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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4 베니스·로비니·비첸차

4월 8일 (월) 2 : 코레르 박물관의 두 여인

코레르 박물관

두칼레 궁전을 거침없이 살라버리고 나니 딱 정오다.

산마르코 광장을 가로질러 코레르 박물관 입구에 도착했고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다.

 

코레르박물관 카페
코레르박물관 카페
코레르박물관 카페 전망

계단을 올라 1층에 자리한 코레르박물관 카페에 앉았다.

산마르코광장에서 산마르코대성당과 멀리 마주한 이곳은 고풍스러운면서도 깔끔하고, 우리의 바람대로 한적했다.

 

코레르박물관 카페

최고의 조망을 보여주는 코레르 카페에서 탄산수, 까르보나라 파스타, 라자냐를 주문했고 식사 후엔 카푸치노와 디저트를 요청했다.

모두 무난히 맛있었고, 무엇보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여서 정말 좋았다.

육신을 채웠으니 또 마음을 채우러 코레르 박물관으로 행차해 볼까.

 

코레르박물관 건물은 베네치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원래 건물을 부수고 나폴레옹윙이라 불리는 이곳을 만들어 집무실로 사용했고,

베네치아가 오스트리아로 넘어간 해인 1814년부터 1866년까지는 합스부르크왕가에서 사용했다.

코레르 박물관은 나폴레옹 치하에서 예술품을 수집한 테오도로 코레르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설립했고 1922년에 현재 건물로 옮겨왔다.

코레르 박물관은 아파트먼트 공간과 박물관 그리고 페인팅갤러리로 이루어져 있다.

 

안토니오 카노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1776) : 에우리디케 손목을 잡고 있는 지하세계의 손
안토니오 카노바, 다이달로스와 아카로스 (1779)
안토니오 카노바, 다이달로스와 아카로스 (1779) : 밀랍으로 이어붙인 날개 그리고 망치와 끌

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18세기 이탈리아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의 부조와 조각 작품들이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와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를 비롯하여 그리스신화 속 에피소드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 많았다.

특히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의 발 아래엔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다이달로스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망치와 끌이 표현돼있어서 재미났다.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미노스왕의 명으로 미노타우로스-얼굴은 소,몸은 인간. 미노스아들,생물학적아들은 아님-가 살 미궁을 만든다.

그러나 아테나이 왕자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을 탈출하자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미궁에 갇힌다.

두 사람은 새 깃털을 밀랍으로 붙여 날개를 만들고 새처럼 날아서 미궁을 탈출하지만 태양열에 날개 밀랍이 녹아 이카로스는 추락하고 만다.

 

별자리 지구의
아르세날레

박물관에는 베네치아의 역사와 문화 관련 전시물들이 많았다.

고서와 문서가 전시된 공간에서는 별자리나 옛 지도가 그려진 지구본의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아르세날레-조선소-로 명명된 전시실에는

해상무역 강국답게 선박 미니어처들과 실제 사용한 등대들, 아르세날레를 묘사한 그림들이 많았다.

그 외 베네치아 지도, 다채로운 주제의 회화, 다양하고 섬세한 판본과 판화 등도 볼거리가 돼주었다.

 

코스메 투라, 피에타 (1460)
피터 브뤼겔, 동방박사의 경배 (16세기)

관심 가는 공간인 페인팅갤러리에는 기대를 거스르지 않는 회화가 많아서 즐거웠다.

아카데미아에 '성모자'가 전시되어있는 코스메 투라, 그의 '피에타'는 독특한 선과 인체 비례 덕에 단번에 알아보았다.

갤러리 대표작인 브뤼겔의 '동방박사의 경배'는 누가 보든 어떻게 보든 딱 브뤼겔 그림이었다.

 

조반니 벨리니, 변용
조반니 벨리니, 성모자 (1475)
조반니 벨리니, 죽은 그리스도를 부축하는 두 천사 (1465)

조반니 벨리니의 '변용'에서 모세와 엘리아를 만난 예수는 눈처럼 하얗게 변모했고 '성모자' 속 아기예수는 밀려오는 졸음을 떨치지 못했다.

'죽은 그리스도를 부축하는 두 천사'의 하단엔 조반니 벨리니와 친분 있던 뒤러의 서명과 1499라는 연도가 쓰여 있다.

 

비토레 카르파초, 베네치아의 두 여인 (1495)
발견된 윗부분을 연결한 그림(좌)과 추정되는 전체 그림(우)

'베네치아의 두 여인' 속 여인들은 난간에 기대어 앞을 응시하고 있고 생명체들은 묘하게 묘사되어 주제가 불분명한 그림이었다.

이 그림엔 경첩 흔적이 있어서 전체 그림의 일부로 추정되었고, 실제로 그림 윗부분이 발견되었는데 위쪽은 석호에서 사냥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온전한 그림으로 보기 어렵고 그림 왼편에 다른 그림 조각-미발견-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합스부르크왕가 문장과 프랑스 국기
침실

코레르 박물관의 아파트공간에서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 문장과 프랑스 국기다.

이곳에서는 나폴레옹과 합스부르크왕족-프란스요셉,씨씨-이 사용한 침실, 응접실, 식당, 연회장 등의 호화로움을 볼 수 있다.

 

응접실
식당
연회장

2시간 가량 코레르 박물관을 관람했나 보다.

산마르코 광장엔 수많은 인파로 가득하고, 온몸은 고단함을 절실하게 또 열렬히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마르차나 도서관은 어쩌지. 코레르와 내부에서 이어진다고 하더니 어찌된 걸까. 길을 잘못 들어 빼먹은 걸까.

피아제타 쪽 마르차나 도서관으로 갔으나 직원은 다른 입구를 안내해 주었고 그곳으로 가니 다른 직원은 또다른 입구를 가리킨다.

이젠 발걸음 뗄 기운조차 없다. 이렇게 된거 오늘 관람은 여기까지다.

 

두칼레궁전
문서의 문
4명의 로마황제 조각

오전에 이어 두칼레 궁전 외관을 다시 바라보았다.

위층 로지아에서 기둥 2개가 색상이 다른데, 도제가 시민들에게 중요한 발표를 하거나 죄수의 사형선고를 내리던 곳이다.

산마르코 대성당 쪽 '문서의 문' 위엔 날개 달린 사자 앞에 도제가 무릎을 꿇고 있고 그 위엔 산마르코 흉상과 작은 고딕첨탑이,

꼭대기엔 칼과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 디케가 자리하고 있다.

 

문서의 문과 붙어있는 대성당 모서리엔 1차 사두정치 황제인 4명의 로마 황제 조각상이 있다.

사두정치는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로마를 동서로 분리하고, 두 제국을 다시 정제와 부제의 지역으로 나누어 통치했던 체제로,

산마르코대성당 앞 4마리 청동마처럼 이 황제상도 제4차 십자군전쟁의 전리품이다.

 

라 페니체 극장
아카데미아 다리에서 본 대운하

산마르코 광장을 지나고 라 페니체 극장 앞을 걷고 아카데미아 다리를 건너 산타마르게리타 광장으로 돌아왔다.

세탁기를 돌려 건조대에 빨래를 널고 난 후, 베네치아 코나드표 뇨끼로 뇨끼떡볶이-떡 대신 뇨끼-를 만들었는데 신통치가 않다.

작년 가을 스트라스부르에선 쫄깃탱글한 뇨끼라서 정말 맛있는 뇨끼떡볶이가 탄생했었는데, 코나드표 뇨끼는 그저 물컹흐물거릴 뿐이다. 

 

고단함을 다독이며 판타지 드라마 '기생수' 4-6회를 마쳤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베네치아에서 세상에 없는 천국을 만나고 베네치아의 두 여인을 만났다.

우린 판타지 같은 도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