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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코헴·낭시·스부·뷔부

9월 23일 (토) : Deutsches Eck에서

오늘도 어제처럼 새벽에 깼다가 다시 눈붙인 후, 움직이기 딱 좋은 시각에 일어났다. 

젊을 땐 3-4일이면 시차 적응이 되더니 이제는 꼭 1주일을 채워야 신체 리듬이 제자리를 찾는다.

아침 장작 타는 내음이 아련한 독일 시골에서 상추와 쌈장 그리고 계란 푼 북엇국까지, 든든히 아침식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코헴 기차역

토요일인 오늘 행선지는 코블렌츠. 사흘 전 프랑크푸르트에서 코헴으로 올 때 기차를 환승했던 곳이다.

여행 전, 계획을 짤 때 당일치기 여행지 후보였으나 도이치에크 말고는 끌리는 것이 없었기에 갈 생각을 접은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에겐 게스트티켓이 있고 티켓을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이니 도이치에크만 볼 마음으로 가보기로 했다.

 

서늘한 아침, 8시 56분에 출발하는 버스로 코헴 기차역에 도착했고, 9시 18분에 출발하는 RE열차에 올랐다.

RE와 RB 모두 지역 열차인데, RB는 모든 역에 다 정차하는 반면 RE는 주요 기차역에만 서는 급행열차다.

승객 많은 주말, 40분 후 코블렌츠 중앙역에 다다랐고 우린 중앙역 다음 역인 구시가 근처 코블렌츠슈타트미테역에서 하차했다.

 

코블렌츠 : 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가 파괴됨.

인구가 6천여명밖에 안되는 코헴과는 달리 코블렌츠는 인구가 10만명이 넘는 도시다.

역에서 내려 걷다보니 구시가 어느 광장 앞 바닥의 둥근 동판에 코블렌츠의 과거 역사가 새겨져 있다.

1944년과 1945년, 2차 세계대전 중 40차례에 걸려 연합군 전투기의 공격을 받은 코블렌츠엔 100개의 폭탄이 투하되었고

도시의  87% 파괴되었으며 1000여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코블렌츠
라인강의 Ehrenbreitstein 요새

도시는 이후 재건되었고 대부분의 건물이나 조형물이 새로 건립된 것이라 예스러움을 느끼기 어려운 분위기다.

친절한 이정표가 알려준 대로 구시가를 쭉 걸어 도이치에크 방향으로 가다보면 독일의 대표 하천인 라인강을 만날 수 있다.

 

에렌브라이트슈타인 요새와 라인강
빌헬름1세 청동상
도이치에크

Deutsches Eck 도이치에크-도이체스에크-는 '독일의 모서리'라는 뜻으로 두물머리처럼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곳이 Deutsches Eck라 불리게 된 데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고 하나 별 관심이 없기에 패스.

도이치에크 안쪽으로 걸음을 옮겨, 독일제국 초대황제인 빌헬름 1세의 청동상이 설치된 조형물에 오르면 꼭짓점 좌우로

확연히 다른 강빛이 펼쳐진다.

 

도이치 에크에서 : 두 강이 만나는 곳 (왼쪽 모젤강, 오른쪽 라인강)
모젤강
라인강

도이치에크의 왼쪽은 푸른 빛을 띤 모젤강이고 오른쪽은 모젤보다 강폭이 넓고 훨씬 탁한 라인강이다.

주말 낮, 예상보다 한적한 도이치에크에 서서 경이로운 자연과 비극적인 역사와 인간의 탐욕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비논리적인 명분 뒤에 숨은 너저분하고 추악한 인간의 탐욕을 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걸까. 

포장된 위선에 판단력을 잃거나 정신의 마취에 빠지고, 소소한 이해타산으로 대의를 저버리는 걸까.

 

도이치 에크 : 왼쪽 모젤강, 오른쪽 라인강

탐욕은 비극을 부추기고 탐욕이 엮어온 오만은 절망을 부른다.

견고한 담벼락과 오래된 나무에 켜켜이 쌓인 인간의 탐욕이, 두 강줄기가 만나 같은 곳을 흐르듯 세상도 그랬으면 참 좋겠다.

 

코블렌츠

구시가 한복판에서 점심식사 할 식당을 탐색해 본다.

구글맵으로 찾고 발품도 팔았으나 이곳도 술집은 많지만 이거다 싶은 먹거리 종류가 뭐 별로 없다.

그럼, 간단히 먹어도 된다. 식당 찾느라 스트레스 받느니 그게 낫다.

 

바로 앞에 보이는 빵집이자 간편식 레스토랑의 평점이 나쁘지 않아서 실내로 들어가 앉았다.

셀프서비스인 이곳에서 샌드위치와 카푸치노를 주문했는데 맛도, 분위기도 아주 깔끔하다.

 

코블렌츠 버스
코블렌츠 중앙역

중앙역으로 가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30분 배차의 버스가 마치 우리 여정에 맞춘 것처럼 바로 도착한다. 

코블렌츠 중앙역에서 코헴 가는 RE 열차-3정거장-에도 아침처럼 승객이 많다. 

코헴 전 역에서 등장한 검표원은 우리의 게스트티켓을 살펴보고는 여권 이름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코헴 가는 열차 안에서
코헴 Hauptbahnhof(중앙역)

코헴 중앙역에 도착한지 10분이 지나자 주말엔 단 5-6번만 운행하는 버스가 또 우리 앞에 멈춰선다.

감사하게도 오늘 코블렌츠과 코헴의 대중교통 승차가 더할 수 없이 아주 순조롭다. 

우리의 삶도 자연스럽게 순조로우면 좋으련만, 요 며칠 위태위태하던 허리에 탈이 나고 말았다.

 

고질병인 요통이 도진 날은 맥주도 마다하고 일찍 쉬어줘야 한다.

9월말, 아침 7시에 해가 뜨고 저녁 7시반이면 어두워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