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에 눈을 뜨고 4시경 다시 잠들었다가 6시반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행지에서의 첫 아침, 이 정도면 최고이자 최선의 시차 적응이다.
7시, 거의 첫 순서로 들어선 조식당의 메뉴는 평범했으나 모짜렐라 치즈와 커피는 아주 훌륭했다.
조식당엔 한국인, 일본인, 아랍인, 백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를 채워간다.
식사 후엔 Pam 마트로 향했는데, 일요일이라 늦어진 오픈 시각까지 잠시 기다려 클렌징티슈와 물 등을 구입했다.
Pam이 호텔 맞은편 Auchan보다 규모도 크다 하여 그곳을 택했는데, 이후 Auchan에도 들러보니 그야말로 대동소이다.
호텔 근처 Caiazzo역에서 2호선 지하철 객차에 오른다.
어제 저녁 중앙역에서 48시간짜리 교통권을 이미 구입했기에 별도의 티켓팅은 필요없는 상황.
스포르체스코성은 1호선 Cairoli Castello역에서 하차하는 것이 가장 가까웠지만, 환승하지 않고 1호선 Lanza역에 내리는 방법을 선택한
남편 덕에 조금 더 여유있게 스포르체스코성으로 향한다.
1450년에 건립된 르네상스양식의 스포르체스코성은 비스콘티 가문의 궁전이라고 한다.
여느 궁전이나 성에 비해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는 스포르체스코성이 우리에게 있어 특별한 이유는 바로 15년 전,
처음 밟은 유럽 대륙의 기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여름, 3주 동안 오스트리아에 머물면서 우연히 버스 여행에 합류하여 들른 곳 중 하나가 이곳이었다.
그때 스포르체스코가 건네준 중세 분위기는 정말 강렬했고, 말을 타고 정원을 순찰하는 이탈리아 경찰의 외모와 분위기는
더욱더 강렬했다. 우리 셋은 함께 성의 정원을 거닐며 여행의 기쁨을 나누었었다.
2004년 8월엔 말 탄 근사한 경찰이 성 안을 순찰했는데, 2019년 2월의 성에선 무장한 군인이 경계의 눈빛을 쏘아보낸다.
흐린 하늘, 15년 전엔 들지 않았던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매월 첫 주 일요일엔 무료관람.
늘 익숙한, 새로울 것 없는 전시품들이 펼쳐지고 우리도 그것들에 낯익은 눈길을 잠시 주었다가 얼른 거둬들인다.
15년 전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 톡에 올리고 서울을 지키고 있는 아들녀석에게 물어보니, 기억이 안 난단다.
그러게, 기억이 나면 오히려 이상하지. 녀석은 너무 어렸으니까. 기억은 추억을 낳고 추억은 또 새 기억을 짓는다.
어, 저거 뭘까. 정원 한 켠의 크지 않은 실내엔 친근한 몸짓의 조각상이 있고 그 앞을 가득 서성이는 사람들.
아무런 준비 없이 이곳을 찾은 까닭에 존재조차도 몰랐던 작품, '론다니니 피에타'라고 한다.
미켈란젤로가 죽기 3일전까지 제작하던 조각상이라는데, 미완성이다.
여전히 흐리디흐린 하늘, 점찍어둔 스포르체스코성 근처의 피자 식당에 가기엔 너무 이른 시각.
그럼 선택지는 오직 하나, 스포르체스코에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두오모다.
두오모 성당보다 먼저 만난 두오모 광장엔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었다.
관광객, 현지인, 팔찌와 옥수수로 결의를 다지는 흑인들, 사람보다 더 많은 비둘기까지.
15년 전에 남편이 두오모 성당으로부터 받은 그때의 감동을 지금 다시 재현하기란 쉽지 않아보였다.
그땐 말이지, 처음이었잖아, 이런 정교한 조각상으로 둘러싸인 건축물을 본 것이 말야.
15년 전과 현재, 우리의 시야와 시각과 관점과 경험은 많이 달라졌으니까.
물론 밀라노의 두오모는 여전히 근사하지만, 그동안 우린 더 다채롭고 더 근사한 것들을 많이 겪었다는 거지.
줄어들지 않는 두오모 내부 입장의 줄을 보며 우린 내일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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