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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4 베니스·로비니·비첸차

4월 21일 (일) : 팔라디오의 로톤다

7시에 눈을 떴으나 자리 털고 일어난 시각은 오전 8시, 계란북엇국과 감자조림과 요거트로 하루를 시작한다.

비첸차 숙소에는 캡슐커피머신과 이름모를 커피캡슐이 준비되어있는데, 캡슐커피가 너무 맛이 없어서 그저께 오후에 illy 캡슐을 구입했다.

역시 실패없는 illy,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도 일리커피는 아주 맛있다.

 

10시 40분 넘어 길을 나섰다. 일요일인 오늘 오전엔 숙소 근처에 있는 팔라디오 건축물들을 둘러보려 한다.

팔라디오가 지은 Palazzo Civena는 강 옆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마침 강에서 카약인지 카누인지 경주를 벌이고 있다.

다리 위에서, 꼴찌 그룹에 포함된 선수들을 향해 관중들은 박수를 치면서 응원을 하고, 우리도 손을 흔들어 그들의 노력을 지지했다.

 

팔라디오, Palazzo Civena 팔라초 치베나 (16세기)
팔라초 치베나

팔라초 치베나는 궁전이라기엔 외관이 수수하고 단정한 편이다.

지상층은 팔라디오 건축물답게 회랑을 배치했고 피어-아치 사이 벽면-엔 원과 직사각형의 벽감을 넣었다.

위층 창문 위쪽엔 페디먼트와 원형 장식을 교차해서 붙였고 창문 사이엔 코린트식 벽체기둥을 두 개씩 넣어 세련미를 더했다.

 

Santa Maria delle Grazie 산타마리아델그라치에성당 (16세기)
Palazzo Valmarana Salvi 팔라초 발마라나살비 (1694)
Porta Castello - 성문 (12세기)

팔라초 치베나에서 길을 따라 북서쪽으로 향하면 산타마리아델라그라치에성당이 나오는데, 문 여는 시간이 아니라 굳게 닫혀있다. 

유로스파엘 가느라 매일 지나던 광장에선 보수 중인 팔라초 발마라나살비와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성벽의 성문을 만날 수 있다.

 

로지아 발마라나 (1592)
로지아 발마라나

광장 옆에는 그다지 크지 않은 Salvi 살비 공원이 있는데 깔끔하게 관리되는 것 같지는 않다.

공원의 연못을 조망하기 좋은 위치에 팔라디오의 제자가 완성한 로지아 발마라나가 자리해 있다.

전면에 6개의 도리스식 기둥을 균형있게 배열한 로지아 발마라나의 모습과 그 옆 조각상들의 자태가 연못에 아름답게 비친다. 

 

팔라디오, 산타마리아누오바성당 (16세기)

조금 더 가볼까. 팔라디오가 지은 성당으로 가는 길에도 회랑 있는 건물들이 쭉 이어진다.

격조 있는 건물들은 회랑으로 잇닿고, 회랑은 비첸차를 더욱 운치있고 멋스럽게 만들어준다.

아, 그런데 성당은 완전 폐쇄된 상태이고, 비첸차 거리의 인터넷 데이터는 또 연결이 안되고 있다.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 화장실도 들를 겸 동네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이탈리아 대부분의 도시에서처럼 비첸차 동네 카페의 커피도 가격 착하고 아주 맛있다.

그리고 매일 개근 중인 유로스파에 또 들러서 치즈, 크루아상, 초콜릿도 알차게 구입했다.

 

오후 2시반, 꽤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팔라디오 건축물의 정수인 빌라 로톤다의 외관을 보러 갈 계획이었는데, 갈지 말지 갈등상태다.

 

귀족의 저택이나 호화 저택은 도시에 있으면 Palazzo이고 교외에 지으면 Villa라 부른다.

빌라 로톤다 또는 빌라 알메리코 카프라는 팔라디오가  1566년부터 설계 시공하였고 1599년에 수제자 빈첸초 스카모치가 완공했다.

성당 채플처럼 저택의 명칭은 건축주나 이후 바뀐 주인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빌라 알메리코 카프라엔 내부에 원형의 홀이 있어서

원형 건축물을 일컫는 로톤다를 붙여 빌라 로톤다라고도 불린다. 아니 빌라 로톤다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Villa la Rotonda 빌라 로톤다 또는 Villa Almerico Capra 빌라 알메리코카프라, 조망 가능한 인도
빌라 로톤다
빌라 로톤다

오후 4시반이 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고 우린 초스피드로 외출 준비를 한 후 기온이 급강하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8번 버스에 승차하여 기사에게 티켓을 구입했는데, 비첸차 교통 홈페이지에 공지된 €1.7 아닌 €1.3추가된 €3-1인-를 징수했다.

유럽 많은 도시에서 버스나 트램 내에서 교통티켓을 구입하는 경우 추가금이 붙기는 하지만 보통 €0.5 정도인데, 운전기사가 정해진 것보다

요금을 과하게 추가한 건지 구시가에서 빌라 로톤다-행정구역 비첸차-까지 거리가 멀어서(?) 다른 구역 요금으로 받은 건지 모르겠다.

 

빌라 로톤다는 금,토,일요일 오전에 2시간, 오후에 2-3시간만 공개되는데 이미 입장 마감시간이 다 되어 내부 관람은 불가능하다.

사실 이 건축물의 인테리어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빌라 로톤다의 독특하고 개성있는 외관만 볼 생각이다. 

5정거장이 지난 후 버스에서 내려 빌라 로톤다 입구 대신 로톤다를 조망할 수 있는 도로 쪽으로 걸어간다.

도로 옆 인도에서 밀밭 너머로 빌라 로톤다의 외관을 조망할 수 있는데 우거진 주변 나무들이 조망을 살짝 방해한다.

우리 말고도 빌라 로톤다를 보기 위해 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있고 차량 2-3대도 도로 갓길에 멈춰서 있다.

 

빌라 로톤다의 모태는 고대 로마가 남긴 위대한 건축물인 판테온이다.

그런데 빌라 로톤다의 진정한 매력은 건축물의 사면이 모두 동일한 파사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팔라디오는 파사드마다 20개가 넘는 계단 위에 그리스 신전처럼 페디먼트와 이오니아식 6개 기둥을 배치하여 포르티코-주랑 현관-를

만들었고, 건축물 네 면의 벽면과 지붕 역시 같은 형태로 설계했으며 중앙에는 돔 천장 아래 원형의 홀을 디자인했다.

 

빌라 로톤다
빌라 로톤다

멀리서 봐도 빌라 로톤다의 대단한 위용은 그대로 전달된다. 너무나 벅차다.

누구도 하지 않은 구상을 현실로 옮겨놓은 위대한 창의성, 천재는 역시 새로운 길을 내는 선구자인 것이다.

빌라 로톤다 정문 쪽으로 후다닥 이동했다. 폐관에 임박한 시간이라 인적이 거의 없었고 문을 통해 건축물의 정면을 들여다보았다.

 

빌라 로톤다 근처에 오래 머물진 않았지만 자주 운행하지 않는, 돌아갈 버스 시간이 매우 촉박해졌다. 

숙소까지 2km 거리라 걸어갈 수도 있으나 우린 꽤 고단했고 이번 버스를 놓치면 1시간을 기다려야 할 상황이라 재빨리 움직여야 했다.

버스가 도착했고 빌라 로톤다로 올 때 탔던 버스의 기사를 또 만났다. 운전기사의 요청대로 남편은 아까 구입한 티켓을 기계에 태그했는데

경쾌한 효과음을 낸다. 시간이 지나지 않은 유효 티켓이라 버스 티켓을 또 구입하지는 않았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비첸차 구시가에 낭만도 내리고 있다.

휴일의 낭만을 즐기며 산책을 하다가 점찍어둔 피자리아에 갔으나 오픈시각이 가까워졌는데도 내부가 어둡다.

구글맵엔 문 여는 시각이 6시 15분으로 나오고, 가게 앞에 명시된 오픈시각은 오후 6시였으나 직원 말로는 저녁식사는 7시반부터 가능하고

피자 포장 픽업 역시 마찬가지라 한다.

 

그렇다면 가게 앞에, 저녁 오픈시각을 7시반이라고 제대로 명시해야 하지 않나.

원래 이탈리아인의 저녁식사 시간이 늦은 편이라 6시에 오픈해도 어차피 손님이 없고, 오늘 저녁식사 첫 예약은 7시반이라 그때가 되어야

식당 문을 연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자기들이 명시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레스토랑, 구글 평점은 괜찮았으나 우리 평점은 제로다.

 

Luzo문 (11-12세기)
숙소 근처 현대적 팔라초 : 완벽한 비례와 균형
숙소 근처

터벅거리면서 숙소로 돌아가는 거리의 집들이 새삼 참 멋스럽다.

팔라디오처럼 페디먼트를 만들고 벽기둥을 짓고 테라스를 내고 균형감 넘치는 창문을 설계했다.

내일은 비첸차를 떠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