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여름 여행 계획은 2월말, 저렴한 항공권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와 남편친구 부부, 이렇게 넷이 함께 하는 유럽여행이었고 항공권과 숙소, 렌터카를 예약했고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여행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설렘 속에 살던 5월, 예기치 않은 일인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다.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심각한 경기 불황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바닥을 헤매는 경기 탓에 동업자인 남편과 남편 친구가 서울을 비울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단번에 유럽항공권을 포기한 세 사람과는 달리 난 항공권 취소를 계속 늦췄고 마침내 혼자 떠나기로 했다.
다만, 여행기간 내내 빈에서만 머무는 일정으로 변경했는데, 항공권의 in과 out이 빈이었기에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항공권은 아시아나를 타고 도쿄로 가서 오스트리아 항공으로 환승하여 빈까지 가는 티켓이었다.
인천 공항 출발 시각은 오후 6시 50분-원래 남편과 남편친구의 오전근무를 고려한 항공권-이니 급할 게 없었다.
오전에, 남은 자들을 위한 반찬을 준비하고 청소와 빨래도 했으며 또 미리 싸두지 않은 여행보따리도 챙겼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 일본용-110V- 플러그를 가져오지 않은 사실이 생각났다.
차창 밖은 점차 흐려지고 있고, 예정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아시아나체크인데스크엔 오후인데도 여행객들이 많다.
내 차례가 되어 수속을 하는데, 일행이 없냐고 발권 창구 직원이 묻는다. 그렇구나, 혼자 떠나는 첫 여행이구나.
출구심사대를 거치고 면세점 인도장에도 들러 면세품을 받고, 면세점에서는 멀티플러그를 샀다.
탑승까진 시간이 많이 남아서 탑승구 앞에서 핸드폰 충전도 하고 아들녀석에게 막내를 당부하는 메시지도 보낸다.
출발 30분 전에 탑승한 2-3-2 배열의 항공기 안은 완전 만석이다. 그렇지, 여름휴가의 시작이지.
그런데, 이륙 직전 기내 상황이 좀 이상하다. 지나치게 더웠고, 매캐한 연기 냄새가 기내를 휘감았다.
한 승객이 승무원에게 이유를 물으니 엔진 돌릴 때 외부공기가 들어와서란다. 비행기 한두번 타나, 흔한 상황은 아닌데.
아무튼 이륙 직후부터는 다행히 냄새도 안 나고 기내도 덥지 않았다. 10여분 난기류에 휘청였을 뿐.
옆 좌석의 아주머니는 많이 고단한지 계속 잠만 자고 있다. 기내식이 나와 그것을 건네주니 그제서야 눈을 뜬다.
승무원이 일본입국허가서를 내밀자, 받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나도 작성해야 함을 깨달았다.
나리타에서 빈으로 가는 환승 항공기의 출발시각이 다음날 아침 11시 20분이었고, 밤을 보내야 하는 긴 대기시간동안
난 공항 노숙 대신 나리타 공항시설 중 하나인 캡슐호텔을 선택했기에 일단 일본 입국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옆 좌석의 아주머니에게 내가 쓴 입국허가서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주머니 딸이 도쿄에 사는데, 손주 백일이라 3개월만에 다시 방문한다고 한다. 아기 낳을 때도 갔었다고.
9시가 넘어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고, 입국심사줄에 서있는 내 입국카드를 살펴본 직원이 서명이 누락되었음을 알려준다.
얼굴 촬영과 검지 지문 날인까지 마친 후 내 여권을 뒤적이던 심사대의 직원이 질문한다. 머무는 호텔이 어디냐고.
캡슐호텔 나인아워즈 인 나리타에어포트, 환승시간이 길어서 거기서 눈 붙일 거야.
아시아나 항공기가 도착한 나리타 공항은 제1터미널이고, 캡슐호텔이 있는 곳은 제2터미널이다.
터미널 간의 거리가 상당하니 당연히 셔틀버스로 이동해줘야 한다. 2터미널로 가는 셔틀버스엔 아까 기내에서 통로 건너
옆좌석에 앉아 크로아티아 가이드북를 보고 있던 처자가 중년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터미널에는 내렸으나, 또 미리 숙지했으나 캡슐호텔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큰 캐리어를 끌고 겨우 '9h(nine hours)'를 찾아 들어가려는데, 셔틀버스에서 본 남녀가 그곳에서 되돌아 나오고 있다.
Booking.com을 통해 예약했기에 리셉션에 확인서를 내미니 물품-가운, 실내화, 수건, 치약, 칫솔-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과
라커룸 열쇠을 내어준다. 숙박 요금은 선불로 5,900엔을 지불했다. 넷이 움직이는 처음의 여행 계획대로라면 이곳이 아닌
공항 앞 호텔 더블룸-각 11,000엔-에 머물 예정이었으나 나홀로 여행이 되었으니 호텔은 취소하고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참, 항공권 등급에 따라 항공사-오스트리아항공-에서 숙소가 제공되기도 한다. 비싼 항공권이라면 호텔 무료 제공.
그러나 어차피 항공권에 금액을 더 투자해야 한다면 굳이 대기시간 긴 항공권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이 항공권을 잡은 단 하나의 이유는 성수기엔 거의 나올 수 없는 저렴한 가격-100만원 미만-때문이었다.
라커룸, 샤워실, 세면대와 화장실, 휴게실, 수면실 등으로 이루어진 이 캡슐호텔에선 실외용 신발은 착화금지다.
남녀 사용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이곳은 매우 깨끗하고 조용하다. 누구도 큰소리를 내는 법이 없다.
와이파이비번을 확인하러 리셉션 다시 들렀다가 수면실의 2층에 위치한 나만의 작은 공간으로 입장한다.
잠금장치 없이 차단 블라인드만 있는 좁은 공간이지만, 생각보다 아늑하고 포근하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사용불가할 듯한 1인용 침대만한 공간이지만, 콘센트도 있고 와이파이도 빵빵하다.
걱정-마눌 홀로 여행이라-을 머리에 이고 있을 남편과 카톡을 하고 아들녀석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치킨-날짐승요리 싫어함-이라 제대로 먹지 않은 기내식인데도 소화가 안 된다. 활동 공간이 좁아 그런가.
낯선 공간에서의 낯선 하루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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