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류/2023 코헴·낭시·스부·뷔부

10월 4일 (수) : 염원과 열망, 스트라스부르대성당

어젯밤 일찍 잠을 청한 덕분에 아침을 빨리 열었다.

6시, 거리에서 들리는 청소차 소리에 창문을 여니 전동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된장찌개로 아침식사를 한 후 딱 두 개 비치된-혹은 남아있는- 커피캡슐을 커피머신에 넣었다.

 

9시 20분, 스트라스부르 거리로 나선다.

식당들은 아직 오픈 전이고 구시가 한복판인 숙소 앞 골목길엔 식료품 배송 차량이 그득하다.

숙소에서 몇 걸음만 움직이면 스트라스부르의 핵심 관광지이자 랜드마크인 프티트 프랑스 Petite France.

프티트프랑스의 운하와 유람선 그리고 목골 가옥들을 보면서 9년 전 기억을 떠올려 본다.

 

Petite France 프티트 프랑스
프티트 프랑스
프티트 프랑스

프티트 프랑스는 16세기 개신교 탄압을 피해 이주한 프랑스 사람들이 모여 산 곳이라 '작은 프랑스'라 불렸다고 한다.

스트라스부르가 포함된 이곳 알자스 지역-현재는 그랑테스트에 속함-은 꽤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알자스공국이었던 시절도 있으나 프랑크왕국, 슈바벤공국-신성로마제국- 등 독일어권에 속한 중세를 보내게 되는데,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술을 발명하여 독일어성경 등을 찍어낸 곳도 슈트라스부르크-현 스트라스부르-다.

알자스는 17세기 이후 프랑스와 독일을 수없이 오가면서 국가가 변경되었고 세계 2차대전 후 프랑스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러한 이유로 스트라스부르 구시가에서 보이는 이정표엔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병기된 경우가 많다.

물론 예전부터 알자스 지역에서 쓰던 언어는 표준 독일어가 아닌 알자스어-알레만어-로, 프랑스어 영향을 받은 독일어 방언이라 한다.

 

생토마광장 : 프랑스어(플라스생토마)와 독일어(토마스플라츠) 병기
생토마교회
생토마교회 : 미카엘천사

청명한 날에 예쁜 거리를 걷다가 만난 개신교회는 생토마교회다.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독일과 알자스엔 카톨릭성당 못지 않게 개신교회가 많다.

생토마교회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건립되었고 내부엔 1778년 모차르트가 연주한 오르간이 있는데, 이 오르간은 알자스 케제르베르

-Kaysersberg카이제스베르크-가 고향인 알베르트 슈바이처도 연주했다고 한다.

 

생토마교회

프티트 프랑스와 그 주변을 넘나드는 발걸음이 편안하다.

스트라스부르 구시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골-하프팀버-가옥과 석조 건축물의 조화가 멋지다.

9년 전에도 본 '악마의 풍차'란 이름의 가게가 그대로 있네, 그땐 아들과 함께였는데 말이지.

한국인은 간혹 보이는데 비해 중국어는 온 사방에서 연달아 쏟아진다.

 

구시가 공원

여행 기간이 2주가 넘으니 공수해온 김치가 거의 다 떨어졌다.

숙소 근처 마트엔 무나 배추가 없어서 아시아마트로 가는 길, 운하 옆 예쁜 공원이 있다. 

맑은 공원에선 곳곳에 풍경화를 그리는 여인들과 할머니들이 참 많다. 마치 그림 강습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아시아마트 규모는 생각보다 크고 판매품목도 다양했다. 

무와 숙주 그리고 너구리라면과 비비고 김치만두까지 고른 후 쌀-스시라이스-도 구입했고, 숙소로 들어가다가 근처 까르푸시티에서

우유, 오렌지주스 및 커피캡슐까지 챙기니 주방이 아주 든든해졌다.

 

김치만두를 넣은 너구리는 환상적인 점심식사다. 유럽에서 먹는 라면은 진짜 맛있다.

식사를 한 다음 싱싱하지 않은, 바람든 무를 반만 납작하게 썰어서 소금에 절여 깍두기를 담갔다.

좋은 재료는 아니었으나 대충 익혀 1-2일 후 먹어보니 그다지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숙소 앞 거리 : 그랑뤼
찻집
클레베 광장

오후, 프티트프랑스 가는 길목인 숙소 앞 거리에 보행자가 부쩍 많아졌다.

옆 건물 아래층 카페로부터 향긋한 커피향이 올라오고, 여기저기서 피워대는 담배냄새도 열린 창으로 들어온다.

 

3시, 스트라스부르의 주요 건축물인 대성당으로 간다.

붉은 빛 예쁜 찻집을 지나고, 성당에 다다를 즈음엔 드넓은 클레베 광장을 만났다.

한쪽에 장터가 한창인 광장은 쇼핑몰을 비롯한 여러 건물로 싸여있고 중앙엔 철모르는 10월의 분수가 가동 중이다.

 

대성당 근처
카테드랄 광장
카테드랄 광장

10월 평일인데도 스트라스부르대성당 앞 광장엔 인파가 가득하다.

11세기초에 시작된 대성당 건립은 350년 동안 이어졌다고 하는데, 일반적인 고딕 성당과는 달리 첨탑-142m-이 하나다.

 

스트라스부르대성당
스트라스부르대성당
스트라스부르대성당

아치볼트로 장식된 파사드 입구를 통과하면 어마어마하게 높은 천장을 지닌 내부가 꿈인듯 펼쳐진다. 

첨두아치가 드러나는 성당 실내엔 장미창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 천상의 빛이 한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9년 전 사진을 보면 그때도 분명 성당 안에 들어왔는데, 외관과는 달리 내부를 본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스트라스부르대성당 : 천문시계
스트라스부르대성당 : 천문시계

대성당 내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엔 16세기에 제작된 천문시계가 자리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프라하 구시가 천문시계에 얽힌 슬픈 스토리 같은 일화는 전해지지 않는, 해와 달의 위치 및 별자리 위치 등을 전달해주는

이 시계는 매시 30분에 종이 울리나 보다.

사진을 찍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뒤를 보니 다들 종소리를 기다리는 중, 나도 얼른 천문시계로부터 멀어졌다.

 

스트라스부르대성당 정면 파사드
샤토광장에서 본 대성당
샤토광장에서 본 대성당

주교좌 성당인 스트라스부르대성당 외관을 쭉 둘러 살펴보니 엄청난 건축물이다.

사제와 민중의 염원과 열망을 담아 붉은 사암으로 쌓아올린 신념은 첨두아치로, 공중부벽으로, 또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로 구현되었다.

떠오른 기억 하나. 9년 전, 대성당이 보이는 샤토 광장에서 아들은 대만여행객을 모델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구텐베르크 청동상이 있는 쿠텐베르크 광장에, 흔한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있다.

오래된 광장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회전목마가, 유럽 여러 도시의 유명 광장에 늘상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무얼까.

휴양지나 놀이공원도 아니고 축제나 행사 기간도 아닌데 말이다.

 

구텐베르크 광장
구텐베르크 광장 : 상공회의소(출입문 위 조각상 중앙은 전령의신이자 상업의신인 헤르메스)
구텐베르크 광장

오늘은 대대적으로 마트 터는 날, 숙소로 들어가기 전 Auchan오샹에서 또 장을 본다. 

라비올리와 뇨끼, 토마토소스, 훈제연어 등을 들고 숙소 앞으로 온 시각은 정확히 오후 6시 20분.

그런데 숙소 공동현관이 있는 골목의 한 개신교회 앞을, 무장한 군인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다. 

도심의 무장 군인이라, 쉬이 보는 광경은 아니라 호기심이 일었으나 그 마음 후딱 거두고 숙소로 들어왔다.

 

많이 걸은 편도 아니건만, 게다가 낮에 한참이나 숙소에서 쉬었건만 허리도 다리도 다 뻐근하다.

스트라스부르 구시가 숙소 거실, 거리를 비춰주는 오래된 창가에 차려진 저녁식사는 탁월한 피로회복제다. 

토마토소스를 버무린 라비올리와 뇨끼도 아주 맛있고 훈제연어와 맥주도 정말 근사하다.

 

그런데 저녁 9시쯤이었을까. 널브러져 쉬는 중, 집 안에서 난데없는 일이 벌어졌다.

예측할 수 없었던 이 상황은 호스트가 해결해야 할 일이었기에 후딱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다행히 바로 답장이 왔고 상황 개선을 위해 내일 저녁에 호스트가 숙소에 방문하기로 했다.

처음엔 놀랐으나 오스트리아에 살 때 100년도 훨씬 넘은 집에 산 경험을 되살려 우린 쿨하게 잠을 청했다.

내일은 내일의 일이, 분명 아주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