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 넘치는 일요일이다.
지도를 요리조리 쳐다보던 큰밥돌이 외친다.자, 가자. 근데, 어디로~
바카우는 빈 서쪽의 크렘스에서 멜크까지 35km에 이르는 도나우 강변 지역으로
작년에 이미 발자국을 찍었던 곳이다.
995년에 조성되기 시작한 오래된 도시, 크렘스로 먼저 간다.
구시가로 드는 문을 통과하니, 넓지 않은 거리가 매우 한산하다.
500년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성당이 세 개나 있는 이곳에선
16세기에 오픈한 식당과 중세의 건축물들이 흐뭇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반긴다
.
크렘스를 살짝 벗어나면 펼쳐지는 도나우강.
바카우의 여러 마을 중 우리의 선택은 듀언슈타인이다.
작년엔 그저 스쳐 지나야 했던 곳.
중세 영국왕이었던 사자왕 리처드가 감금되었던 성이 있는 곳이다.
마을 입구 주변에 포도밭이 끝이 없다.
화이트와인의 주요생산지인 증거다.
아까부터 칭얼대는 작은밥돌, 식사 때가 한참 지나있다.
강이 보이는 식당이 얼른 눈에 띄어 자리한다.
배를 채웠으니 중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마을을 부지런히 다녀볼까.
집과 호텔과 기념품점이 늘어선 좁은 골목길을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유난히 많이 띄는 일본인들.
크게 보수한 흔적이 없이 옛 모습 그대로인 마을이 다사롭고 정답다.
마을 구경도 마쳤으니, 남은 건 한 가지.
낮은 산 위에 있는 돌성에 올라갈까말까. 만만해 보여서 가보기로 하는데...
밥만 먹여주면 군말없이 다니겠다던 작은밥돌은 멀찌감치 앞장을 서고
그라츠에선 산행을 거부하던 큰밥돌도 이번엔 웬일로 모범을 보인다.
예상 못한 산행이라 구두 신은 나의 발바닥은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돌계단 오르기를 30여분, 드디어 돌성인지 돌덩인지가 보인다.
바로 영국왕 리처드가 십자군 원정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오스트리아 대공에게 잡혀 감금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높지 않은 산이라도 산바람은 더할 수 없이 시원하다.
성 아래에서 바라보는 도나우 강변의 경치 또한 형용할 수 없이 곱다.
이젠 하산시간, 처음엔 뒤꼭지를 조금씩 보여주던 두 사람.
독일어로 아인은 하나, 슈타인은 돌, 그래서 과힉자 아인슈타인은 하나의 돌이란 뜻이라며
깔깔거리던 작은밥돌도 안 보이고 그 뒤를 미소 지으며 따르던 큰밥돌도 안 보인다.
굽 있는 구두를 신은 내 발은 앞으로 쏠려서 오를 때보다 중심 잡기가 더 힘들다.
헐떡거리며 내려갔더니 여유롭게 웃고 있는 밥돌들, 아니 배신자들.
산으로 오르는 초입의 묘지도 옛 모습 그대로이고 묘지 옆 카페도 옛 모습 그대로다.
내 발바닥엔 경계 경보가 일고, 저기 가는 저 뒤통수들은 어디서 본 듯도 하더이다.
마을을 떠나며 올려다본 듀언슈타인성은 말없이 포도밭의 정연함만 응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