오르세 미술관’으로 개관하여 지금은 인상파 회화를 비롯한 19세기 미술 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한국어가 서라운드로 들리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받아들고 발을 디딘 오르세 미술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고흐, 밀레, 마네, 모네, 르누아르, 세잔, 고갱, 드가, 쿠르베....
특히 오르세에 머무는 2시간 내내 마음을 절절하게 만든 작품은 고흐의 '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촬영 금지인데, 한 백인남자가 슬쩍 재빨리 '별이 빛나는 밤'을 촬영하는 것을 보는 순간 나도 그 부류에
합류하고 싶은 유혹이 생겼으나 다독이며 겨우 참아냈다.
우리나라 TV광고 속에 등장했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 그리 큰 줄은 몰랐다.
이 그림을 보며 아주아주 즐거워하는 아들~
보고자 했으나 출타 중이었던 그림은 밀레의 '만종',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이다. 뭐, 다음 기회에.
# 루브르 박물관에 온 목적
오르세 미술관 앞 도로를 지나 이젠 센 강을 건넌다. 100m도 안 될 듯한 강폭, 수수한 모습을 한 다리.
멀지 않은 저 너머엔 9년 전에 우리의 흔적을 두었던 곳, 루브르 박물관이 보인다.
루브르 박물관에 온 목적은 박물관 내부 관람이 아닌 웅장한 외관을 보고 담기 위해서다.
사실 9년 전에 루브르를 관람했을 때, 몇몇을 제외하고는 무엇을 보았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물론 엄청난 규모의 박물관을 달랑 두세 시간 동안 둘러보았던 이유도 있지만, 갑작스러운 파리행이라 준비가 부족했고
또 당시만 해도 박물관과 미술관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암튼 루브르 내부에 대한 아쉬움은 그다지 없었기에 루브르라는 역사적 장소를 다시 찾은 기쁨만 누리기로 한다.
# 마음 아픈 이야기
루브르의 규모에 새삼 놀라고 매표소 앞의 끝 모를 긴 줄에 또 놀라고, 또 루브르 주변에 빙 둘러서 있지만 설치된
바리케이트 안으로는 더이상 들어서지 않는 많은 흑인들의 모습에 다시 놀란다. 루브르 오는 길에 그들에게서 구입한
에펠탑 열쇠고리를, 다른 그들에게 또 구입하는 아들.
여행카페에서 읽었던, '길에서 에펠탑 열쇠고리 파는 흑인으로부터 열쇠고리는 받았는데, 동전을 건네기 직전에 나타난
단속경찰 때문에 흑인이 후다닥 사라져 돈은 주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 흑인을 1시간 넘게 기다렸다'는 여행객의
이야기를 해주니, 열심히 사는 흑인이 불쌍하다고 말하는 아들. 그러게나 말이야.
오르세로, 루브르로 돌아다니다보니 어느 새 점심 때다.
루브르 앞 1번선 Palais Royal Musee du Louvre역에서 4정거장 떨어진 Franklin D.Roosevelt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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