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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로마·피렌체·베니스·빈

5월 18일 (목) : 따로 또 같이

새벽 4시, 눈이 떠졌다. 여전히 쑤시는 다리.

남편과 톡을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서울에선 걱정스러운 일이 쌓이고 있다.

 

치즈버터바게트에 계란프라이와 바나나를 곁들여 아침식사를 한 다음, 숙소를 나선 시각은 7시 20분.

우린 지하철을 타고 바티칸투어 가이드가 어제 톡으로 안내한 대로 지하철 Ottavia역 앞 미팅장소로 향했다.

이미 바티칸투어 포함하여 바티칸박물관 입장 경험이 2번 있는 나는 제외하고, 친구들만 투어에 참가한다.

가이드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면 오늘 오전, 나는 자유다.

 

 

바티칸 산피에트로 광장
바티칸 산피에트로 광장과 성당

박물관엔 가지 않더라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베르니니의 발다키노 정도는 봐줘야 했기에 오늘 오전 혼자여행 중 첫 일정은 산피에트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어제도 인파가 출렁이더니 어마어마한 수의 여행객이 산피에트로광장 둘레의 반을 채우며 줄을 서 있다. 

어림잡아도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할 터. 살짝 아쉽지만, 성당 내부는 이미 두어 번 봤으니 발길을 돌린다.

 

 

바티칸 성벽
바티칸 산탄젤로 성
바티칸 산탄젤로 성

바티칸 성벽을 따라 걸으며 도착한 산탄젤로 다리가 두번째 일정이다.

테베레 강 위에 놓인 아름다운 산탄젤로 다리 앞엔 산탄젤로 성-천사의 청-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도 흐린 로마, 이곳은 산피에트로 광장과는 달리 여유롭고 한적하다.

 

 

로마 테베레강
로마 테베레강

폭 좁은 테베레 강을 따라 걸으며 평온에 잠겼다.

보행자도 거의 없는 시각, 저편엔 조금 전 지나온 산탄젤로성과 산피에트로성당이 반갑게 웃고 있다.

최종 일정인 포폴로 광장으로 가기 위해 테베레강을 건너니 익숙한 명칭이 눈길을 끌어당긴다. 

"Ara Pacis Augustae: 즉, 아우구스투스 평화의 제단. 이곳은 평화의 제단이 보존되어 있는 전시관인 것이다.

 

Ara Pacis 아라 파치스는 기원전 9년에 완공된, 1대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평화를 기념하는 제단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스페인과 프랑스-히스파니아와 갈리아-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자 로마 원로원에서 지어 봉헌했다고 한다.

20세기초 현재의 장소로 옮겨왔고, 유적 보존을 위해 유리로 된 건물을 지어 전시관으로 확장시켰다.

 

 

아우구스투스 평화의 제단
포폴로 광장 : 산타마리아인몬테산토 성당과 산타마리아데미라콜리 성당
산타마리아델포폴로 성당

산피에트로광장에서 2km를 걷고 걸어 도착한 포폴로 광장.

처음 로마 여행 계획을 짤 때, 친구들이 바티칸투어를 하는 동안 난 보르게세 미술관에 가려 했었다.

그러나 보르게세는 예약시 정한 시각에 정확히 입장을 해야 하고, 바티칸에서 보르게세까지는 버스로 왕복-바티칸투어 종료시각 전까지

바티칸으로 되돌아와야 함-해야 했는데 로마 버스 승차가 낯설고, 또 난 재빠른 관람에 익숙치 않기에 미술관을 관람하다 말고 나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까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선택한 차선이 또 카라바조다.

포폴로 광장의 산타마리아델포폴로 성당의 체사리 채플엔 카라바조의 '바울의 회심'과 '베드로의 십자가'가 있고 게다가 치기 채플에는

라파엘로와 베르니니의 작품이 보존되어 있다. 

 

 

보르게세 공원 서쪽 입구 : 미술관은 동쪽 끝
포폴로 문 : 고대 로마의 북문

드넓은 포폴로 광장은 더 드넓은 보르게세 공원의 서쪽 입구과 맞닿아 있다.

가려 했으나 단념한 보르게세 미술관은 공원의 동쪽 끝에 있는데, 이 미술관에 가기 위해 이 징글맞은 로마를 훗날 또 찾을지도 모른다.

 

평일 오전인데도 포폴로 성당은 미사 중이다.

성당 출입문 옆에는 미사 시각이 명시되어 있는데, 그 시각엔 관람을 위한 입장이 제한된다.

성당 옆의, 포로로마노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고대 로마의 북문인 포폴로 문을 지나, 거리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10시 55분, 미사를 마친 포폴로 성당에 입장했다.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곳이 안쪽 체사리 채플이다.

체사리로 가기 전, 인적 적은 키지 채플에서 베르니니와 라파엘로-뜻밖의 찬밥신세-를 잠시 먼저 만나고 간다.

 

 

치기 채플 : 하바꾹과 천사(베르니니), 피라미드무덤(라파엘로)
카라바조 '베드로의 십자가'
카라바조 '바울의 회심'

이탈리아 성당은 거의(?) 무료 입장이다. 미술관에나 있을법한 유명하고 뛰어난 작품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다만, 어두운 성당 안에서 걸작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동전함에 1-2유로짜리를 넣어야 조명이 켜진다.

바로크 회화 시대를 연 카라바조의 두 걸작을 보기 위해 동전이 아끼랴.

그러나 다른 관람객들도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조명이 사라지면 작품도 사라질세라 다들 부지런히 동전을 넣었나보다.

30여분 남짓, 광채가 퍼지는 카라바조의 회화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포폴로 광장 옆 Flaminio역에서 산피에트로 광장까진 지하철로 이동했다.

산피에트로 광장 가는 길에 이끌리듯 들어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참 멋지다.

종교적 지식이 거의 없는데도 감동을 주는 성화가 많은 걸 보면 종교 자체는 참 위대하다. 아니 화가가 위대한 건가.

 

 

오후 1시가 훨씬 안된 시각, 산피에트로 광장에 차가운 비가 내리고 성당 입장줄은 여전히 길다.

예정보다 투어가 늦게 끝났고 이후 기념품샵까지 다녀오다보니, 광장에서 난 1시간을 기다렸나보다.

 

투어는 유익했으나 길고 힘들었으며, 바티칸 박물관엔 사람이 너무너무 많았다고 한다.

친구 K는 핸드폰을 깜빡 바티칸박물관 화장실에 두고왔다가 식겁해서 10분 후 다시 가보니 그대로 있어 찾았다고 말하면서

박물관엔 소매치기가 없다는 가이드 말에 한순간 긴장을 놓았다고 한다. 에고, 진짜 큰일날 뻔했다.

 

 

아까 봐두었던 레스토랑 중 한 곳에 들었다.

구글 평점 4점 초반대, 관광지인 바티칸에서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평점의 배반인가. 메뉴판엔 없는 해물파스타-굳이 주문한 이유는 바티칸가이드 왈,메뉴에 없어도 해준다 했다함-는 형편 없었다.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만 좋았을 뿐이다.

 

Ottavio역까지 가는 동안 Kiko와 기념품 상점과 옷 가게에 들른다.

쇼핑을 즐기지 않은 난 이젠 남은 에너지가 하나도 없다.

 

오후 4시 반, 이제 숙소에서 휴식해야 할 시간이다.

시간 딱 맞춰 피렌체와 베네치아 호스트로부터 연락이 왔고 바로 답장을 보냈다.

또, 꼼꼼한 로마 호스트에게 내일 Late체크아웃을 문의했더니, 다음 숙박객이 있어 안된다 했으나 곧 방법을 제시해서 수용해주었다.

 

 

로마 테르미니역

아직 해가 살아있는 저녁. 마조레 성당을 지나고 테르미니역 쇼핑몰을 쏘다니며 동네 산책을 했다.

짧은 로마 일정인데, 어제 오늘 많은 곳을 다니다보니 고단하고 피곤하다.

벌써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