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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7 프푸·하이델·콜마·파리

8. 3 (목): Hallo, 프랑크푸르트

고온다습한 여름은 좋아하기 힘든 계절이지만, 내게 아니 우리에게 있어 여름은 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여름은 멀리 비상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선물 같은 시간이 되어주니까.

 

기온 높고 습도 높은 지난 밤, 안방과 거실을 오고가느라 또 에어컨을 켰다끄기를 반복하느라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우리의 출발을 예감했는지 막내녀석-Ttori-도 밤새 오락가락하며 우리와 함께 잠을 설쳤다.

큰아들에게 막내를 당부하고 길을 떠나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늘 타향병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 또한 녀석들의 운명인 것을.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는 점차 만차를 이루고, 도로는 여름 휴가의 성수기를  입증하려는듯 정체를 거듭한다.

11시에 도착한 공항은 생각보다 붐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여유롭고 한산했다.

우린 루프트한자 앱을 통해 이미 어제 온라인체크인을 했기에, 온라인체크인을 마친 탑승객들만을 위한 짧은 줄에서

짐을 부치고 탑승권을 받는데 걸린 시간은 단 10분.

 

인천공항
인천공항
탑승동에 위치한 아시아나 라운지

얼마 전 발급받은 플래티늄카드로 투썸플레이스에서 무료커피를 받고, 남편 휴대폰의 로밍도 확인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늘 미뤘던 자동출입국심사 등록까지 마치니 이젠 검색대를 거쳐 탑승동으로 갈 일만 남았다.

플래티늄카드-가족카드 포함-로 입장한 탑승동의 아시아나 라운지는 휴식을 취하기엔 괜찮은 분위기였다.

음식의 가짓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조도가 높지 않고 조용해서 쉬기엔 나쁘지 않았다.

 

루프트한자 항공기
루프트한자 항공기

루프트한자 항공기에 탑승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엔나에서 귀국한 2009년, 그해 여름의 루프트한자 항공권을 초저가로 예약했지만 우린 서울을 떠나지 못했다.

남편은 갈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고, 모자(母子)만의 여행을 끈질기게 만류한 남편 덕에 난 항공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인천공항의 하늘은 더없이 맑고 상쾌하다. 1,2층으로 이루어진 프랑크푸르트행 루프트한자 A380 항공기에 오른다.

사실 난, 타고 내릴 때는 물론 짐 찾을 때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많은 승객을 태우는 A380류의 기종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루프트한자 A380과 타항공사 A380과의 차이점이라면, 2층이 비즈니스석으로만 이루어진 타항공기-KAL-와는 달리

2층 뒤편에 5열 정도의 일반석이 있다는 것이다.

Seatguru를 통해 정보 입수 후, 일반석이라도 조금 편히 갈 계획으로 우린 2층 비상구석을 미리 유료로 확보했다.

그리하여 아주 여유롭게 2층을 통해 탑승했으니 복작거리지 않아서 마음마저 편했다.

 

루프트한자 A380 2층

조용하고 넓은 2층 비상구석에 앉았으나 중국항로승인 문제로 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 앞쪽은 몽땅 비즈니스석. '어때, 비즈니스석 보니 저기 타야겠다는 생각이 안 드시나'라는 나의 말에 대한

남편의 답변, '여기도 비즈니스석 못지 않은데 뭐.'

그러세요, 그럼 앞으로 나만 비즈니스석에 탈 테니 아자씬 비상구석에 앉아 열심히 비상시를 대비하세요.

다행히 예정보다 1시간 늦은 3시 40분에 이륙한다. 요즘 이 정도 지연 출발은 애교 수준이다.

 

루프트한자 A380 2층

잦은 난기류 속에서 식사를 하고 컵라면도 먹고, 영화를 두 편-미녀와 야수, 공조-이나 보다보니 시간은 잘도 지나간다.

게다가 '테이스터로드: 푸드페스티벌'은 출연자들이 얼마나 웃음을 주는지 정신없이 깔깔거렸다.

출발이 늦으니 도착도 늦다. 10시간 넘게 비행을 했지만 떠나던 낮의 인천공항처럼 프랑크푸르트 저녁도 맑은 하늘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입국심사를 마치고 캐리어를 찾아 중앙역으로 향한다.

공항에서 중앙역까진 S-bahn으로 4정거장, 아주 가깝다.

역에 내려, 바로 앞에 호텔을 두고 잠시 헤매다가 또 금세 발견하여 무사히 체크인 하고 나니 벌써 9시다.

스산한 여름밤의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다인종의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어수선함과 활기가 나란히 퍼진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부근 맨하튼호텔

호텔 근처의 REWE에서 물과 맥주를 사들고 호텔 객실로 들어와, 잊고 있던 휴대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서울을 지키고 있는, 막내를 지키고 있는 아들녀석에서 톡을 날린다.

프랑크푸르트 잘 도착, 별일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