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프라하에 도착한 어제 오후부터 내내 구시가 광장과 카를교 주변만 오락가락하다가 이제 프라하성으로 간다.
카를교를 건너고보니 프라하성 가는 길이 가물가물하다. 당연하지, 10년 만인데....
프라하성 방향의 완만한 비탈길에 이르자,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사실 내가 가려는 곳, 또 가고 싶은 곳은 프라하성이 아니다.
프라하와 뗄 수 없는 드라마인 '프라하의 연인'에 나왔던 재희 집을 가려는 것이다.
작가의 초기작인 '프라하의 연인'은 전작인 '파리의 연인'에 비해 시청률도 낮았고 일부 배우들의 연기력도 아쉬웠지만,
난 '파리의 연인'보다 '프라하의 연인'이 훨씬 마음에 와 닿았고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 것도 아니고 파리보다 프라하란 도시를 더 좋아한 것도 아닌데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건 비엔나에
살던 2005년에 이 드라마를 시청해서일 거다. 비엔나에서 차로 4시간밖에 안 걸리는 유럽 도시를 배경으로 해서 드라마가
전개된다는 건 꽤나 흥미로웠다. 마치 우리 동네를 배경으로 한 듯 짜릿했으니까.
'프라하의 연인' 속 재희네 집 앞에선 영우(김민준)가 집을 지키고 있는 혜주(윤세아)로부터 재희(전도연)의 부재를 확인하고
돌아서기도 하고, 마라톤을 마친 상현(김주혁)과 재희가 집 앞 계단을 오르며 사랑과 마라톤의 공통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 재희는 어느 밤, 이 계단에 앉아 홀로 캔맥주를 마시며 회상과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물론 '프라하의 연인'에서는 네루도바 거리 근처의 재희 집만 배경이 되는 건 아니다.
카를교도 나오고 블타바강과 카를교의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도 등장하고, 구시가 광장과 구시가의 골목골목이 모두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소재가 된다. 프라하에서 재희는 추억을 만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행복한 미래를 만난다.
드라마 속 재희처럼 집 앞 계단에 앉고 싶었지만 비에 젖었기에 이건 패스, 그저 계단에 서보고 대문을 바라본다.
프라하성으로 가는 경사로에 자리한 건물의 담벼락이 참 많이 낡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어느 새 비가 그쳐있다.
우린 프라하 성의 왕궁도, 성 비타 성당도, 성 이지르 교회도 내부엔 별로 관심이 없다.
10년 만에 프라하에 왔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프라하 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는 것만 확인하면 된 것이었다.
성 비타 성당 앞 비 젖은 광장을 걷고 또 걸으며 그곳의 정경을 마음에 담고 사진에 담았다.
성 이지르 교회 앞을 지나자, 눈에 띄는 황금소로, 그 출입문이 개방되어 있다.
황금소로는 중세에 연금술사들이 거주했던 좁은 골목으로, 그 중 22번지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집이었다고 한다.
2005년 즈음엔 입장료 없이 무료개방되었던 골목인데, 그 이후엔 유로로 전환되었다.
근데, 열려있는 걸 보니 오늘 무슨 날인가, 관람시각이 끝나서 정리하느라 열어놨나.
덕분에 잠시 한적한 골목을 걸어본다. 색색의 집들이 참 예쁘다.
성으로 오를 때와는 반대 방향의 언덕길을 내려와 카를교 아닌 블타바강의 또다른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프라하 교향악단의 본거지인 '루돌피눔'이 저편으로 보인다.
루돌피눔 앞인가 어딘가에 체코의 국민음악가 드보르작의 동상이 있었는데....
두 시간쯤 쏘다니다보니 또 식사 때다.
점심의 첼니체에 이어 저녁에도 한국인에게 인기폭발 레스토랑인 믈레니체로 간다.
믈레니체는 프라하 1구에 1호점과 2호점이 있는데, 우리가 간 곳은 2호점으로, 숙소에서 아주 가깝다.
폭립과 샐러드, 감자요리, 그리고 맥주는 우리에게 프라하에 온 기쁨을 1시간 넘도록 깊고 진하게 전해준다.
특히 코젤과 필스너 500ml짜리 네 잔이 170코룬-약 8,500원-이라니 맛과 가격이 정말 환상적이다.
식사 후 믈레니체와 숙소에서 모두 가까운 지하철 역 Staromestska역에 들러 Tabak에서 내일 필요한 티켓을 미리 구입했다.
그 후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그러니까 카를교 앞 횡단보도에서 앗, 정말로 이럴 수가, 눈에 확 띄는 흰옷 입은 지인을 발견했다.
그 지인은 쉬리언니의 모임-우리 모임 말고- 일원으로 이번에 쉬리언니와 함께 동유럽여행 중이었던 것이다.
재빨리 난 쉬리언니를 찾았고, 이 기적적인 조우를 즐길 겨를도 없이 우린 곧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패키지여행 중이었으니 가이드를 따라 바로 이동-2017년 1월 스페인패키지여행을 겪어보니 이해백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편 폰의 앱에선 오늘의 도보 거리를 알려준다.
천천히 놀다가 걷다가 했음에도, 많이 움직이는 아주 건강한 여행을 만들고 있다.
'표류 > 2016 두브로브닉·프라하·빈' 카테고리의 다른 글
8. 3 (수) 후 : 빈의 여름 밤 하늘 (0) | 2017.02.13 |
---|---|
8. 3 (수) 전 : 빈으로 가는 기차 (0) | 2017.02.11 |
8. 2 (화) 전 : 천문시계탑에 오르다 (0) | 2016.11.16 |
8. 1 (월) 후 : 10년 만의 프라하 (0) | 2016.10.31 |
8. 1 (월) 전 : Bye, 두브로브니크 (0) | 2016.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