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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9 뮌헨·인스브루크·빈

7. 19 (금) : 여름, 다시 뮌헨

떠나기 전날은 늘 분주하다.

직장 업무를 오전에 마무리한 후, 은행과 한살림엘 들렀으며 집으로 돌아와선 청소와 빨래 그리고 집을 지킬 두 녀석-아들과

강아지-을 위한 먹거리를 장만하고서야 캐리어를 챙겼다.

 

어제처럼 더운 금요일 아침.

우리가 어딜 가는지 언제 오는지 모르는 녀석, 물색 모르는 요 작은 녀석이 한없이 안쓰럽다.

아직 여행의 최성수기가 아닌지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은 한산하다.

 

제1터미널에서 15분 정도 더 걸리는 인천공항 제2터미널엔 남편도 나도 처음이다.

대한항공 퍼스트클래스와 프레스티지클래스 승객을 위한 A카운터의 별도 공간에서 금세 수속을 끝내고

KAL 프레스티지 라운지에 앉았다. 라운지도 음식도 모두 한적하다.

 

프레스티지석 탑승교

탑승 전, 몇 년 만에 인터넷면세점의 물품을 찾으러 인도장에 갔는데 처음 이용한 S면세점의 시스템이 엉망이다.

인도 받을 사람은 많은데 창구는 단 둘, 게다가 모니터도 고장이라 엉망진창이다.

안 하던 짓 간만에 했더니 이런 상황이... 앞으론 안 하던 건 쭉 안하는 걸로.

 

인사 이동으로 올해 옮긴 직장은 매일매일 내적 갈등과 전투의 연속이었다.

전체적인 업무 처리방식이 너무나 달랐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성향과 가치관이 판이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원래 올 여름엔 하반기 이사 문제로 여행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이 희망이라도 없으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서

4월에 에어프랑스 네덜란드항공 비즈니스클래스 특가항공권이 나왔을 때 앞도 뒤도 보지 않고 질러 버렸다.

뮌헨까지 갈 땐 에어프랑스, 귀국시엔 KLM네덜란드항공으로 발권했는데, 출국시 평일 출발 에어프랑스 항공기의

비즈니스클래스는 2-3-2구조라 복잡하고 또 풀플랫이 아니라서 파리까진 대한항공 공동운항으로 선택했다.

대한항공 파리행의 단점은 오후 출발이라 파리 도착시엔 저녁, 뮌헨 도착시엔 밤이 되어버린다는 것.

 

탑승교가 3개나 연결된 대한항공 A380-800에 탑승한다.

거대한 대한항공 A380기엔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탑승하고 그중 1층 맨앞 퍼스트석 12석, 2층 전체엔 비즈니스석 

즉 프레스티지석이 무려 94석, 1층엔 이코노미석이 301석에 달한다.

개인적으로 A380을 선호하지 않는데, 탑승객이 너무 많아 타고 내릴 때는 물론 짐 찾을 때도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물론 비즈니스클래스 탑승이라면 크게 불편하지 않겠지만 늘상 비즈니스만 타고 다닐 순 없으니 말이다.

 

 

우린 대한항공 프레스티지클래스 탑승은 처음. 대한항공 A388은 2층 전체 94석이 프레스티지다.

좌석은 2-2-2 배열이고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앞 4열, 가운데 8열, 뒤 4열.우린 에어프랑스 공동운항으로 탑승했기에

사전 좌석 지정시 모든 좌석이 다 오픈되어있지 않고 가운데 일부와 뒤쪽만 지정이 가능했다.

가운데보다는 뒤쪽이 아늑할 것 같아서 22열로 지정했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다. 

성수기라 해도 워낙 넘치도록 많은 프레스티지클래스라 군데군데 좌석이 비어있다.

 

이륙 전, 통로를 돌아다니며 사무장이 환영 인사를 건넨다.게이트를 출발한 항공기는 예정보다 약간 늦은 2시에 이륙을 한다.

승무원이 점심과 저녁 식사 메뉴를 한꺼번에 주문을 받는데, 난 점심으로 비빔밥을, 남편은 불고기덮밥을 골랐고 저녁은 둘 다

쇠고기안심요리를 선택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불고기덮밥이 부족하다는 승무원의 전언.

우린 함께 비빔밥을 먹었고 난 4편의 한국영화 중 '성난 황소'를 곁들였다. 명분이 이해불가였던 영화.

 

식사 후 난기류가 20여분이나 지속되었고 나의 탄성도 지속되었다.

거대한 몸집이라도 역시 난기류에선 자유로울 수 없나, 거침없이 심하게 흔들린다.

 

낮이라 아니 한국시각으론 초저녁이라 잠을 오래 이루진 못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호텔 뭄바이'를 보며 라면을 주문했다.

큰 컵라면에 뜨거운 물과 각종 재료를 넣어 익힌 후 그릇에 옮겨 담은 맛, 아주 맛있진 않아도 나쁘진 않았다.

자던 남편도 일어나 라면을 요청하고는 맛있게 먹는다.

2층 프레스티지의 맨 뒤엔 승무원이 음료를 제조해 주는 바가 있는데, 한국여인 둘을 제외하면 대부분 백인.

바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우리 자리 주변이 시끄럽지도 어수선하지도 않았다.

 

난 다시 잠을 청하고 남편은 영화를 청했다.

편한 것에도 점차 익숙해지는지-처음 비즈니스석 탈 땐 꿀잠을 잤다는- 자다가 뒤척이며 깨기를 여러 번.

파리 도착 2시간 전 두번째 기내식인 안심스테이크가 제공되었지만, 이미 배부르고 별맛 없어 반도 채 못 먹고 대신 과일은

열심히 먹어주었다.

 

그런 다음 남편이 던진 폭탄 같은 말, 우리 바로 뒤에 배우 조ㅇ성이 앉아있어.

맨 뒤 23열 AB 중 한 좌석이 비었다는 건 화장실 오가다 알았지만, 사람 얼굴을 잘 안 보고 다니는 나는 창가쪽 탑승객 얼굴을

쳐다 볼 일이 없었기에 그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지 못했었다.

남편은 처음엔 언뜻 봐서 닮은 사람인가 했다는데 지금 앉은 채 자고 있어서 빤히(?) 보니 맞단다.

아, 그걸 왜 이제 말하는 거야, 긴가민가 했을 때 바로 말했어야지라며 성토한 후 확인하니 맞다, 조배우.

물론 내가 조배우의 열혈팬도 사생팬도 아니지만, 그림 같은 배우가 우리 뒷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더 즐겁고

기쁜 비행이 되지 않았을까.

 

착륙을 전하는 멘트가 흐르고 나도 조배우도 창의 블라인드 3개를 씩씩하게 열어 올린다.

착륙 후 모자와 밀착형 마스크로 무장한 조배우, 숨길 수 없는 기럭지로 파리 입국심사를 향해 홀로 걸어간다.

   

파리 에어프랑스 비즈니스 라운지

KE901은 파리 공항 2E터미널에 도착했고 환승을 위해 2F터미널로 가는 중 검색대와 입국심사를 거쳤다.

아, 파리, 작년 여름의 파리 공항은 전쟁 같았는데, 지금 파리는 평화 그 자체구나.

감회를 토하며 에어프랑스 비즈니스라운지에 입장했는데, 너무나 좁고 답답하다.

내 휴대폰에, 준비해 온 유심-남편은 핫스팟으로-을 갈아끼운 후 음료와 약간의 간식만 취한 다음 라운지를 빠져나왔다.

 

대낮 같은 저녁 8시 30분, 뮌헨행 에어프랑스에 오른다.

아니 항공기까지 데려다 줄 버스를 타기 위해 게이트에 들어선다.

맨 앞 1열 DEF 중 E는 블록으로 하고 DF에 앉으니 또다시 승무원이 내주는 한 상, 도대체 하루에 몇 끼를.

흰살 생선을 싱싱했으나 짰고, 후식의 비주얼을 훌륭했으나 마카롱은 결코 쫀득하지 않았다.

 

뮌헨 공항

식사 후 정신없이 자고 나니 뮌헨 공항, 이미 아득한 밤이다.

다시 공항 내 이동버스를 타야 했고 캐리어를 받아야 했고 뮌헨 중앙역행 S-bahn을 타야 했다.

밤 11시 22분에 뮌헨 공항을 출발하는 S8엔 생각보다 승객이 아주 많다.

42분 후 도착한 뮌헨 중앙역, 어둠이 도보 5분 거리의 숙소를 가리고 있었다.

길찾기가 안 되고 있는 일 안하는 유심 대신 구글 위치 정보를 활용하여 숙소로 움직였다.

 

대한민국은 이미 20일 아침인 시각, 다시 여름의 뮌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