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만의 대화
오후 3시 30분, 원래 약속시간보다 늦게, 빈의 최중심 슈테판 앞에서 아들녀석과 만났다.
약속시각인 3시10분보다 10분 이른 3시에 이곳에 도착한 아들은 이탈리아에서 여행 온 20대 남자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단다. 요리사인 그 남자는 전공 선택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것이 여행의 또다른 의미와 재미가 아니겠는가.
수십번은 들어가본 고딕양식의 슈테판 성당엔 들어가지도 않은 채 콜마크트 거리를 걸어 왕궁 쪽을 향한다.
콜마크트 거리엔 어마무시한 명품샵들이 즐비하고, 커피와 케이크로 유명한 'Demel'도 자리하고 있다.
'데멜'은 빈에서 'Sacher'와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전통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의 카페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커피에 까다롭지 않은 나는 카페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기에 둘 다 가보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 빈에 살 때도 들어가 본 유명한 카페는 'Mozart'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빈에서는 어디에서든 커피 맛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 DZ, 도나우젠트룸
번화하고 북적이는 구시가를 떠나 우리가 도착한 곳은 U1 Kagran역이다.
이곳엔 아들녀석이 3년 넘게 다녔던 학교가 있고, 또 수없이 쏘다녔던 '도나우젠트룸'이라는 복합쇼핑몰이 있다.
카그란역엔 가끔씩 들르던 빵집 슈트뢱도 그대로 있고, 또 가끔씩 먹던 Langos 파는 가게도 그대로 있다.
아들이 다녔던 학교에서부터 빈에서 3년을 살았던 집으로 가는 93A 버스도 그대로다.
버스 외관, 버스 정류장, 정류장 주변의 모습들 모두 4년 만에 들렀음에도 하나도 변하지 않고 다 그대로인 것이다.
변한 것이 있다면 도나우젠트룸의 출입구 모습과 1층에 들어서자마자 출현한 예전엔 없었던 스타벅스...
무료 wifi가 빵빵 터져주는 도나우젠트룸 내부를 이리저리 쏘다녀본다.
2층 내부의 구름 다리를 건너 Tchibo, Fischer를 들러 추억을 누리고, Libro에 들러 자와 펜을 구입했다.
그리고는 남겨진 과제는 선풍기, 유난히 더위를 타는 아들이 숙소에 없는 선풍기를 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꼭 필요하냐고 여러 번 물었봤지만, 더위를 못 참겠다는데-난 결코 덥지 않았다-어쩌겠는가.
도나우젠트룸의 끄트머리에 있는 INTERSPAR에서 잘츠부르크 호텔에 있던 것과 똑같은 자그마한 선풍기-19.9유로-를
구입하자 녀석은 아주 만족스러워한다. 유럽 여행 와서 선풍기 사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야, 정말로.
이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곳인 슈트란트카페로 가자고.
# 슈트란트카페
도나우강변에 위치한 슈트란트카페는 슈페어립으로 유명한 음식점이다.
U1 Alte Donau역에서 걸어가는 방법도 있다는데, 우린 U1 Kagran에서 25번 트램을 타고 카그라너브뤼케에서 내린다.
카그라너브뤼케에서 내려 길을 건너 조금만 걸으면 금세 슈트란트 카페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낮부터 떨어지던 빗방울이 심하게 굵어지고 잦아진다. 일단 뛰자, 뛰어가자고.
빈에 살 때 가장 자주 들르던 식당인 슈트란트카페, 비가 내리고 있으니 야외 좌석은 폐쇄되어 있다.
평일이라 해도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인데, 비가 내려서인지 생각보다 실내가 복잡하지는 않다.
야외가 아니라서 아쉽긴 하지만 실내에서 즐기는 콜라와 맥주, 슈페어립의 맛도 여전히 환상적이다.
옆 테이블엔 신혼여행을 온 듯한 한국인 젊은 커플도 슈페어립을 즐기고 있다.
굵어진 빗방울 사이를 뛰어다니며 트램을 타고 또 지하철을 타고는 19구의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천둥 번개를 동반한 엄청난 비가 쏟아진다.
우리, 운이 좋았던 거지, 생각보다 비를 많이 안 맞았잖아.
빈에서의 두번째 밤이 작은 선풍기의 행복과 함께, 또 떨어지는 빗줄기와 함께 한없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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