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아침, 밖에선 출근하는 발걸음과 승용차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
마지막 남은 즉석밥에 짜장을 비벼먹고 납작복숭아와 커피까지 먹고 나면 멀리 갈 준비 완료다.
9시 15분, Hernals역에서 S45를 타고 하일리겐슈타트에 내렸다.
오늘 행선지인 크렘스와 뒤른슈타인에 가려면 빈 시내 교통카드 아닌 별도의 기차 티켓이 필요하다.
탑승할 때마다 티켓을 발권하는 방법도 있지만, 2명 이상 움직이는 경우엔 Einfach-Raus-Ticket을 구입하면 경제적이다.
이 기차 티켓은 평일 9시부터, 주말과 휴일은 새벽부터 종일 OEBB의 S, R, Rex 기차를 무제한 이용 가능하며 2인 기준 €35,
인원이 늘어날수록 금액도 몇 유로씩 추가된다.
우린 티켓을 창구에서 구입했는데, 나이 지긋한 직원이 남편 이름을 묻더니 직접 기재-인쇄-해서 건네준다.
기차 승차까진 여유가 있어, 칼막스호프 사회 주택의 드넒은 안쪽 정원까지 둘러본 다음 Rex 2층에 올랐다.
기차는 정시에 출발하였으나 10분 연착했다. 그러면 일정을 변경해야 한다.
원래 계획은 크렘스에 도착한 후 뒤른슈타인행 기차로 갈아타고 먼저 둘러본 다음, 돌아오면서 크렘스 눈도장을 찍으려 했는데,
순서를 바꿔 크렘스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크렘스도, 뒤른슈타인도 빈에 살 때 두어번 왔던 곳이다. 물론 그땐 승용차로 이동했기에 오늘 같은 기차 이동은 처음이다.
맑은 하늘, 천 년 넘은 도시 크렘스는 어딜 봐도 아리땁다.
한가로이 걷는 거리엔 여유로움이 넘치고, 구시가를 드나드는 성문은 옛 모습 그대로 운치 있다.
오,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 분점(?)이 크렘스에 있다니~
뮌헨 아우구스티너켈러 같은 야외에 앉아 맥주와 식사를 주문했다.
맥주는 물론, 환상적인 호박수프 그리고 검은빵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굴라쉬, 모두 기분 좋은 점심이다.
오후 1시 20분, 신형 트램 같은 외관을 한, 대기 중인 노란색 R-bahn에 올랐는데, 승객이 거의 없다.
햇살 아래 한참 정차하여 그 내부가 아주 더운 기차가 출발하고, 곧 검표원이 다가왔다.
크렘스행 Rex에서처럼 Einfach-Raus-Ticket을 내밀었더니, 이 기차는 그 티켓으로 승차 불가란다.
Einfach-Raus-Ticket은 OEBB에서 운행하는 S, R, Rex만 승차할 수 있는데, 크렘스와 뒤른슈타인를 오가는 Wachau Bahn은
OEBB 소속이 아니라고 한다.
무슨 소리하시나, OEBB 홈피엔 이 기차가 R-bahn이라고 나와 있구만.
그럼, R-bahn이라고 해도 다 철도청 소속은 아니라는 건가.
그러고 보니 기차 내부나 외관 어디에도 OEBB라고 쓰여 있지 않았다.
검표원이 준 영수증엔 €15.20 -당시 환율 약 21,000원-라고 쓰여있다. 15분 타는 기차 요금이 이러니 승객이 없을 수밖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인 Wachau 지역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뒤른슈타인.
빈에 살 땐 주말에만 두어 번 왔었는데, 그땐 늘 여행객들로 가득하던 곳이다. 평일인 지금은 아주 한적하다.
오래된 마을의 길목 벤치에 앉아 골목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인적도 띄엄띄엄, 뜨끈한 공기마저 느릿한 이곳. 스쳐가는 바람에도 추억이 스며 있다.
영국왕 리처드가 십자군전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오스트리아 대공에게 잡혀서 갇혀있었다는 저 위 돌성에 올라갈까.
아니, 도나우강 보이는 데까지만 가자고, 우린 이제 더이상 젊지 않으니까.
중간도 못 가서 가빠하는 우리 모습을 본 어느 청년(?)이 웃으며 용기를 북돋워준다.
돌성까진 못 갔으나, 수도원 푸른 종탑을 보았고 잔잔한 도나우강 물결도 찾았다.
화이트와인 산지임을 과시하는 사방 널린 포도밭도 눈에 모두 넣었으니 다 된 거다.
2006년의 듀언슈타인 https://stelala.tistory.com/8130831
크렘스행 버스정류장 앞 작은 카페에서 얼음 든 음료를 마셨다.
승객 가득한 버스-2인 €5-는 마을을 둘러 15분만에 크렘스에 도착했고 우린 Rex와 S45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하루가 사흘 같은 날, 길고 더웠다.
그 먼 Wachau에도 추억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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