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40분, 오늘 아침처럼 트램 O를 타고 또 71번 트램을 타고 구시가로 향했다.
맑고 푸른 오후의 목적지는 오로지 미술사 박물관. 미술사박물관은 전시된 미술 작품들도 훌륭한 볼거리지만, 건물 자체도
그에 못지 않은 출중한 작품이다.
미술사박물관 앞에서 거리 공연하는 사람들의 차림새가 특이하다.
동물 입체가면을 쓰고 열심히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주목을 끌기는 했으나 그다지 흥미로운 공연은 아니었던 듯 싶다.
스치듯 지나쳐 바로 미술사박물관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미술사박물관의 관람요금은 14유로이고, 미술사박물관을 비롯해 신왕궁 등까지 1년동안 무제한으로 관람할 수 있는 연간회원 요금은
34유로다. 빈에 살 때, 연간회원으로 등록해서 이곳 관람을 자주 했으면 좋았을텐데, 왜 그땐 이런 생각을 안했을까.
암튼 미술사박물관 관람은 이번이 너댓번째인 듯하다.
12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미술사박물관엔 합스부르크왕가에서 수집한 40만점이 넘는 작품이 있다고 한다.
이집트관, 그리스로마관을 시작으로 루벤스, 벨라스케스, 브뤼겔 등의 명작이 즐비한 회화관, 또 동전컬렉션과 보물관까지
다양하고 수준 높은 작품들이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전시품들의 수량만 놓고 보면 결코 파리의 루브르에도 밀리지는 않지만, 실제론 루브르보다는 작은 규모다.
이번 관람에서 눈여겨본 공예품은 16세기에 제작되었다는 소금그릇.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의 유리관 안에 고이 모셔진 소금그릇은 금으로 만들어져 우아함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우연히 발견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인물을 표현한 조각상들도 나의 관심을 끌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가문의 유전인 주걱턱이 대대손손 이어졌다고 한다.
회화관은 미술사 박물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된 그림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회화관 전시실의 분위기를 아주 좋아한다.
전시실의 중앙엔 긴 의자가 여러 개 놓여있으니 누구든 의자에 앉아 방향을 바꾸어가며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실의 의자는 체력이 방전되어 다리가 아플 때도 유용하지만, 그림이란 적당한 거리를 두어 즐겨야 하는 법이니
이는 최고의 아이디어다.
여기저기서 작은 한국말이 들려온다. 우리의 관람 문화도 예전보다는 성숙해진 것 같다.
전시실을 천천히 둘러보는 중, 나를 호출하는 한 남자, 혼자 왔는데 사진 한 장 찍어달란다.
미술사 박물관의 중앙 계단에선 클림트의 작품도 볼 수 있다.
클림트의 초기작이라는데, 계단 기둥의 윗부분을 보면 클림트 작품임을 단번에 알 수 있는 벽화가 화려하게 채색되어있다.
미술사 박물관 내부엔 우아한 분위기의 카페도 자리해 있는데,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를 즐겨하는 편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아보진 않았다. 카페 가기는 다음 관람을 위한 숙제로 남겨두기로 했다.
미술관 안에서 4-5시간을 머물렀나 보다. 다리와 허리에서 한계 신호를 보낸다.
숙소에 돌아오니 6시반이 넘어 있다.
음악을 들으며 아침에 널어놓은 빨래를 챙기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누구지 하며 말을 건네려다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더니 더이상 초인종은 울리지 않았다.
빈을 떠날 날이 가까워져 아쉽지만 오늘의 긴 미술관 관람은 가슴벅차다.
하늘은 아직 대낮 같아도 하루가 또 이렇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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