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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4 베니스·로비니·비첸차

4월 7일 (일) :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또 새벽 2시반에 눈을 떴고 한참을 뒤척이다 알람 울린 6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곡물빵과 어젯밤의 산물인 피자로 이른 아침식사를 한 후 안개 옅은 7시 40분,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향한다. 

미술관 앞엔 아무도 없고 입장 시각까진 여유가 있어서 아카데미아 다리에 올랐는데, 대운하의 짙은 안개로 살루테 성당이 사라져 버렸다.

 

오전 8시 15분, 아카데미아 미술관 출입문이 열리고 대기줄 3-4번째에 섰던 우린 빠른 순서로 입장했다.

4월 첫째 일요일이라 무료 입장이었지만 안쪽 티켓부스에서 무료 티켓을 받았고 전시실 입구에서 직원이 티켓 확인을 했다. 

 

야코벨로 델 피오레,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 사이에 있는 정의 208x133cm, 208x194cm, 208x163cm (1421) 세로*가로
티치아노 베첼리오, 성모마리아의 성전 방문 335x775cm (1534-1538)

계단을 올라, 다면화가 주를 이루는 1층 1전시실. 공정의 칼과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은 당당하다.

강력한 물리력과 판단력을 지닌 미카엘 대천사와 수태고지의 전령 가브리엘 대천사 사이에서 진정한 정의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 옆 24전시실엔 성모마리아가 3세 때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는 모습을 그린 티치아노의 '성모마리아의 성전 방문'이 걸려 있다. 

가로가 거의 8m에 이르는 대작으로, 지금 건물이 미술관이 되기 전 '스콜라그란데 사랑의 성모마리아' 건물이었을 때 주문한 그림이다.

 

비토레 카르파초, 그리스도의 성전 봉헌 420x231cm (1510) / 조반니 벨리니, 산지오베 제대화 471x292cm (1485-1488)
비토레 카르파초, 성녀 우르술라의 꿈 273x267cm (1490-1494)

2전시실엔 비토레 카르파초의 '그리스도의 성전 봉헌'과 베네치아 최초 유화인 조반니 벨리니의 '산 지오베 제대화'가 있다.

개방성과 유연성이 장착되었던 무역국가 베네치아는 피렌체나 로마보다 유화의 습득과 수용이 빨랐고 이를 통해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다.

베네치아 많은 화가들처럼 카르파초도 베네치아화파의 대가 벨리니의 영향을 받았는지 두 그림은 배경과 구도, 색채가 묘하게 닮았다.

 

조반니 벨리니의 '산 지오베 제대화'는 이름 그대로 산 지오베 성당 중앙 제대에 있던 그림이다.

산자카리아 성당 제대화처럼 그림 바깥쪽의 구조물과 연계하여 제작한 것일 텐데, 작품만 떼어오다보니 뭔가 아쉬운 형태다.

중앙엔 성모자가, 왼쪽엔 프란치스코와 세례자 요한 그리고 욥-지오베-이 있고 오른쪽엔 도미니코와 세바스티아노와 성 루이를 그렸다.

 

예상 외로 같은 2전시실에서 비토레 카르파초의 '성녀 우르술라의 꿈'(순교 고지)을 만났다.

아카데미아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인지하기는 했으나 미술관 1층의 18전시실부터 23전시실까지 임시휴관 중이다.

20, 21, 23전시실엔 젠틸레 벨리니와 비토레 카르파초, 틴토레토의 주옥 같은 작품들이 아주 많이 모여 있다.

카르파초와 틴토레토의 성화를 못 보게 되어 꽤나 속상한 참이었는데 그나마 이 그림은 이동 전시되어 만날 수 있었다.

 

'우르술라의 꿈'은 훈족에 의해 4세기에 순교한 성 우르술라 생애를 그린 8점의 연작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천사가 순교를 상징하는 종려나무잎을 든 채 서 있고, 창문 앞 화분의 블루베리과 카네이션은 신의와 그리스도의 수난을 뜻한다.

 

안드레아 만테냐, 성조지 66x32cm (1446) / 코스메 투라, 성모자 61x41cm (1459-1463)
조반니 벨리니, 피에타 65x87cm (1505경)
조반니 벨리니, 성모자와 성바오로,성조지 65x88cm

3전시실에서 눈에 들어온 그림들은 작은 회화 작품이다.

만테냐가 그린 '성 조지' 속에서 조지의 팔과 부러진 창과 용의 얼굴이 프레임을 넘어가는데, 만테냐가 자주 쓰던 표현법이라고 한다.

코스메 투라의 '성모자'에서 잠든 아기 예수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벨리니의 '성모자,성바오로,성조지' 속 아기 예수의 발 포갠 모습-

십자가에 못 박히는 발-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의미한다.

 

6전시실 출입문 위 : 조반니 벨리니, 성 마르코의 순교 362x771cm (1515-1526)
조반니 만수에티, 성 마르코의 삶에 대한 일화 371x603cm (1525-1527)
파리스 보르돈, 도제에게 반지를 바침 370x300cm (1545) / 조반니 만수에티, 성 마르코가 아니아노를 치료함 376x399 cm

6전시실에서 만나는 회화들도 압도적으로 거대하다.

위 작품들은 산마르코 일생을 다룬 7점의 연작에 해당되는데, 15세기 조반니 벨리니와 그의 형 젠틸레 벨리니가 연작을 시작했고

그들의 사후엔 젠틸레의 제자인 조반니 만수에티로 이어지며 마지막 2작품은 파리스 보르돈과 팔마 일 베키오가 맡았다.

 

가로 6m가 넘는 조반니 만수에티의  '성 마르코의 삶에 대한 일화'는 원래 스콜라그란데 산마르코를 장식했던 그림이다.

오른편엔 산마르코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교회를 세우고 주교가 된 모습을, 중앙엔 집전 중 산마르코가 생포되는 모습을 그렸고

왼쪽 장면에서는 순교 전 산마르코가 자신의 영혼을 받아달라 기도하고 구원자인 예수는 인사를 건네고 있다.

마르코여, 평화가 함께 하기를, 나의 사도여...

 

파리스 보르돈의 '도제에게 반지를 바침'에는 14세기 전설이 담겨 있다. 

한 어부-또는 곤돌리에-가 산마르코 축일 전날, 베네치아 도제에게 반지는 바친다. 

성 마르코, 성 니콜라스-또는 성 테오도로-, 성 조지는 폭풍을 조정하여 도시를 파괴하려 했던 괴물-악마-로부터 베네치아를 구해내고

베네치아 수호성인 성 마르코는 어부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증표로 반지를 주면서 도제에게 전달하도록 한다.

이 반지는 산마르코 성당 성물함에 보관되어 있던 반지였다고 한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성 리베라타 (1495-1505경)
티치아노, 대천사 라파엘과 토비야 170x149 cm (1508)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네 명의 성인 각292x137cm (1508-1509)

7-8전시실에는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플랑드르에서 순교한 성녀와 주변 인물을 독창적으로 표현한 '성 리베레타(자유의 여신)'가 있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 '회화의 군주'로 불린 티치아노는 실명한 아버지-토빗-를 위해 길 떠나는 토비야와 치유의 천사 라파엘를 그렸는데,

물고기 든 소년이나 물고기와 함께 묘사되는 천사는 3명의 대천사 중 라파엘이다.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는 4명의 성인을 각각의 패널에 표현했고 특히 중앙의 두 성인은 살가죽이 벗겨져 순교한 성 바르톨로메오와

화살형을 이겨내어 흔히 몸짱으로 묘사되는 성 세바스티아노-투석형으로 순교-다.

 

조르조네, 폭풍 82x73cm (1505)
조르조네, 노파 68x59cm (1508)

8전시실엔 요절한 천재화가 조르조네(1477-1577)의 '콘서트, 노파, 폭풍'이 전시되어 있다. 
화가는 작은 프레임 안 어두운 배경에 갇힌 노파를, 세월의 흐름 속 숙명적인 변화와 고단한 눈빛으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녀의 손에는 '시간과 함께'라는 문구가 쓰인 종이가 들려 있다.

 

'폭풍'은 서양미술사 최초의 풍경화이자 캔버스-이전엔 나무패널나 회벽-에 그린 최초의 유화라고 한다.

왼쪽 하단의 남자는 군인이나 목동으로 추측되는데, 그렇다면 옷을 벗은 채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오른쪽 여자는 누구일까.

이 그림 속 남녀는 아담과 이브, 요셉과 성모마리아, 목동과 집시여인 등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최근의 X선 검사 결과 남자의 아래쪽에 원래 나신의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고 하여 그림 속 남녀의 존재와 의미는 더 미궁에 빠졌다. 

 

파올로 베로네세, 레비 가의 잔치 560x1309cm (1573)
파올로 베로네세, 수태고지 271x541cm (1578)
틴토레토, 십자가에 못박힘 280x444 m (1555)

10전시실은 이 미술관에서 가장 큰 그림인 가로 13m가 넘는 '레비 가의 잔치'가 전시된 곳이다. 원 제목은 '최후의 만찬'.

산티조반니에파올로 성당의 식당을 장식하기 위한 작품으로, 성서 내용에서 벗어나 베네치아 귀족 집안의 잔치처럼 화려하게 묘사했다.

 

특히 예수 주변 인물들은 로마대약탈을 일으킨 루터파 독일 용병들을 연상시켰기에, 이 그림을 주문한 도미니코회에서 신성모독으로

베로네세를 종교재판에 회부했다. 베로네세는 창작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수정 명령을 거부하고 제목을 '레비 가의 잔치'로 변경했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 의해 약탈되어 파리로 옮겨진 후 1815년에 반환되었다.

 

베로네세의 '수태고지'에서는 성령으로 잉태함을 알리려 백합 든 붉은 옷의 가브리엘 대천사가 푸른 옷 입은 성모마리아를 찾아온다.

틴토레토는 '십자가에 못박힘'에서 화려하면서도 풍부한, 붉고 푸른 색채를 드러냈는데 왼쪽에는 펄럭이는 깃발을 든 백부장- 로마 군대 중 

100명으로 조직된 부대의 우두머리 -이 표현했고 오른쪽엔 주사위를 던지는 기병과 군인들을 그렸다.

 

완전 멋진 11전시실
틴토레토, 성 마르코의 기적 416x544cm (1547-1548)

11전시실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중세 이후 지중해 해상무역을 주름잡았던 베네치아였기에 어느 도시보다 안료 구입이 유리했고 르네상스 시기의 베네치아화파 화가들은

이러한 장점을 마음껏 누리면서 압도적 크기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틴토레토의 '노예를 해방하는 성 마르코의 기적'은 원래 스콜라산마르코에 걸려있었던 작품으로, 보고 또 보고 한참을 본 그림이다.

성인의 유물을 경배한 노예에게 분노한 주인이 눈을 뽑고 사지를 자르라는 명을 내리지만 형을 집행하려 하자 막대기와 도끼가 부러진다,

땅에 누워있는 노예를 기준으로 인물들이 대각선 구도를 만들어 긴장감을 부여하고, 두 방향의 빛을 통해 연극적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틴토레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림 228x295cm (1560) / 틴토레토, 그리스도의 성전 봉헌 237x296cm (1554-1555)
틴토레토, 성 마르코 유해 발굴 397x315cm (1562-1566) / 티치아노, 피에타 353x347cm (1575-1576)

11전시실, 틴토레토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림', '그리스도의 성전 봉헌', '산마르코 유해 발굴'도 꼭 감상해야 할 회화다.

그리고 이곳엔 티치아노가 자신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생애 마지막 작품인 '피에타'가 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손가락으로 물감을 묻혀 그렸다고 하는데, 미완성작을 다른 화가가 마무리했다. 꺼질 듯 무거운 느낌의 그림이다.

 

틴토레토, 테소리에리의 성모 221x520cm (1566)
프란체스코 바타글리올리, 건축 투시도 131x56cm (1772) / 안토니오 카날레토, 회랑 풍경 131x93cm (1765) / 주세페 모레티, 전망 130x56cm (1776)

그림의 향연은 끝없이 이어지고, 엄청난 작품 속도로 알려진 틴토레토의 대형 그림들도 선물처럼 계속된다.

성 세바스티아노, 성 마르코, 성 테오도로와 세 명의 재무관-봉헌자-에 둘러싸인 성모자의 모습을 소재로 삼은 '테소리에리의 성모'도 가로

5m가 넘는 그림이라, 길고 폭 좁은 공간에서 허접한 초광각으로만 찍을 수 있었다. 재무관들 뒤엔 현금 자루를 든 3명의 비서관이 있다.

카날레토의 '회랑 풍경'은 잔잔한 정경이 정물처럼 다가오고, 다른 화가들이 그린 좌우 그림은 마치 연작처럼 비슷한 분위기다,

 

보니파치오, 솔로몬의 심판 180x309cm (1533)
바사노, 성 히에로니무스 119x154cm (1563)
인니발레 카라치, 성 프란체스코 91x73cm

14전시실과 16전시실에도 솔로몬, 히에로니무스, 프란체스코 등 성서 속 인물들이 등장한다.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은둔자 성 히에로니무스 주변엔 붉은옷과 나무십자가와 해골이 있고, 누더기옷을 입은 성 프란체스코의 손엔

성흔이, 그 곁엔 해골이 자리하고 있다. 삶은 유한하고 탐욕은 무상할 뿐이다.

 

극적인 스토리와 뭉클(?)한 소재의 유디트 이야기는 회화의 영원한 소재다. 미망인 유디트는 조국 이스라엘을 침공한 아시리아 왕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술 취해 잠든 그의 목을 베고, 성벽에 걸린 왕의 목을 본 아시리아 군대는 전의를 상실하여 철군한다.

스승인 예수와 똑같은 십자가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고, 313년 크리스트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는 예수가 못박혔던 십자가를 찾아낸다.

 

줄리아 라마,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131x178cm (1725-1730)
루카 지오다노, 성베드로의 십자가형 211x273cm (1659-1660)
잠바티스타 티에폴로, 십자가의 축일 486x486cm (1743) : 0층 전시실

오픈런을 해서 감동적이고 감동적이었던  3시간 20분 동안의 관람을 마쳤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성화를 정말 많이 소장하고 있고 풍경화 및 그리스신화를 소재로 한 회화도 꽤 많았으며

이탈리아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1757-1822)의 부조와 조각 작품도 여러 전시실에서 볼 수 있었다.

무료 관람일인 오늘, 미술관엔 관람객이 많았으나 한국인은 드물었고, 미술관 밖으로 나오니 입장 대기줄이 정말 길었다.

 

산타마르게리타 광장
숙소 앞

벅찬 감명을 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Majer에 들러 우리의 점심이 돼줄 크루아상을 구입했다.

정오를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오고, 숙소 앞 산타마르게리타 광장엔 일요일을 맞은 사람들이 즐겁게 거닐고 있다.

크루아상을 먹고 아이스크림까지 챙긴 후 무조건 긴 휴식이다. 

 

카 레초니코 앞 대운하

오후 3시반, 카 레초니코 앞 대운하를 향해 천천히 걷는다.

핵심 관광지를 살짝 벗어난, 한적한 레초니코 쪽 대운하가 푸른 하늘 아래 정말 아름답다.

Conad에 들러 우유, 계란, 요거트, 모차렐라, 빵, 맥주 등을 구입하여 숙소로 들어오니 참을 수 없이 어마어마한 잠이 쏟아진다.

 

완전 맛있는 된장찌개를 저녁으로 먹고, 어제 보기 시작한 '기생수'를 시청하면서 맥주를 곁들였다.

늘도 그제처럼, 또 어제처럼 딱 9시 취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