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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코헴·낭시·스부·뷔부

9월 26일 (화) : 로마제국의 자취, 트리어

코헴을 떠나는 아침이다.

인구 6천 명밖에 안되는 이 작은 마을에서 6박을 하고 떠나는데도 아쉽다. 

6시반 아침식사를 하고 마지막 남은 쓰레기를 다 버린 후 8시 40분 체크아웃을 했다.

코헴역으로 가는 365번 버스 안, 어제 오후에도 만났던 여자기사가 떠나는 우릴 친절히 배웅해 준다. 

 

다음 여행지인 낭시로 바로 이동하지 않고, 트리어를 거쳐가는 계획으로 인해 오늘 일정은 약간 복잡하다.

트리어에 들르고 룩셈부르크에선 예매한 티켓을 찾아야 하며, 프랑스 메스에서 환승해 목적지인 낭시까지 간다.

 

우선 코헴역 창구에서 트리어를 경유하여 룩셈부르크까지 갈 수 있는 Rheinland Pfalz Ticket+Lux 랜더티켓을 구입했다.

이 티켓으로 IC, ICE를 제외한 라인란트팔츠 지역의 대중교통을 하루동안 이용할 수 있고 룩셈부르크까지도 기차 이동이 가능하다. 

독일 여행시 많이 사용하는 바이에른티켓처럼 주말이나 공휴일엔 시간 제약이 없으나 평일엔 오전 9시부터 쓸 수 있다.

 

코헴 중앙역

파격적이었던 작년 9티켓에 이어 독일에선 올해도 €49티켓-매월 1일부터 말일까지 무제한 대중교통 이용-제도가 있다.

우린 여행 기간이 9월과 10월로 분산되고 이동이 많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49티켓은 IC, ICE 열차는 탑승이 불가했기에

우리에겐 적합하지 않아서 고려하지는 않았다.

 

9시 41분에 출발하는 RE 열차에 올랐다. 

통로 건너쪽엔 당일치기 여행을 가는 듯한 할아버지 한 명과 세 할머니가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세상 시름 하나 없어보이는, 감출 수 없는 노년의 여유로움이 부럽기만 하다.

 

10시 20분에 검표원이 나타났고 10시 30분 트리어역에 도착했다

플랫폼 바로 앞에 있는, 동전만 사용 가능한 물품보관함을 금세 찾아 2개의 보관함에 각각의 캐리어를 넣었다.

 

Porta Nigra (검은 문)
Porta Nigra
Porta Nigra

손이 아주 가벼워지고 마음까지 가뿐해졌으니 이젠 트리어를 기쁘게 거닐어 볼까.

트리어역에서 구시가로 가는 중, 초등학교 6학년쯤 돼보이는 아이들 무리를 만났다.

이번 여행 기간 내내, 아이들 방학 기간 아닌 가을 여행이라 현장체험학습 가는 학생들을 정말 많이 보게 된다.

 

구시가 초입에 이르자 인파에 싸인 Porta Nigra가 주변을 압도하며 등장한다.

라틴어로 '검은 문'의 뜻을 지닌 거대한 Porta Nigra는 고대 로마의 4개 성문 중 북쪽 성문이었다고 한다.

Trier는 로마 제국이 융성하던 시절, 알프스 이북 지역에서 제 2의 수도 역할을 했던 곳이라 로마시대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데

2세기에 견고하게 쌓아올린 Porta Nigra도 그 중 하나다.

 

Porta Nigra
트리어 구시가

포트라 니그라 주변 뿐 아니라 구시가를 오가는 사람이 참 많다.

늘상 정적이고 차분했던 코헴보다 평일의 트리어는 젊고 생기있고 활력이 넘친다.

 

Trierer Dom
Trierer Dom(왼쪽)과 Liebfrauenkirche(오른쪽)

맑은 하늘 아래 트리어돔과 성모성당이 나란히 붙어있다.

트리어 랜드마크인 이 건축물들 중 한적해 보이는 성모성당 내부로 먼저 들어간다.

 

Liebfrauenkirche 성모성당
Liebfrauenkirche

13세기에 건립된 성모성당은 독특하게도 12사도를 본딴 12각형이다.

첨탑은 없으나 내부의 첨두아치와 리브볼트, 빛이 쏟아지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이곳이 초기 고딕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Trierer Dom 트리어대성당
Trierer Dom
Trierer Dom

트리어돔은 대성당답게 규모가 훨씬 크다.

로마제국 시절인 4세기에 지어졌고 이곳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가져온 예수 성의가 보관되어있다고 한다.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트리어대성당에서 초기 로마네스크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아시아 누들 식당
아시아 누들 식당

정오가 넘어서 구시가 아시안누들 식당에 앉았다.

트리어에서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서 시간 절약을 위해 버거킹에 가려 했으나 식당 간판을 보고는 변덕을 부렸다.

특별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아는 누들 맛인데, 양이 엄청  많아서 결국 조금 남길 수밖에 없었다.

 

Konstantin Basilika
Konstantin Basilika
Konstantin Basilika(왼쪽)와 선제후궁전

Konstantin Basilika는 310년경에 세워졌고 현재는 콘서트홀로도 활용되고 있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편편한 나무 천장과 2층 창문, 트인 공간이 인상적이다. 말 그대로 바실리카 양식다.

콘스탄틴바실리카와 외벽을 맞대고 있는 선제후궁전의 외관은 화사하고 화려했으며 정원 역시 정성껏 가꿔져 있다.

 

선제후궁전
선제후궁전 정원

오후 1시 37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 했기에 트리어역으로 돌아와야 했다.

트리어에 머문 3시간이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로마 원형극장이나 공중목욕탕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잠시나마 둘러본 몇몇은 물론 보지 못한 원형극장이나 공중욕장까지 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란다.

그런데, 이런 수박겉핥기라니. 트리어 대신 낭시를 숙박 여행지로 정한 것이 아주 잠시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Trier역
트리어역 벽화
트리어역 물품보관함

트리어역 물품보관함에서 무사히 캐리어를 꺼내고 RE 열차에 올라 오후 2시 23분 룩셈부르크에 도착했다.

이제 룩셈부르크에서 목적지인 낭시까지 가는 일정만 남았다.

 

코헴-트리어-룩셈부르크 구간은 코헴역에서 라인란트팔츠 룩스 티켓을 구입할 예정이었기에. 여행 전, 룩셈부르크에서 출발해서

메스에서 환승하여 낭시까지 기차만 프랑스철도청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했었다.

그런데 프랑스 메스-낭시 구간은 홈피에서 PDF로 인쇄가 가능했으나 룩셈부르크-메스 구간은 출력이 불가했다.

룩셈부르크역에 비치된 프랑스철도청 SNCF 키오스크에서 티켓을 출력하라는 안내만 나와있을 뿐이었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있나. 모든 구간이 다 프랑스철도청에서 운행하는 지역열차 TER인데 대체 왜 이런 거지.

 

룩셈부르크역
룩셈부르크역

룩셈부르크에 도착해서 프랑스 메스행 열차를 타기까진 50분이 남아있었기에 티켓 출력을 조급히 서둘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티켓을 출력해야 하는 키오스크-티켓 발매기 아님-가 룩셈부르크역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티켓을 구입하는 발매기는 여러 곳에 있었으나 발매기 근처에 있어야 할 티켓 출력기계는 단 하나도 없었다.

 

역 인포에 문의했고 직원이 알려준 대로 승객대기실 앞까지 갔으나 여전히 없었다.

마음이 바빠졌고 다시 인포에 문의하니 고맙게도 직원이 직접 키오스크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완전 구석탱이에 있는 키오스크 2대는 숨겨둔 듯 깊은 벽감 속에 있는 모양새였고, 바로 코앞까지 가서야 겨우 찾을 수 있다.

 

시간이 촉박했거나 인포가 문을 닫은 시간이라면 아찔할 뻔했다.

실제로 블로그엔 SNCF에서 예약했으나 룩셈부르크역에서 티켓 출력을 못해 벌금-예약번호 있어도 무효-을 낸 사례도 있다.

나중에 보니 낭시와 스트라스부르에도 티켓 출력 키오스크가 있는데, 눈에 아주 잘 띄는 곳에 자리해 있었다.

 

라인란트팔츠룩스 티켓(위)과 룩셈부르크역에서 키오스크 출력한 룩셈-메스 티켓(아래 2장)
Nancy 낭시 숙소 주변

15시 16분에 출발하는 TER에 올랐고, 메스역에 도착해선 같은 자리에서 환승하여 낭시 기차역에 도착했다.

낭시역에서 멀지 않은 정서향 숙소엔 빛이 가득 쏟아지고 있었고 세탁기를 돌려놓은 채 장을 보러 나섰다.

 

편리하게도 초근접 거리에 까르푸익스프레스가 있다.

그런데 너무 작아서 숙소에서 500m 떨어진 다른 까르푸익스프레스를 찾았으나 별반 차이가 없다.

게다가 까르푸익스프레스-까르푸시티보다 비쌈-이긴 하지만 장바구니 물가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보다 비싸다.

나중에 가본 카르푸시티나 모노프리와 비교해도 독일, 오스트리아보다 비싸긴 마찬가지다.

 

스치듯 눈에 들어온 Nancy 숙소 주변이 참 예쁘다.

치즈떡볶이를 만들고 현지이기에 더 맛있는 1664 맥주를 곁들였다.

그러던 중 날아온 낭시 호스트의 메시지, 자기 딸이 한국을 매우 좋아하는데 한국 잡지나 사진이 있는지 묻는다.

 

코헴, 트리어, 룩셈부르크, 메스, 낭시. 

정신없이 3개국 5도시를 지나친 날, 정말이지 엄청나게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