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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5 빈

7. 25 (토) 후 : 벨베데레의 여름

숙소 근처 어느 아파트

아침 내내 숙소 주변의 마트 순례를 한 후, 벨베데레의 위치를 캡처로 재확인한 후 드디어 벨베데레로 간다.

오후가 되어도 여전히 한적하고 고요한 빈의 평범한 주택가.

사건 사고 없는 심심함, 정적 속의 활기, 늘 그리웠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제대로 방향 잡아 벨베데레를 향해 걷던 중, 공사 중인 건물을 마주했다.

신축은 아니고 리모델링 정도의 공사인 듯한데,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장치가 우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돈보다, 경제 개념보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 생명이 먼저인 나라, 원칙이 먼저인 나라다.

 

벨베데레 미술관 정문
벨베데레 미술관 정문

15분 정도 걸었을까. 상궁 쪽의 벨베데레 정문이 딱 나타나 주신다.

아침에 떨어지던 빗방울 기운이 아직 남았는지 구름 뭉치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벨베데레 상궁
벨베데레 상궁

어느 새 푸른 하늘이 구름을 밀어내고 있다.

구름이 지나간 자리엔 태양이 뜨거움을 과시하고 있고, 여행객들의 뜨거움도 그에 못지 않다.

상궁 쪽 매표소와 샵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상궁 옆을 스쳐 하궁 쪽으로 뻗어있는 정원을 밟아본다.

 

벨베데레 정원
벨베데레 정원
벨베데레 정원

셀 수 없이 많이 왔던 곳인데, 그 외관과 정원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다.

상념과 고민이 사라지고, 가슴에는 평온함이 잔잔하게 차오른다.  

 

작년에 아들녀석이랑 빈을 방문했을 때, 벨베데레 행을 거부했던 이유로 한바탕 전투를 치렀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나혼자 벨베데레 정원을 밟았고, 그후 약속 시간을 정해서 슈테판 앞에서 만났었다.

그래, 그러면 되는 것이었다. 반드시 함께 가야 하는 길은 없는 것이다.

선택의 문은 열려있는 것이고 뜻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선택의 책임이 본인에게 있을 뿐.

 

벨베데레 정원
벨베데레 하궁
뜨거운 밸배데레와 젊은 한국여인들

한여름 대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뜨거움을 피하려 정원 양편에 자리한 벤치들 중 그늘을 드리운 벤치에 앉았다.

그때 저편에서 보이는 우리 한복의 고운 자태. 젊은 한국여인 셋이 한복을 입고 양산까지 받치고 거니는 중이다.

이 삼복더위에 한복이라. 보는 사람도 안스러운데 짧고 얇은 여름 한복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벨베데레 하궁
벨베데레 하궁
벨베데레 하궁

벨베데레 하궁 내부에 입장한 건 정말 오랜만이다.

작품 관람을 위한 건 아니지만, 하궁 로비의 창을 통해 보이는 정원과 상궁의 모습이 참 예쁘다. 

 

시차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 뜨거움 아래 2시간을 넘게 걸었더니 온몸이 나른하다.

갔던 길을 되짚어 숙소로 돌아와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야구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시청하는 기분이 썩 괜찮다.

4시가 넘자 기다렸다는 듯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알람을 맞춰두고 잠시 눈을 붙였다.

 

저녁 시간, 어제도 2-3번은 들은 경찰차 또는 앰블런스 소리가 오늘도 멀리서 들려온다.

빈에 살던 2005년부터 2008년까지엔 거의 들어본 적 없는, 반갑지 않은 소리다.

열대야 없는 빈의 여름 하루가 평온히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