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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코헴·낭시·스부·뷔부

10월 3일 (화) : 9년 만의 스트라스부르

생떼브르광장

숙면 중 난데없이 사이렌이 울렸다. 새벽 4시다.

한 차례 잠깐도 아니고 여러 번 사이렌이 계속 울려서 협탁의 스탠드 스위치를 눌렀으나 점등되지 않는다.

남편 쪽 스탠드도 안 켜질 뿐 아니라 내내 잘 되던 와이파이도 먹통이다. 전기와 통신이 함께 차단되었나 보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사이렌도, 전기와 통신도 모두 원상으로 돌아왔다.

 

새벽에 잠을 설쳤으나 기상 시각은 7시반이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고 이곳을 떠날 준비를 마치고 나니 9시반이다.

 

카리에르광장
스타니슬라스광장의 에레아치

낭시를 떠나는 날, 마지막 아침 산책을 한다.

10월초인데 날이 아주 따뜻하고 불어오는 바람도 서늘하지 않다.

매일 걷던 카리에르 광장에 작별인사를 하고 낭시를 찾은 명분을 내밀어준 스타니슬라스 광장에도 손을 흔들었다.

날마다 맑은 일기를 마련해 주고 길목마다 거리마다 기쁜 풍경을 선사해 준 낭시, 안녕.

 

스타니슬라스광장
스타니슬라스광장
스타니슬라스광장

낭시 여행 중 큰 즐거움이었던 숙소 옆 빵집, 그곳에서 점심으로 먹을 바게트와 크루아상 2가지를 포장해 왔다. 

오전 11시, 숙소 처음 도착시 열었던 열쇠박스에 숙소 열쇠를 넣은 다음, 캐리어를 끌고 기차역으로 간다.

 

숙소 옆 빵집에서 포장해온 바게트와 크루아상
Porte Stanislas 스타니슬라스문 : 구시가에서 기차역으로 가는 길
스트라스부르행 TER

가벼운 소나기가 쏟아지려는지 하늘 한쪽에 옅은 회색 구름이 몰려온다.

한적하다 못해 거의 텅 빈 TER 열차는 12시 13분, 낭시를 출발하여 스트라스부르로 향했다.

출발 30분 후 역무원이 검표를 하고, 우리만의 아늑한 공간에서 환상적인 크루아상을 먹었다. 

스트라스부르 도착 예정시각은 오후 2시 이전, 숙소 호스트에게 혹시 오후 2시에 체크인이 가능한지 메시지를 보냈다.

 

스트라스부르 기차역
스트라스부르 기차역

오후 1시 50분, 오래된 역 건물을 유리돔으로 감싼 스트라스부르역에 도착했다.

알자스 지역의 대표도시 스트라스부르에 나는 9년 만이고 남편은 처음으로 온 여행지다.

2014년에 아들과 보름간 유럽에 왔을 때, 여름비 내리는 주말 2박 동안 스트라스부르에 머물렀었다. 

 

에어비앤비 앱에 벌써 호스트의 답장이 들어와 있다.

숙소 위치는 기차역에서 도보 10-15분 거리. 구시가 프티트 프랑스 바로 옆이다.

 

스트라스부르 기차역
스트라스부르 기차역

오후 2시 20분, 약속된 곳에서 열쇠를 받아 셀프체크인을 하려는데, 숙소에 호스트가 와 있다.

호스트가 숙소 안내-안 해도 되는-를 하고 돌아간 후 보니 세탁기 겸 건조기의 건조 기능이 작동되고 있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그런데 건조가 끝난 침구과 수건을 꺼내고 보니 제대로 건조가 안 되어있다.

수건들은 빨래건조대에 널고 침구만 다시 건조기에 넣어 돌렸다. 근데, 우리 지금 뭐하는 거니.

 

짐을 풀고 집 안을 살펴보니 천장 조명이 하나도 없다.

대신 스탠드 조명은 여러 개 있는데 거실 스탠드는 약하고 켜지지 않는 전등도 있어서 호스트에게 연락을 했다.

우선 침실 스탠드 중 하나를 거실로 옮겼더니 그런대로 나아졌다.

 

그런데 게스트안내서를 보니 체크아웃하는 날 침구와 수건을 세탁기에 넣어 작동시키라고 쓰여있다.

엥, 이런 경우는 못 봤는데. 그럼 세탁기 속에 있는 침구와 수건은 누가 넣은 거지. 전 게스트, 청소원, 호스트 중 누구.

이후 체크아웃하는 날, 게스트가 직접 침구를 세탁기에 넣으라는 안내를 우린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또, 이해 안 가는 점. 침실 서랍장엔 여분의 침구와 수건이 많았는데 왜 침구 세탁을 속도전으로 치르는지 알 수 없다.

 

이 숙소가 평점이나 리뷰가 아주 좋은 편은 아닌데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가성비다.

압도적인 위치에 내부가 넓고 세탁기까지 갖춰져 있음에도 컨디션 비슷한 다른 숙소에 비해 굉장히 저렴하다.

예약 시점이 숙박 2개월반 전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때까지 이 아파트가 남아있다-누군가 취소한 직후일 수도-는 것이 놀라웠다.

 

스트라스부르 숙소
스트라스부르 숙소
스트라스부르 숙소

긍정적인 마인드로, 여행지에서의 첫날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장을 보러 간다.

숙소 코앞 Norma는 저렴했으나 품목이 다양하지 않고 정리 상태가 엉망이며 내부가 지저분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르마에서 우유, 요거트만 구입해서 숙소에 넣어두고 오후 4시, 숙소에서 450m 떨어진 Monoprix로 간다.

 

클레베 광장 근처 온갖 물품과 식품이 구비된 대형마트 모노프리.

지하 1층 식품매장에서 계산한 합계 금액이 과한 것 같아 그 자리에서 확인하니 계산 오류다.

계산원이 캔맥주 0.33L 6개짜리 2박스를 3박스로 계산한 것이다. 아, 귀찮은 일이 또 생겼네,

계산원은 다른 직원을 부르고 그 직원은 영수증에 메모를 해주며 1층에서 환불 신청을 하라고 한다. 

결국 1층 계산 데스크로 가서 담당직원에게 신청을 했고, 트래블카드로 결제한 거라 3일 후 입금되었다.

 

예전엔 일어나지 않던 일들이 이번 여행에선 왜 여러 번 생기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린 오스트리아에 산 세월이 있으니 독일어 영수증 보는 건 아주 쉬운 일이고, 난 프랑스어 단어를 몇 개 아는-부전공-지라 이 또한

어렵지 않은데 왜 자꾸 사람을 시험하는지 모를 노릇이다.. 

 

모노프리 갈 때도 그러하더니 숙소로 오는 동안에도 빗방울이 오락가락한다.

건조기에 한번 더 돌렸으나 여전히 덜 마른 침구는 테이블과 빨래 건조대에 대충 펼쳐놓았다.

용량 작은 기계에 한꺼번에 이 많은 걸 다 때려넣으니 제대로 건조될 리가 있나.

여행 와서 이러고 있으면서도 화가 나지 않고 실없는 웃음이 난다.

 

쇠고기등심과 버섯을 버터에 굽고 야채를 더해 맥주를 들었다.

구시가 중심 거리, 살짝 열어놓은 거실 창으로 한국어가 끝도 없이 들려온다.

피곤하고 날도 궂으니 오늘은 더 나가지 않기도 했다.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여행이니까.

우리는 스트라스부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