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류/2024 베니스·로비니·비첸차

4월 8일 (월) 1 : 두칼레 궁전 속 천국

아카데미아 다리에서 본 대운하

이른 아침식사를 마치고 커피에 포카치아를 곁들인 후 8시 20분, 산마르코로 향한다.

아주 천천히 걸어서 아카데미아 다리를 건너고 베네치아의 좁은 거리와 다리들을 건너 산마르코 광장에 이르렀다.

아침 하늘은 흐리지 않고 광장엔 여행객들이 꽤 많다.

 

산마르코광장과 산마르코대성당, 종탑
산마르코광장과 시계탑, 산마르코대성당
두칼레궁전 외부 회랑과 입구

9시 20분, 다른 때와는 달리 내부입장권을 예약하지 않은 우린 두칼레 궁전 입구-운하쪽-의 현장 구매줄에 섰다.

두칼레궁전 입장권-코레르,마르차나 포함-은 30일이전 온라인 예약시 5유로 할인된 25유로이고, 30일이내 예약이나 현장구매는 30유로다.

생각보다 현장 구매줄은 길지 않았고, 보안 검색대를 거쳐 두칼레 궁전의 넓고 멋진 중정으로 들어섰다.

 

두칼레 궁전 자리엔 810년부터 베네치아공화국위원회들과 도제의 사무공간이 있었고, 1340년에 베네치안고딕 양식-중서부유럽의

고딕양식과 다른-으로 현재의 두칼레 궁전을 건립했다. 1483년과 1577년에 대화재가 일어났고 이후 팔라디오가 복원 공사에 참여했다. 

 

두칼레궁전 중정 : 산마르코대성당 돔이 보임
두칼레궁전 중정 쪽 : 거인의 계단
산테오도르 조각상

직사각형 중정의 3면은 궁전 건물이고, '문서의 문'과 이어지는 한 면엔 건축가 산소비노가 만든 '거인의 계단'이 있다.

계단 양쪽엔 1567년 산소비노가 세운 아레스와 포세이돈의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육지와 바다에서의 베네치아 힘을 상징한다,

현재 '거인의 계단'으론 올라갈 수 없고, 계단 초입의 회랑 근처엔 옛 베네치아의 수호성인 산테오도르 조각상이 있다.

 

위층 로지아 : 사자의 입
황금의 계단
황금의 계단

궁전으로 들어가는 위층 로지아 벽면에는 익명의 투서함인 '사자의 입'이 설치되어 있다.

두칼레 궁전에 보존되어 있는 것처럼, 사자가 입을 벌린 모양의 문서 투입구가 베네치아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사자의 입' 하단에는 라틴어로 '공금을 횡령하거나 지위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한 자들에 대한 비밀이 보장되는 고발장소'라고 쓰여있다.

 

1559년 산소비노가 설계한 '황금의 계단' 입구를, 코린트 양식의 기둥 위에서 헤라클레스와 아틀라스가 지키고 있다.

해양강국으로서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순금과 화재에 강한 스투코-석회 부조-로 황금의 계단 벽면과 천장을 섬세하게 장식했다.

 

의회실 (The Council Chamber)
의회실 (The Council Chamber) : 베로네세. 그리스도,성모마리아,성인들과 함께 있는 도제

공간마다 화려한 장식과 회화가 돋보이는 두칼레 궁전에서  한두 개의 방을 지나 우리를 맞은 곳은 의회실이다.

정면엔 베로네세의 '그리스도, 성모마리아, 성인들과 함께 있는 도제'가 있고 다른 벽면엔 틴토렌토의 회화들이 걸려있다.

 

상원의회실(The Senate Chamber)
상원의회실(The Senate Chamber) 정면 : 틴토레토, 죽은 예수를 경배하는 도제들
상원의회실(The Senate Chamber) 후면 :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도제들

이어지는 상원 의회실은 베네치아의 정치, 경제, 외교, 국가 행사를 논의하던 곳이다.

정면엔 틴토레토의 벽화 '죽은 예수를 경배하는 도제들'을 배치하고 후면엔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도제들'을 그려넣음으로써

베네치아와 도제들의 강력한 권위와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그제나 어제처럼 두칼레 궁전 내부에서도 현장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 중인 초중고생이 아주 많다.

이탈리어는 물론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의 학습지를 든 학생들은 열심히 빈 칸을 채워가며 집중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베네치아 두칼레 내부 학습이라니, 참말로 부러울 따름이다. 

 

상원의회실(The Senate Chamber) 측면 : 팔마 일 조바네, 캉브레전쟁 승리의 우화
10인위원회실(The Chamber of the Council of Tens) 천장화 : 베네치아에 꽃을 뿌리는 헤라, 제우스가 번개를 치며 악을 물리침

상원 의회실의 측면엔 팔마 일 조바네가 그린 '캉브레 전쟁 승리의 우화'가 걸려 있다.

교황 율리오 2세가 주도한 캉브레동맹과의 전젱에서 베네치아가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여신이 사자-베네치아-를 앞세워 흰소-유럽-를 탄 캉브레동맹과 싸우고 천사들은 도제에게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주고 있다.

 

10인 위원회는 베네치아 각 귀족 가문에서 1명씩 선출하여 국가기밀, 주민동향, 외국첩보 관련 일을 하던 조직이다.

강한 권력을 지녔기에 3명의 감찰관을 두어 권력을 견제했고, 다음 임기-1년-엔 현 위원이 배출된 가문은 위원에서 제외시켰다. 

10인위원회실의 천장에는 제우스, 헤라 등 그리스신화 속 으뜸신들을 통해 그들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대회의실(The Chamber of the Great Council)
대회의실(The Chamber of the Great Council) 정면 : 틴토레토, 천국
대회의실(The Chamber of the Great Council) 정면 : 틴토레토, 천국 9.1m*22.6m (1588-1592/) 세로*가로

드디어 두칼레 궁전의 하이라이트인 대회의실이다.

한 면은 53m이고 다른 한 면은 25m인, 기둥 하나 없는 거대한 공간인 이곳은 25세 이상의 모든 귀족 남성이 모여 회의를 하던 곳이다.

기둥 없는 단일 공간으론 유럽에서 가장 큰 이곳의 정면엔, 가로 22.6m의 세계에서 가장 큰 캔버스 유화인 틴토레토의 '천국'이 있다.

틴토레토는 '천국'에 700명 넘은 인물을 그려넣었고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 순교한 성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유일무이한, 거대하고 압도적이며 위대한 그림 앞에서 나는 신념과 현실을 떠올렸다.

념에 따라 지조를 지키며 엄정히 살고 고통으로 죽은 그들은 진짜 천국에 닿았을까.

나락 같은 과정 끝에 다다른 천국이란 결과는 충만을 가져다 주었을까. 천국이 없다 했으면 나락을 견딜 수 있었을까.

 

대회의실(The Chamber of the Great Council) 프리즈 : 베네치아 도제 76명의 초상화
대회의실(The Chamber of the Great Council) 천장 : 베로네세, 베네치아의 승리
대회의실(The Chamber of the Great Council)

대회의실 천장 아래 프리즈엔 공간 전체를 띠처럼 둘러 76명 도제들의 초상화를 그려넣었다.

원래 틴토레토에게 주문했으나 대부분 그의 아들 도메니코 틴토레토가 작업했으며 쿠데타로 참수된 55대 도제의 자리엔 라틴어로,

'범죄로 참수 당한 마리노 팔리에로의 초상화가 걸려야 할 자리다'라고 쓰여있다고 한다.

 

잠바티스타 티에폴로, 베네치아에 바다의 풍요를 바치는 포세이돈
비토레 카르파초, 산마르코의 사자

대회의실을 나와서 몇몇 전시실을 거치면서 베네치아화파 화가들의 강렬하고 인상 깊은 그림들을 만났다.

그리고는 계단을 내려가 낮고 좁은 통로를 지난 후 다시 계단을 내려가서 궁전 너머 감옥으로 입장했다.

 

감옥 내부
감옥

탄식의 다리는 법원이 있던 두칼레 궁전과 신감옥을 연결하기 위해 1614년에 만들었다.

바깥에서만 보던 탄식의 다리를, 직접 다리 안에서 걸으며 밖을 바라보니 기분과 느낌이 다르다.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다시 못 볼 염려보다, 여름엔 뜨겁고 겨울엔 추운 악명 높은 피옴비-납-감옥에서 살아낼 걱정 그리고 밀물과 홍수 때면

어김없이 물 들어찰 감방에서 죽지 않고 걸어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탄식하지 않았을까.

 

탄식의 다리
탄식의 다리

옛 베네치아에서 2시간반을 머무르다 지금의 세상으로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맑은 날, 이제 우린 또다른 옛 베네치아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