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오후 1시, 아침 일찍부터 여기저기 쏘다녔더니 배가 몹시 고팠다.
숙소로 가서 점심식사를 할까 하다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혼자 식당에 들어가기로 한다.
생전 처음 나홀로여행을 하다보니 숙소 아닌 밖에서 혼자 식사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생각해보니 서울에서도 한번도 식당에서 혼밥을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작년에 아들녀석과도 와서 맛있게 먹었던 곳, 물론 이곳이 맛집은 아니다.
그저 빈에 살 때의 추억이 있는 곳이고 익숙해서 편안한 곳이다. 평일 점심엔 아주 착한 가격.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 2층에서 미네랄워터를 주문하고는 회전테이블에서 열심히 연어초밥과 새우튀김을 골라놓는다.
연어는 아주 뛰어난 품질은 아니지만 자연산인 듯한 빛깔과 식감으로 괜찮은 맛을 선사해 준다.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친 후 트램을 타고 숙소로 가는 길, 칙칙했던 하늘이 청명하게 개어있다.
숙소에 도착해 누워있다가 앉아있다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마음껏 쉰다. 난 이런 쉼의 시간이 참 좋다.
한가로운 여행,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행, 스케줄에 나를 밀어넣지 않는 여행이 정말 좋다.
쉔브룬 갈까말까. 작년에 눈도장 찍었는데, 또 갈까.
어차피 궁전 내부엔 안 들어갈 건데, 정원은 더울 텐데 어쩌지.
그래도 쉔브룬을 거를 순 없다는 생각에, 여기도 일상이란 생각에 그냥 터벅터벅 천천히 그곳으로 향한다.
내가 아는 쉔브룬 궁전의 효율적인 내부관람 방법은 아침 개관시각 훨씬 전에 도착하기다.
늘 붐비는 내부관람 대기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선 이 방법이 최선이다.
차선은 오픈 마감 2-3시간 전쯤 내부관람 시작하기. 물론 정원만 산책할 것이라면 언제든 괜찮다.
무료입장인 쉔브룬 정원은 그다지 붐비지 않으니까.
나는 궁전 내부관람은 쉔브룬-대여섯번쯤 관람-은 물론 베르사유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성(城)-영주나 귀족이 살던-의 내부 관람은 정말 좋아한다.
크로이첸슈타인처럼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 요새 역할까지 하는, 게다가 해자(환호)가 있는 성이라면 정말 최고다.
합스부르크의 여름 별궁인 쉔브룬의 정원을 혼자 거닐다....
정말 낭만적일 것 같지만, 난 이 역사적인 정원에서 두 번이나 타인의 부름을 받았다.
쉔브룬 정문에서 궁전을 향해 가던 중, 사진을 찍어달라는 3명의 백인, 난 웃으며 셔터를 눌러주었다.
그리고 궁전 건물을 지나 글로리에테로 향하던 중, 나를 부르는 중남미 남녀커플.
흔쾌히 찍어드리지요, 그리고 내 모습도 찍어주시지요.
덕분에 모델 할 일 없었던 햇살 좋은 쉔브룬에서 내 인물사진 2장을 남기게 되었다.
국립오페라하우스가 있는 칼스플라츠 다음역인 케텐브뤼켄가쎄역엔 유명한 재래시장인 나슈막이 있다.
나슈막은 상설 재래시장 뿐만 아니라 토요일엔 벼룩시장이 열리는 곳이다.
나슈막도 빈에 살 때 가끔 들렀던 곳인데,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라 다른 재래시장이나 마트보다 저렴하지는 않다.
작년 여름에 들르지 않았던 곳이라 이번에 찾아오기는 했지, 내 눈이 확인하고 싶은 건 시장이 아니다.
나슈막 건너편엔 현대 건축의 선구자인 오토 바그너가 설계한 마욜리카하우스와 메다용하우스가 있다.
특히 마욜리카하우스는 파사드 전면이 꽃무늬로 덮인 오스트리아의 유겐트슈틸-아르누보-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벽면을 덮은 붉은 장미 무늬는 표층에 새겨지지 않은 2차원적 그래픽 무늬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건축이나 디자인에는 아는 게 없는 문외한이라 그 위대함과 대단함엔 접근하지 못하겠지만, 획일적이지 않은 아름다움,
그리고 건축물이 주는 독특함과 개성에서 가치를 느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U4를 타고 중앙역에서 트램으로 환승하여 숙소 근처 Hofer로 간다. 오늘도 호퍼를 빼먹을 순 없지.
그런데, 호퍼에서 요상한 마이너맥주를 장바구니에 넣는 한국 젊은이들-20대-을 발견하곤 나도 모르게 참견을 했다.
그 맛없는 싸구려맥주-스파나 빌라엔 절대 안 파는- 마시고는 오스트리아 맥주 맛없다고 할까봐 말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것저것 기본 없는 그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난 금세 난감해하며 후회했다.
아, 모른 척 해야했어. 맛대가리 없는 맥주를 마시든 먹든 그냥 내버려둬야했어.
오후 8시, 서머타임까지 더해진 비엔나의 여름 해는 오래도록 짱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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