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9년 만에 하이델베르크를 다시 찾았다.
빈에 살던 2008년 3월 말. 짧은 부활절 방학과 휴일을 이용해서 로텐부르크에서 2박을 하며 이곳엘 들렀다.
4월이 코앞이었지만 하이델베르크를 찾은 바로 그날, 때 아닌 눈이 내렸었다.
남편은 로텐부르크보다 하이델베르크의 색채와 웅장함에 훨씬 더 감동했었다.
http://blog.daum.net/stelala/14476441 (2008년 3월 23일의 기록)
우리 숙소는 중앙역과 Hauptstrasse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아니 실제론 비스마르크 광장 쪽 Hauptstrasse 초입과 훨씬 더 가까우니 당연히 Hauptstrasse까진 걸어갈만한 거리다.
비스마르크 광장을 지나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 Hauptstrasse는 말 그대로 하이델베르크의 최중심이다.
토요일 오후 5시, 조금 전에 내린 비 소식을 잊은 도시는 청명하고 쾌적하다.
사람들과 마주치고 다양한 상점들을 만나며 긴 거리를 걸어본다.
거리 악사가 들려주는 음악에 이끌리기도 하고, 작은 공원에 놓인 벤치에 앉아 오래된 도시의 흔적을 느껴보기도 한다.
하이델베르크 숙소 후보 중 하나였던 '페르케오 호텔' 앞을 지나면서는 친근한 미소가 절로 떠오른다.
'페르케오'라는 이름은 하이델베르크 성 안의 22만 리터짜리 와인통 지킴이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늘 와인에 취해 있었다는 페르케오, 취한 눈빛으로 그는 세상과 어떤 심경으로 소통했을까.
유럽 여행시 우리가 선호하는 숙소 형태는 호텔 반 아파트 반이다.
호텔의 편리함과 아파트의 편안함을 두루 느껴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하루에 한 번쯤은 쌀알을 섭취해야 하는 남편 덕에, 그리고 유럽에만 가면 라면이 땡기는 내 위장 덕에 아파트는 필수다.
2016년 여름엔 두브로브닉은 아파트, 프라하는 호텔, 비엔나는 아파트에 머물렀고, 이번 여행에선 프랑크푸르트와 콜마르는 호텔,
하이델베르크와 파리는 아파트로 일찍이 낙점했다. 그러던 중 하이델베르크 숙소를 Hauptstrasse에 위치한 호텔로 바꾸는 시도를
해보다가 최종 정한 곳이 원안 그대로 하이델베르크 보딩하우스였다. 그때 고려했던 호텔 중 하나가 '페르케오 호텔'이었던 것이다.
Hauptstrasse는 비스마르크 광장 옆부터 하이델베르크 성 앞을 지나 동쪽으로 더 가야 하는 2km 넘는 긴 대로다.
이 거리가 중심이 되어 동서남북으로 오래된 거리가 펼쳐지고,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학생감옥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
마르크트 광장, 칼스 광장, 하이델베르크 성, 네카강 등의 명소가 이어진다.
우린 숙소에서 비스마르크 광장을 지나 Hauptstrasse 동쪽을 향해 걸었는데, 가다 보니 Hauptstrasse의 Tschibo를 못 보고
지나쳐버렸다. 치보는 독일의 커피판매점으로, 내일은 일요일이고 모레는 프랑스 콜마르로 가야 하니 오늘이 아니면 구입불가다.
Hauptstrasse 중간쯤까지 이미 와 버린 상황이었다.
몸이 방전되어 다시 서쪽으로 돌아갈 수도, 마르크트 광장이 있는 동쪽으로 더 갈 수도 없었다.
치보 커피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걸음을 멈춘 곳 근처의 피터 교회 앞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Hauptstrasse에서 해야 할 나머지 것들은 모두모두 내일로 다 미뤄버리기로 했다.
비스마르크 광장 앞에서 버스를 내려 REWE엘 다시 들었다.
종류가 많진 않았지만 판매되는 것만으로 다행인 치보커피를 집어들고 Pfand-병, 캔의 보증금- 높은 맥주도 집었다.
내가 REWE에서 중요한 것들을 고르는 동안, 남편은 그 앞 피자 가게에서 양송이 피자를 주문했다.
터벅터벅 움직여 오후 8시에 도착한 숙소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다.
직원은 이미 퇴근했을 터, 객실 키를 갖다대니 스르르 그 안을 내어준다.
어둠 내린 창가의 식탁에서 나누는 독일 피자와 맥주는 아주 근사했다.
맥주 한 잔에 쓰러져 정신 놓고 자다가 자정쯤 다시 일어나 하루를 정리하고 기록한다.
오늘, 모두 계획대로 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근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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