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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7 스페인

3. 세고비아의 수도교 : 1. 11 (수)

점심식사 후 세고비아로 가는 동안 하늘에 먹장구름이 몰려있다.

그러나 비구름은 아닌지 구름 바로 아래로 들어도 다행히 비가 쏟지는 않는다.

거의 2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한 세고비아의 하늘도 아주 맑지는 않다.

 

세고비아의 알카사르
세고비아의 알카사르
세고비아의 알카사르

깎아놓은 듯한 절벽 위에 세워진 세고비아의 알카사르는 디즈니 만화영화 '백설공주' 성의 모델이 된 곳이다.

알카사르의 오른쪽은 뱃머리 형태이고 전체적인 성의 자태가 마치 바다 위를 항해하는 우아한 선박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아래에서 보기엔 성이 올려진 절벽이 그다지 높아보이진 않았는데, 성으로 오르는 길이 생각보다 길고 높았다.

화려한 궁전보다 중세의 고성을 좋아하는 나는 내부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뭐 단체여행이니 참을 수밖에.

 

잠시 자유시간이 주어지고 모두들 성 바로 앞에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데, 예고없이 집합을 주도하는 가이드씨.

정말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단 몇 초만에 다 집합했는데, 4명의 여인만이 보이지 않는다.

30초쯤 후, 성 맞은편 카페에서 커피를 든 채 정신없이 뛰어오는 4명의 여인과 그 여인들 중 한 사람이 건넨 커피를 물리치며 

예쁘지 않은 말-비속어는 아님-을 내뱉는 가이드씨.

 

이건 뭐지, 집합 시각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고, 잠시 사진 찍고 어쩌고 하라고 하다가 모이래서 모였는데, 5분 10분도 아니고

단 몇 초 늦은 걸로 이렇게 화 내고 주의 받는 상황이라니. 우리는 가이드씨에게 뭘까.

서비스는 대체 누가 해야 하고 누가 받아야 하는 걸까.

 

마요르 광장
세고비아 대성당

세고비아의 마요르 광장과 대성당은 서로 마주하고 있다할 만큼 가까이 있다.

마요르 광장엔 시청사가 자리하고 있고, 1525년에 건축하기 시작하여 1768년에 완공된 대성당은 별칭인 '귀부인'처럼

세련되고 우아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대성당 역시 외관만 슬쩍 보고는 지나쳐야 한다.

 

세고비아
세고비아

거리의 기념품점에서는 세고비아 명물인 새끼돼지통구이를 상징하는 듯한 돼지 저금통을 판매하고 있고, 기타 -예전 우리나라에 있던

세고비아 기타와는 관련 없음-모형들도 다양하게 진열하고 있다.

수도교로 향하는 세르반테스 거리엔 호텔과 레스토랑도 있고 신발가게, 옷가게도 정겹게 줄지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세고비아 수도교
세고비아 수도교
세고비아 수도교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게문화유산인 세고비아 수도교는 세고비아로부터 17km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세웠으며

1세기 후반에 건립되었다. 17km에 이르는 수로 중 수도교 길이 728m, 가장 높은 곳은 28.29m, 기둥 160개, 아치는 167개다.

접합재 없이 화강암만 쌓아올려 만들었다고 하는데, 고대에 이러한 건축물을 세워내다니 엄청나고 대단한 기술이다.

 

수도교가 건립될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로마의 식민지였고 세고비아는 평원에 자리해 있어서 수원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외곽에 있는 프리오 강에서부터 세고비아 중심부까지 17km에 이르는 긴 수로를 만들었다.

수도교는 긴 수로 중에서 교량 구간을 가리키는데, 로마인들이 굳이 애써 수도교를 만든 이유는 무얼까.

수도교 앞 광장에서 양 옆을 보면 언덕 때문에 광장은 협곡처럼 보이는데, 양쪽 언덕 사이에 구조물을 세워 두 언덕을 연결해야만

목적지까지 무사히 물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고비아 수도교
세고비아 수도교

고대인들에게 거대한 수도교는 악마의 구조물이라 불리며 경외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고 하는데, 이에 얽힌 전설이 있다.

 

물주전자를 들고 매일 힘들게 언덕을 오르내리던 한 소녀는 새벽닭이 울기 전에 집까지 물길을 내주겠다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게 된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소녀는 애절하게 또 간절히 기도를 한다.

그동안 악마는 수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태풍 때문에 공사가 늦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새벽닭이 울고, 그때 악마는 마지막 돌 하나만 남긴 채 건축물을 거의 완성시킨 상태였다.

결국 소녀의 영혼은 악마에게 넘어가지 않았고, 수도교는 세워졌다.

소녀는 간밤의 일을 주민들에게 말하고, 사람들은 수도교를 받아들이며 그곳을 흐르는 물을 성수로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건국신화 속 로물루스와 레무스

수도교 전설 소개를 마치고, 로마 건국신화 속 로물루스와 레무스 조형물을 안내한 후 드디어 자유시간이다.

우리는 수도교 앞을 거닐고 수도교 옆을 오르고, 또 기념품점을 후다닥 들락거리며 세고비아에 온 기쁨을 펼친다.

그런데, 자유시간은 왜 이렇게 후딱 지나는지 금세 집합 시각이다. 

그러나, 그 사이 변고가 생겼으니 우리 버스가 고장이 나서 정비 중이란다.

가이드씨는 늦어지는 30분 동안 커피를 사겠다고 하고, 우리와 4인의 여인은 2차 자유시간을 원했다.

 

아까 시간이 바빠 먹지 못했던 추로스와 커피도 먹어주고, 추로스가게에서 알려준 마트에 들러 물, 귤, 와인, 치즈를 구입했다.

한국식당에서의 저녁식사 후 도착한 마드리드 호텔 로비엔 체크인을 기다리는 다른 한국인 단체여행객이 그득하다.

아, 자유여행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자유의 소중함을 단체여행에서 느끼다니, 어느 광고 카피처럼 '여행은 자유'인데 말이다.

오늘의 전리품인 와인과 치즈 그리고 서울서 들고온 먹거리들과 함께 우리들의 담소는 마드리드의 밤을 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