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울리기 시작한 경보음이 아침까지도 울리고 있다.
밤새 소음이 계속된 듯한데, 방음 잘되는 창문을 꼭 닫고 잔 덕에 숙면엔 지장이 없었다.
오늘도 찾아온 녀석들은 아예 수영장에 터를 잡았다.
오전 9시, 산타카타리나 거리의 알마스 성당 출입문이 드디어 열려 있다.
Almas-영혼-알마스 성당 외벽엔 프란체스코 성인과 카타리나 성녀의 행적을 묘사한 아줄레주 벽화가 장식되어 있다.
미사 전에 들여다 본 성당 내부는 차분했고, 성수대가 설치된 내벽에도 프란체스코 성인과 산타카타리나의 모습이 아줄레주가 되어 있었다.
도우루강으로 가는 길, 그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볼까.
과거 수도원 건물이었던, 왕의 궁전이라기엔 잔잔하고 소박한 볼사 궁전 옆을 지난다.
이어 여느 유럽 도시의 강보다 강폭 넓은, 사흘 전에도 왔던 도우루강에 다다랐다.
오전 10시도 안된 시각이지만, 강변의 히베리아 거리엔 주말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
도우루강 따라 조성된 히베리아 거리의 매력은 강변을 채우고 있는, 다채로운 아줄레주가 돋보이는 폭 좁은 건물들이다.
이제 도강할 시간.
공사 중이라 시야와 전망이 예쁘지 않은 동루이스 다리 1층의 인도-위아래층 모두 있음-를 걷는다.
다리 상층엔 지하철 선로가 놓여있어 언덕 위 모후공원으로 이어지고, 아래층으로는 자동차가 통행할 수 있다.
빌라노바가이아 쪽 도우루강에서도 갯내가 나고, 가이아 지역에서 보는 포르투 구시가 정경이 참 예쁘다.
걸어다닐 땐 힘들기만 한 포르투 언덕이 이렇게 멋진 정취를 보여주다니 뭐든 단점이나 단면만 존재하는 건 없나보다.
명퇴 전에는 1년에 1번-때론 2번- 나가는 유럽이 절실해서였는지 여행을 준비하는 기쁨이 엄청났다.
계획을 세우고 예약을 하고 여행지에 대한 역사와 문화,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대단히 즐겁고 신났었다.
늘 무한대로 길기만 했던 힘겨운 현실에 비해, 탈출구인 여행은 짧고 한시적이었기에 더욱 소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퇴직 후 탈출구가 무의미해지고 온갖 자유가 넘치자, 예약을 하고 정보를 캐내는 것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기간동안 떠나지 못해 답답하고 갑갑한 것과는 별개의 상황이었다.
여행은 여전히 고프고 좋았으나 꼼꼼히 계획하던 준비 과정이 전혀 중요하지 않아졌다.
이러한 상황이 되다보니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서 내가 한 것은 항공, 숙소, 기차 예약이 전부였다.
처음 닿는 여행지임에도 역사나 문화, 특징 등에 대해 알아보기가 아주 귀찮았던 것이다.
빌라노바가이아 쪽 도우루강엔 작은 목선-와인을 운반하던 전통배-들이 떠있고 강변에는 깃대 형태의 조형물이 열을 이루고 있다.
이 지역엔 와이너리가 많은데, 이것들은 포트와인 와이너리를 홍보하는 목선과 표식이라 한다.
이곳에 이르자, 포트와인과 관련된 역사를 자세히 읊어주는 남편. 오, 좋은데, 아주 훌륭해.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이미 본, 낯설지 않은 유명 와이너리들 앞을 그저 지나간다.
흥미 없는 우리와는 달리 와이너리 투어를 하려는 여행객들이 꽤 많다.
우린 오스트리아 시골에 살 때 동네 언덕의 작은 와이너리들을 수없이 본 터라 상업적 와이너리에는 관심이 없다.
한눈에도 눈에 띄는, 지붕과 벽화가 독특한 건물을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여기 뭐하는 곳이지. 인테리어가 아주 신기한 이곳은 음식점이다. 바칼라우 튀김과 와인이 주 메뉴란다.
위층에만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된 내부엔 취식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다들 촬영에만 열심이다.
동루이스 다리 아래층을 다시 건너 히베이라 거리의 카페에 앉았다.
강바람이 불어오는 앞자리 가까이에서 흑발의 여인이 기타를 치며 버스킹을 시작한다.
귀에 익은 팝송이, 관광지 한복판 특별할 것 없는 커피 향과 자연스레 어우러지고 있다.
이젠 경보음이 끊어진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챙긴 후 계속 휴식이다.
누구는 푹 낮잠을 자고 난 쭉 검색과 톡을 하다가, 어제도 구글에 평점과 주인장의 답변이 올라온 동네 피자리아로 향했으나 닫혀 있다.
하는수없이 유일한 해법인 콘티넨테에 들렀는데, 우연히 발견한 근처 피자 가게에서 마르게리타를 포장해 숙소로 데려왔다.
피자 박스엔 또띠아가 도우인 척 누워 있고, 바질 시늉을 하는 오레가노가 잠들어 있었다.
그래도 포트와인과 맥주와 정어리캔의 친구가 되기엔 그다지 손색없는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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