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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코헴·낭시·스부·뷔부

10월 9일 (월) 2 : 보방댐 파노라마테라스

머리와 마음을 대강 채웠으니 이제 고갈된 육신을 채울 시간이다.

오스텔리츠 광장 근처에서 괜찮은 레스토랑을 찾았으나 평일 낮-오늘의메뉴가 괜찮은듯-인데도 예약이 꽉 차서 자리가 없다 한다.

휴가 시즌이나 성수기가 아닌 가을인데도 이런 상황이니, 인기 있거나 가성비 좋은 식당은 예약 필수인 듯하다.

 

스트라스부르역사박물관

다른 거리로 움직여서 평점 좋은 레스토랑 실외에 앉았다.

처음엔 실외 자리의 왼쪽에 앉았다가 곧 레스토랑 출입문과 가까운 맨오른편 좌석-사진엔 안 나오는-으로 옮겼다.

식당 바깥 작은 칠판에 오늘의 메뉴-Plat du jour-인 듯한 이름이 쓰여있기에 그걸 주문하자, 완전 처음 보는 비주얼의 음식이 나왔다.

알고보니 이곳은 놀랍게(?)도 레바논 레스토랑이었고 탁자 위에 놓인 음식은 레바논식 또는 아라비아식 식사였던 것이다.

 

우리가 오스트리아에 거주했었고 지금도 해외를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사실 여행했던 지역은 매우 한정적이다.

아시아에선 오사카와 후쿠오카-이젠 안 갈 일본-와 홍콩이 전부이고 그 외엔 유럽 대륙에 있는 도시만 여행했다.

괌, 미국, 호주도 가지 않았으며 남들이 패키지여행으로 많이 다녀온 튀르키예-서남아시아-도 간 적이 없다.

이슬람 지역을 여행한 적도 없고 아랍 음식을 접한 적도 없으며 심지어 유럽 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케밥을 먹어본 적도 없다.

 

얇은 빵 및 8가지 음식과 소스로 이루어진 식사는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했으며 아주 맛있었다.

다만, 식사 후 에스프레소와 레바니아 커피 중 레바니아가 맛있다고 한 주인장 말에 따라 레바니아를 주문한 것은 패착이었다.

레바니아는 레바논 커피 즉, 아랍식 커피였던 것이다. 원두가루가 그대로 씹히고 향 없는, 게다가 맥주보다 비싼 커피는 입에 맞지 않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Auchan에 들러 뇨끼, 훈제연어, 맥주를 구입한 후 숙소에 들어온 시각은 오후 2시 20분.

카푸치노를 마시고 또 포도를 먹고 푹 널브러져 제대로 휴식한 다음, 오후 5시가 되어 다시 거리로 나섰다.

 

숙소 출입문쪽 골목 끝에 있는 호텔
창가의 고양이

매일 같은 길을 걷고 또한 매일 다른 거리를 만났던 스트라스부르에서의 시간이 거의 다 흐르고 있다.

9년 만에 다시 와서 기쁘고, 그때보다 더 오래 머무르고 더 많이 느끼면서 진정한 가치와 역사를 알게 된 도시.

프티트프랑스 어느 식당 건물의 창가엔 멋스러운 고양이가 시선을 올려 저편 일강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강변 놀이터
Ponts Couverts : 쿠베르 다리
Ponts Couverts

늦은 오후, 우리가 이렇게 돌길을 걷고 있는 까닭은 프티트프랑스에 맞닿아 있는 보방댐에 오르기 위해서다.

프티트프랑스를 걷고 일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고 다리 위에 건립된 탑을 스쳐 지나가면 금세 보방댐을 만날 수 있다.

 

Ponts Couverts
Ponts Couverts
Barrage Vauban보방댐과 파노라마테라스

1690년에 건설된 보방댐에서는 파노라마테라스라 부르는 가장 높은 야외 옥상공간까지 올라갈 수 있다.

예상보다 인적이 드물었던 댐 내부 계단을 올라 드디어 마주한 파노라마테라스, 그곳에서 보는 정경은 아주 멋지고 근사했다.

일강의 아름다운 다리와 3개의 탑이 거울처럼 일강에 고스란히 비치고, 그 뒤로는 프티트프랑스와 구시가 풍경이 펼쳐졌다.

훗날 이곳은, 또 이 시간은 마음 속에 어떤 기억으로 채색되어 있을까. 

 

보방댐 파노라마테라스에서

파노라마테라스에서 한참동안 머물다가 처음에 들어왔던 보방댐 입구 아닌 반대편으로 나가보았다.

넓은 광장엔 순시 중인 경찰들이 있고 흑인들이 많았으며, 미술관인 듯한 건물 옆 벽면엔 흑백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구시가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는데, 현대적이고 자유분방했으나 여행객이 마음껏 돌아다니기엔 좀 우려스러워 보였다.

 

미술관 옆 거리 벽화
프티트프랑스에서 본 보방댐

다시 돌아온 보방댐 앞 프티트프랑스.

목골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고, 그 건물 0층 기념품 가게에 들러 알자스 와인잔의 독특한 빛깔을 이야기한다.

 

알자스 와인잔

숙소 옆 양쪽 건물 빵집과 카페 그리고 술집엔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쁜 골목에 위치한 저곳에서 일상을, 또는 여정을 풀어내며 스트라스부르에서의 하루를 갈무리하겠지.

 

숙소 오른쪽 건물 : 술집
숙소 왼쪽 건물 : 빵집과 카페

뇨끼로 떡볶이 흉내를 내고 훈제연어와 땅콩, 올리브를 맥주 안주 삼아 즐기는 중, 호스트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청소도우미와 숙소 청소 시간을 조율하려는듯 내일 언제 체크아웃할 것인지 묻는다.

 

이제 정말 여행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 독일 뷔르츠부르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