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류/2022 빈

9월 15일 (목) : 오토 바그너의 그림자

어제 안드로메다를 짊어진 채 귀가한 남편은 아직 지구로 귀환하지 못하고 있다.

혼자 카푸치노와 곡물빵-Schwarz Brot-으로 기품 있는 조식을 먹는 기분이 아주 괜찮다.

사실 검은 곡물빵은 즐겨하지 않았는데, 크렘스의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이 빵을 먹은 후부턴 아주 좋아졌다.

 

뒤늦게 기상한 우주인에겐 지구로 돌아올 양식이 필요했다.

서울서 가져온 한국식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터라 오스트리아 밀가루로 쫀득한 얼큰수제비를 만들었다.  

Universal 밀가루-이 나라의 가장 흔한 밀가루 3종 중 하나-의 찰기가 엄청나다. 

 

하늘은 흐리고 정오 무렵엔 비까지 쏟아지니 우산을 받치고 Penny와 Billa엘 다녀왔다.

마트 가려고 빈에 왔나 할 정도로 특히 매일 들르는 Penny, 귀국할 때 가져갈 것들을 구입하다보니 더 자주 가게 된다.

 

숙소 앞
숙소 앞

해장 효과도 없이 오후가 되어도 여전히 자고 있는 남편.

난 검은빵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치즈베이컨빵을 뜯어먹으며 야구 보기에 돌입했다.

10회 연장 끝에 힘겹게 이기니 다행이긴 하나, 한 번 승리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원.

 

오늘 같은 날(?)은 안 나가도 될 듯한데 굳이 오후 4시 넘어 길을 나선다.

Hernals역에서 S45를 타고 1정거장 이동하여 Ottakring역에 내렸다.

역 앞에서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주변 도로가 온통 공사 중이라 정류장 위치가 바뀌었는지 보이질 않는다.

 

S-bahn 오타크링역 부근
48A 버스

변경된 버스정류장을 찾아 48A 버스에 승차했다.

오토 바그너가 설계한 성당 Otto Wagner Kirche am Steinhof을 찾아가는 중이다.

오스트리아 건축가인 오토 바그너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유겐트슈틸-아르누보- 건축물을 많이 설계했다.

오토 바그너는 빈 1구와 그 주변 뿐 아니라 13-14구에도 독특한 건축물을 많이 지었는데 그의 고향이 14구 펜칭이라 한다.

 

Otto Wagner Spital
Otto Wagner Spital

오토 바그너 병원-Otto Wagner Spital, 오토바그너 설계- 앞에 버스가 멈추었다. 

성당은 이 병원이 북쪽에 위치해 있고, 병원을 가로지르면 금세 도착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병원 정문을 지키는 직원이 병원을 통해 성당을 갈 수 없다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성당으로 통하는 길을 막았다고 한다.

하늘에선 푸른빛과 잿빛이 밀당을 하고 있다.

 

직원이 알려준 대로 병원 바깥쪽을 둘러 성당까지 걸어갈 수는 없다. 너무 머니까.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버스를 타고 1 정거장 더 간 후 병원 끄트머리 쪽에 내렸다. 

이쪽에서라면 도보 거리가 짧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서도 별 방법이 없었다.

더 이상의 대중 교통도 인적도 없고, 더구나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때라 왕복 2km가 넘는 성당까지 오갈 수가 없다.

 

Otto Wagner Spital
Otto Wagner Spital
Otto Wagner Spital 앞 작은 레스토랑

그러면 갈 때처럼 그대로 다시 돌아오면 된다.

미련없이 깔끔하게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빈에 머물 날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Ottakring역 : 멋진 정취
Ottakring역

한국식 국 대신 고른 Knorr 브로콜리크림수프가 풍미 있고 맛있다.

서늘한 밤, 치즈소시지와 춘권은 역시 최고의 맥주 안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