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보 카피시모
오늘은 아침 7시 30분 EUROSPAR에서 1L짜리 물 세 병을 구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서울서 준비해온 것들과 어제 장본 것을 모두 모아 한국식 아침식사를 한 후, 치보 카피시모(Tchibo Cafissimo)의
원두커피 캡슐을 내려 커피를 마신다.
아, 이건 새로운 세계야, 원두의 향과 맛을 그대로 간직한 카피시모 캡슐커피에 단번에 반해버렸다.
이 숙소에 체크인 할 당시 카피시모 프리미엄 캡슐커피 6개가 구비되어있었는데, 이 캡슐은 나혼자-아들녀석은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다-이틀 만에 소진해버린 후, EUROSPAR에 가서 커피캡슐 10개짜리 한 상자를 구입하게 된다.
사실, 치보 카피시모 커피머신에 첫눈에 반해버린 터라, 숙소에 있던 카피시모 듀오(기존제품) 대신 신제품인 카피시모 피코를,
22구 쇼핑몰인 도나우젠트룸에서 한국의 반도 안 되는 세일가격으로 발견했을 때의 갈등은 빈을 떠나는 전날까지 계속되었다.
카피시모 피코를 살까말까하는 갈등은 결국 치보 카피시모 대신 치보 커피원두를 구입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 벨베데레 전투
뒹굴뒹굴거리다가 11시, 벨베데레로 가자는 내 말을 갑작스레 거부하는 아들녀석. 거기 꼭 가야 하느냐고 내뱉는다.
그런데, 여러 번 갔던 곳이고 내부관람하면서 클림트의 '키스'도 봤는데, 벨베데레에 왜 또 가야하느냐고 녀석이 반문한다.
다툼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여행은 왜 왔느냐, 그럴 거면 먼저 가라, 먹고 놀기만 하려면 뭐하러 왔느냐...
1시간여를 투닥거리다 각자 편한 대로 하기로 의견 조율을 했다.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것이 꼭 정신없이 또 바쁘게 움직여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여긴 우리가 4년 가까이 살았던 빈, 어딜 가든 무얼 하든 감동과 추억이 있는 곳인 것이다.
조율과 타협은 라면이라는 점심식사와 함께 우리에게 안온한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 한적한 벨베데레
숙소 앞에서 혼자 홀가분하게 U4로 Schottentor에 가서 트램 D로 갈아타면 오래지 않아 슐로스벨베데레 정류장이다.
처음에 궁전으로 건립됐던 벨베데레는 현재 상하궁 모두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상궁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가
전시되어 있다.
어둡고 흐린 하늘, 여행 성수기인데도 벨베데레 정원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다들 작품 관람하러 미술관 내부를 거닐고 있는 건지, 한적하고 고요하여 미술관 정원을 걷는 운치가 썩 괜찮다.
'키스'를 만난지 7년이 돼가는데, 클림트는 잘 있는지, 실레와 코코슈카는 또 어찌 있는지 잠시, 아주 잠시 궁금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그저 흐린 하늘과 정원만을 한가로이 음미하기로 한다.
이제 뭐 자주(?) 올 수 있으니 그저 마음 가는 대로만 움직여 보련다.
언제나 그자리에 있는 벨베데레란 걸 알기에 또 다음 번을 즐겁게 기약해 보련다.
# 구시가 가는 길
다시 트램 D에 오른다.
좀 낡고 덜컹거리긴 하지만 빈의 오래된 트램은 신형 트램보다 더 멋스럽고 비엔나스럽다.
케른트너링에서 선 트램은 나를 내려두곤 뒤도 안 돌아보고 금세 제 갈 길을 떠난다.
내 눈 앞엔 국립오페라하우스가 서 있고 주변은 활기로 넘치는데, 문득 이 순간이 꿈결 같기만 하다.
Oper에서부터 주변을 둘러보며 또 그 정경을 담으며 천천히 걸어본다.
흐리디흐린 하늘에선 간간히 가늘고 작은 빗방울을 흘리듯 날려 지상으로 보내준다.
4년 동안, 우리가 빈을 떠나있던 4년 동안 아주 잘 있었구나, 시간이 흘러도 반갑게도 이곳은 늘 그대로다.
슈테판 성당 앞, 오후3시 15분, 아들녀석을 만나기로 한 시각인데, 아무리 둘러봐도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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