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처음 맞이한 홍콩은 고온초다습 자체였다.
서울보다 더한 여름 날씨에 땀돌이 남자 둘과 함께 움직인다는 건 서로에게 극한이었다.
홍콩은 역시 겨울. 그리하여 1월에 홍콩으로 떠난다. 2013년 오사카로 가던 겨울처럼 둘이서만 말이다.
짐 챙기고 이것저것 하느라 1시간여밖에 눈을 못 붙이고, 새벽 5시가 넘어 집을 나섰다.
승차한 공항버스엔 점차 승객이 많아지고, 일찍 도착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7시가 되어서야 공항에 이르렀다.
아, 이게 무슨 일이지, 1월이고 비수긴데 또 주말도 아닌데, 공항에 웬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지, 여름 휴가철보다 더.
항공마일리지로 예약한 아시아나항공 체크인데스크엔 다른 곳보다 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다.
사실, 인천발 홍콩행 항공기-아시아나-를 처음 예약할 땐 비즈니스석으로 신청을 했었다.
그런데, 중간에 항공기가 바뀌면서 -아시아나에선 변경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고 홈피에서 우연히 확인, 고객센터에 연락하니
항공사측은 기종변경에 대한 고지 의무가 없다고 한다- 변경된 항공기의 비즈니스석은 이코노미 못지않은, 즉 좌석 간 앞뒤
간격이 이코노미와 별 차이없는 항공기였다. 일부러 마일리지를 1.5배 사용할 까닭이 없는 상황, 다시 이코노미로 변경했다.
이런 소동 끝에 홍콩으로 가는 날 아침, 줄은 끝이 없었고 우린 오래 기다려야 했다.
대열에서 기다리는 중,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캐리어에 넣으려고 부착된 잠금장치를 열려는데 열리지 않는다.
작년 여름 유럽여행할 때 내내 사용하던 비밀번호인데, 아무리 해도 도대체 열릴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하는수없이 일단 남편의 캐리어에 내 머플러를 집어넣은 후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창고에 있는 큰 캐리어의 비번-캐리어들의 비번이 같음-이 어찌 설정돼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금세 날아온 아들녀석의 답장엔 내가 알고 있는 그 비번만이 적혀 있었다.
줄 서 있는 이 상황에선 방법이 없으니 캐리어는 홍콩에 가서 해결하기로 했다.
체크인하는데 50분이 걸렸고, 북적이는 출국심사대에서도 30분 이상 기다렸다.
왜, 이번에 홍콩행 항공기를 타면서는 2시간 전에만 공항에 도착하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단거리이긴 했지만, 공항이 붐빌 땐 유럽이나 홍콩이나 체크인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홍콩행 항공기의 출발은 9시, 탑승마감은 8시 40분까지였으니 늦었고 급했다.
들러야 할 면세품 인도장도 3곳이었다. 남편은 탑승구로 뛰었고 나는 인도장으로 뛰었다.
급한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한 후 기다리고 있던 다른 사람보다 먼저 면세품을 인도받았다.
다시 뛰어 도착한 탑승구엔 남편과 몇몇 사람만이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지각을 면했다.
(인천공항을 떠나던 아침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천공항에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아, 힘들어, 대체 이게 웬 난리래,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바보 같이.
제시각에 항공기는 이륙했고 남편은 어제의 늦은 귀가를 티 내느라 식사 전후로 정신없이 잠만 잔다.
그사이 난, 영화 '제보자'에 집중했다. 뭐, 특별할 것 없는 영화. 도려내야할 우리 사회의 염증을 드러낸 영화다.
'국익과 진실 중 무엇이 먼저입니까?' '진실이 국익이다.'
정확히 3시간 후인 11시, 홍콩이다.
홍콩은 서울보다 1시간 느리다. 힘들었던 출발을 위로하려는지 두 개의 작은 캐리어가 기다릴 틈도 없이 금세 나와준다.
2011년 여름처럼 우리나라 티머니카드 같은 옥토퍼스카드를 구입하고, 이번엔 추가로 '내일여행사'의 홍콩공항 지점에서
피크트램 편도+스카이테라스 티켓을 구입했다.
이젠 공항버스 타고 호텔로 간다. 2011년에 걸었던 같은 통로를 지나 같은 곳에서, 이번엔 A11버스를 탄다.
버스는 그 여름과 같은 홍콩거리를 1시간 동안 달려 포트리스힐역에 위치한 '시티가든호텔'에 도착했다.
뭐, 전망은 별로-이미 알고 있는 사항-였지만 고층을 원한 우리의 요구대로 배정해준 18층 객실 상태가 괜찮다.
2011년에 4박동안 아들녀석까지 셋이 머물렀던 완차이의 '더하버뷰 호텔'보다 객실이 더 넓은 듯하다.
특히 창가에 둘러 부착된 긴 의자는 인테리어 효과도 좋은데다가 실용적이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남편은 열리지 않는 내 캐리어의 잠금장치를 물리력으로 공략하여 지퍼손잡이를 잠금장치에서 독립시켜 주었다.
캐리어 걱정을 덜고나니 어느 새 거의 3시, 이제 딤섬 먹으러 가자~
'팀호완'은 홍콩에 유명한 딤섬 전문점이다.
사실 우리는 여행하면서 먹거리를 즐기는 건 좋아하긴 해도 일부러 맛집만을 골라다니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2010년 미슐랭가이드에서 원스타 식당으로 선정한 '팀호완'은 저렴하면서도 맛있고, 여러 개의 지점 중 호텔 근처에
노스포인트점이 있으니 당연히 가줘야 할 딤섬 맛집이다.
호텔에서 걸어서 5분여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살짝 헤매다 들어간 팀호완.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난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꽤나 많다.
차는 주문하지 않아도 나오고 메뉴가 적혀있는 종이에 주문하고자 하는 딤섬에 표시하면 순서대로 딤섬을 내어준다.
근데, 이 사람들 표정들이 왜 이렇지, 종업원들의 표정이 모조리 무뚝뚝이다.
다행히 딤섬은 다 골고루 맛있었고, 생각보다 별로인 건 쫄깃한 느낌 없이 흐물거리는 식감의 장펀이었다.
'팀호완'은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평범한 식당이지만, 기대없이 들른다면 생각 이상의 맛과 감동을 줄 맛집이다.
숙소 근처에 있었기에 홍콩을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들를 계획을 하며-결국 재방문은 못했지만- 우리는 홍콩의 2층 트램을 타러
신나게 거리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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