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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코헴·낭시·스부·뷔부

9월 24일 (일) : 코헴의 휴일

코헴의 새벽은 여전히 육신을 흔들지만 조금씩 시차에 익숙해지고 있다.

7시가 되자 바깥이 밝아오고 일요일인 오늘 코헴 기온은 최저 7도, 최고 18도로 예보되어 있다.

 

숙소에서

아침식사 후까지도 산구름이 집 앞까지 덮여있었으나 어느 새 하늘은 본래의 청명한 빛을 되찾았다.

무심히 숙소 베란다에 앉아 나지막한 산을 바라보거나 가볍게 동네 산책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 휴일이다.

휴일이라 구름도 하늘도 느리게 움직였나. 우리도 아주 느리게 움직이기로 했다.

 

넷플릭스로 2016년에 방영된 '미녀 공심이'란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남편 옆에 앉았다. 

어디선가 접해본 줄거리는 신선하진 않지만, 연기 발성 바닥인 여주인공을 이끄는 남주인공-남궁민-의 캐릭터가 흥미롭다.

그리고 묘하게 어울리는 여주인공의 가발. 이 가발이 없다면 여주의 개성이 정말 밋밋했을텐데, 이 설정 또한 재미나다.

 

Enderttor 앞
시립(?) 서점
Marktplatz

라면처럼 간단히 끓여먹는 잔치국수를 점심으로 들고 오후 2시, 무뚝한 기사아저씨가 모는 버스를 타고 구시가로 간다.

구름 하나 없이 엄청나게 푸른 날, 코헴 구시가엔 일요일이라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다.

시골 마을답게 현지인도 여행객도 도시에 비해 역시 노령 인구가 많다.

 

코헴 구시가

구시가 좁은 골목골목을 걸어다니면서 보니 식당보다 술집-와인 파는-이 훨씬 많은 듯하다.

라인강은 물론 모젤강 유역도 리슬링을 비롯한 화이트와인의 주산지라 와인을 즐기는 주민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지역 맥주가 맛이 없었고, 괜찮은 음식점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우린 코헴에서 겪은 첫 카페와 첫 식당에서의 경험이 아주 가혹했기에 이곳에 머무는 동안 더이상 식당 검색을 하지 않았다.

 

모젤강

구시가를 거닌 다음 모젤강가의 벤치에 앉았다.

시내 상점이나 식당과는 별개로 모젤강의 풍경은 비할데없이 최고로 아름답다.

모젤강이 선사한 평온함, 따스함, 아늑함은 우리 마음에 깊은 평화와 안정감을 주었다.

 

모젤강

모젤강 유람선도 정말 근사했고 저기 보이는 코헴성의 내부투어 역시 아주 좋았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숙소도 위치와 컨디션, 호스트, 서비스 모두 흠잡을 데 없이 만족스럽다.

여행을 하면서 약간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그걸 채울 만한 무언가가, 다행스럽고 신기하게도 꼭 나타나 준다.

 

구시가의 작은 가게에서 한국에도 들어와있는 아는맛 맥주를 구입한 후 숙소로 돌아간다.

30분쯤, 그림 같은 경치를 보면서 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고 살짝 경사진 인도를 느릿느릿 걸어가면 된다.

와, 하늘은 여전히 눈부시게 파랗다.

 

숙소 주변

숙소 거실에 앉아서 다시 노트북 앞.

짜증 없는 '미녀 공심이'를 보면서 신나게 웃었지만, 출국 전 열심히 시청하던 '힙하게'의 막장 전개엔 황당할 수밖에.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오늘 저녁도 맥주다.

참치피자, 라자냐, 까망베르튀김을 가득 차려놓고 다시 없을 이 순간을 만끽했다.

내일은 Eltz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