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너머의 먼 서울에서 남편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두 남자는 저녁 식사 중이라며, 빈에서의 내 점심 메뉴를 궁금해한다.
오늘 점심으론 피맥이고, 와이파이로 열심히 관람하는 야구 중계는 덤이다.
일만킬로 저편에서 뛰는 선수들을 작은 휴대폰으로 볼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시차 적응이 안 되는 가장 큰 증상은 낮잠이다.
서울의 밤에 해당되는 오후 3-4시 무렵엔 엄청난 무게의 눈꺼풀이 얼굴을 덮는다.
서울에선 웬만해선 낮잠을 안 자는 나도 이 눈꺼풀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3시간을 뒤척이다 저녁 7시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서머타임 생생한 7월이라 밖은 여전히 밝다.
18번 트램을 타고 중앙역으로 가서 U1을 타면 구시가로 가는 최단 코스다.
빈의 구시가는 빈 자체다. 궁전과 극장과 미술관과 시청이 빈의 역사가 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다.
U1, U2, U4의 환승역인 Karlsplatz 앞엔 빈 국립오페라하우스가 저녁어스름을 떨치며 아름다운 라인을 드러낸다.
오페라하우스 뒤편엔 전통과 품격을 자랑하는 사허호텔이 자리하고 있고,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알베르티나 미술관이다.
꽤 오래되긴 했지만, 오페라하우스도 알베르티나도 빈에 살던 예전에 그 내부에 발을 들여놓았던 곳이다.
일요일 저녁이라, 게다가 식사 때도 지난 시각이라 구시가는 한적한 편이다.
영화 '비포선라이즈'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알베르티나에서 바라보는 정경이 익숙하면서도 다정스럽다.
사허 호텔도, 카페 모차르트도, 또 알베르티나 계단 앞 도로도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 듯 친근하다.
문 닫을 준비를 하는 기념품점의 진열장엔 클림트가 있고, 씨씨가 있고, 모차르트가 있다.
그들이 빈을 지키는 동안 난, 아니 우리는 이 도시를 무던히도 그리워했었다.
캐른트너 거리의 노트제는 늘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고, 빈의 상징인 슈테판 성당은 경건하고 웅장하다.
그라벤 거리에선 낮은 어둠을 뚫고 현악기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파헬벨의 '캐논'.
그라벤 거리의 율리우스마이늘 앞에 서서 조명을 헤아리며 왕궁 쪽을 바라본다.
캐른트너, 슈테판, 그라벤, 콜막트, 왕궁, 우린 늘 이 순서대로 혹은 거스른 순서대로 빈의 구시가를 거닐었었다.
시청사 가는 길을 잠시 잃고 헤매다-역시 어둠은 무섭다. 빈에서 헤매다니- 시청사는 다음으로 미루고 밤을 걷는다.
서늘한 빈의 여름밤이 하루 더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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