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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코헴·낭시·스부·뷔부

9월 21일 (목) : 우리가 코헴에 온 이유

여행 3일째 새벽, 산이 감싸고 있는 시골이라 그런지 춥다.

이직 어두웠으나 배가 고팠기에 감자를 삶았다. 서울에선 감자를 찌거나 삶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남의 나라만 오면 이러니 참 모를 일이다.

맑고 서늘한 아침, 오늘의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기온이 어제보다 낮은 21도이고 소나기도 예보돼 있다. 

구름이 동네 허공에 걸려있는 아침 6시반, 간단한 한식으로 식사를 한 후 코헴 및 주변 도시 여정을 의논했다.

 

코헴성과 모젤강

8시 50분, 드디어 코헴 구시가로 간다.

얕은 언덕에 있는 숙소에서부터 내리막길을 걷다보면 구시가 옆 산마루에 자리한 코헴성이 그럼처럼, 정말 그림처럼 나타난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 남아있는 귀족이나 중세 영주의 성들은 민가에서 떨어져 요새화된 곳이 많은데, 여긴 아니다.

구시가 한가운데, 포도밭에 둘러싸인 산마루에서 위엄 있으되 위압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다.

 

코헴성(다리 위에서 디카줌으로 활영)
코헴성과 모젤강

모젤강을 가로지르는 Skagerak 다리 위 정경은 완전 환상적이다.

구름 덮인 하늘 아래 산등성이 따라 모젤강이 흐르고 강변엔 코헴성과 건물들이 멋진 조화를 자아내고 있다.

아, 우린 이 경관과 이 정취를 보기 위해, 또 느끼기 위해 이 시골마을 코헴에 온 것이었다.

예전에 본 코헴 사진들도 멋있었지만 역시 맨눈으로 보는 경치의 아름다움은 결코 따라갈 수 없다. 

 

코헴 역사가 적힌 벽
코헴 구시가
코헴 구시가 Marktplatz

다리 건너 구시가에 다다르면 코헴 역사가 적힌 벽면이 등장하고, 좁은 인도를 따라 걸어 마을 중심인 Marktplatz를 만났다.

어느 새 옅은 잿빛 구름이 하늘을 점령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아름다운 코헴 구시가다.

 

사발 커피

아침 10시가 넘어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물색했지만 썩 마땅한 곳이 없다.

하는수없이, 보기엔 말짱했으나 구글 평점 낮은 카페의 야외 자리에 앉아 비엔나의 유서 깊은 카페와 비슷한 가격의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오래지 않아 여자서버가 들고 온 커피잔이 밥그릇만하다. 살면서 마신 커피 중 가장 큰 잔에 담긴, 별맛 없는 카푸치노다.

그런데 커피를 반도 마시기 전, 여자 서버가 다가오더니 지금 바로 계산을 하란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게다가 50유로 이하 주문은 현금 계산만 가능하단다. 어제 Aldi에 이어 오늘까지 이 동네, 왜 이러지.

 

코헴성 초입
코헴성 입구
코헴성 입구 안쪽

Marktplatz에서 오늘의 진짜 목적지인 코헴성 Reichburg cochem으로 향한다.

경사진 길을 올라 성 초입에 도착하면 눈 아래 C자로 흐르는 멋들어진 모젤강이 마을과 보폭을 같이 하고 있다.

우리만이 이방인-동양인은 아무도 없음-인 이곳에 생각보다 관광객이 많다.

 

코헴성은 3월 중순부터 11월까지 가이드투어로만 공개되는데, 독일어는 물론 영어가이드투어도 진행한다.

우리가 방문한 9월말엔 하루에 6번 영어가이드투어가 있었고, 성 앞 티켓오피스에서 11시 30분에 시작하는 티켓을 구입했다.

 

코헴성
코헴성 : 인어 촛대

11시 30분, 가이드가 성 입구의 출입문을 열고 관람객을 맞이한다.

스물너덧 명의 관람객은 40분 동안 가이드가 전해주는 코헴성의 유래와 역사, 각 방의 특징을 들으면서 그녀가 이끄는 대로

문에 들어서고 문을 나섰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어디에도 없는 '마을 친화적'인 코헴성의 역사는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00년경 세워진 코헴성은 라인강 유역과 모젤 지역을 침공한 루이 14세의 군대에 1688년 점령당했고 1689년 화재로 훼손되었으며

코헴 마을 역시 프랑스 군대에 의해 거의 파괴되었다고 한다.

 

1868년 베를린 사업가인 루이스 라베네가 성 부지와 유적을 매입하기 전까지 성은 폐허로 남아있었다.

19세기에 코헴성은 네오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내부는 라베네 가문에서 수집한 르네상스 및 바로크 가구로 채워졌다.

코헴성은 1978년부터 Stadt Cochem 코헴시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코헴성
코헴성
코헴성

코헴성 내부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빈 근교의 크로이첸슈타인 같은 성-중세 봉건영주의 작은 성-은 아니다.

어쩌면 코헴성은 마을과 어우러진 외관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으나 성 내부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게다가 성 내부 창을 통해 감상한 모젤강과 마을은 성 입구 바깥쪽에서 바라본 그것보다 훨씬 더 멋지다.

 

코헴성에서 바라본 모젤강
코헴성에서 바라본 모젤강

코헴성 마당의 오래된 우물로 관람객들이 모여들었다.

이곳을 천년 동안 지켜낸 깊고 자그마한 우물이 장엄한 성채와 형언할 수 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코헴성 우물
코헴성
코헴성

코헴성 관람을 마치고 성 밖 셔틀버스 정류장 근처 벤치에 잠시 앉아있다가 마을로 하산했다.

구글 평점 훌륭한, 미리 낙점한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며 식사하고자 했으나 그곳은 간단한 음식조차 없이 오로지 주류만 제공하는 곳이었다.

 

모젤강변 쪽 레스토랑을 둘러보았으나 대부분 음식값은 명시되어 있지만 음료 가격은 전혀 적혀있지 않다.

게다가 계속 데이터가 불안정해서 제대로 인터넷 검색조차 할 수 없었기에 일단 눈에 띄는 강변의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메뉴판에 쓰인, 말도 안되는 맥주 가격-0.4L, 7유로대-이라니, 일반적인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도시의 2배 가격이다.

평범한 음식값에 비해 대부분의 음료와 주류 가격은 독일답지 않게 비상식적이다.

 

가지 말아야 할 식당
매우 싱거운 맥주 맛

강변 대신 구시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으나 여전히 인터넷은 불통이었다.

식당 평점 확인이 불가하여 Marktplatz 근처의 야외 자리 만석인 레스토랑 실내에 앉았다.

 

맥주와 함께 소시지요리와 풍기피자를 주문했는데, 나이든 남자서버가 소시지요리가 든 접시를 2개나 들고 온다.

우리가 각각 다른 소시지요리를 2개 주문했고 자기가 주문 확인을 3번-말도 안되는 소리-이나 했다고 한다.

우리가 영어나 독일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아닌데 도대체 이 사람 왜 이러는 걸까.

소시지 접시 1개만 받은 후 곧 올려진 풍기피자의 토핑인 양송이버섯이 이상하다. 세상에나, 냉동피자다.

계산을 하려니 아침 카페처럼 이 식당에서도 아무 데도 명시하지 않았음에도 'only cash'란다.

 

인터넷이 연결된 후 확인한 이 레스토랑의 구글 평점은 5점 만점에 무려 1.8이다.

듣보잡 평점이 정말 경악스러웠으나 겪어보니 절절히 이해되는 당연한 평점이었다.

음식 주문 갯수로 장난을 치고 냉동피자를 대충 데워 내놓은 식당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만석의 야외에 있던 사람들은 다 우리 같은 여행자들이었을까. 알고서는 절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식당이다.

 

모젤강
Endertplatz : 구시가 버스정류장
Endertplatz

기대를 가득 안고 온 코헴에서 이틀 새 벌써 3번이나 불쾌한 일을 겪었으니 이곳과 우린 맞지 않는 걸까.

우리가 좋아하는 독일이 이렇게 뒤통수를 갈기다니, 숙소 호스트와 마을 정경만은 진짜 최고인데 말이다.

 

강변을 산책하고 난 오후 3시, 구시가 Endertplatz에서 하루에 10여차례만 운행하는 702번 버스에 올랐다.

아침에 구시가로 걸어가면서 숙소가 있는 거리 끝에 버스정류장-구글맵에 안 나옴-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바로 그곳에서 하차했다.

호스트가 준 게스트티켓으로 무료 승차가 가능했고, 친절하고 유쾌한 버스기사 아저씨 덕분에 꿀꿀했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구시가에서도 내내 데이터 연결이 안되더니 오늘은 숙소 와이파이조차도 엉망이다.

게다가 혹시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날아가 한국 포털사이트를 통해서도, 유튜브를 통해서도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볼 수가 없으니 아쉽다. 

환희와 실망이 교차한, 마음 번잡한 하루가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