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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4 베니스·로비니·비첸차

4월 19일 (금) : 팔라디오가 만든 세계

구시가 가는 길

7시반 넘어 기상한 비첸차에서의 첫 아침.

어젯밤 침실 히터 밸브를 다 열었으나 저녁 늦게 꺼진 히터는 새벽이 되어서야 따뜻해졌다.

이동식 히터를 켜서 춥진 않았지만, 난방 가동시간을 외부에서 조절하는 시스템이라면 밤엔 켜고 아침에 끄는 게 맞지 않을까.

 

비첸차 숙소는 0층 공동출입문 안에 다른 집 출입문과 우리 숙소 문이 있고, 거실 창은 바깥 도로-좁지만 버스 다님-와 바로 접해있기에

거실 소파나 식탁에 앉아있으면 외부 소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우린 불규칙한 음향에 예민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공수해온 즉석밥이 고갈되어서 냄비밥을 지었고 짜장과 미역국, 볶음김치는 아침 메뉴가 되었다.

 

오늘 일정은 비첸차 뮤지엄 4티켓을 구입하여 테아트로 올림피코와 바실리카 팔라디아나를 입장 관람하는 것이다.

어젯밤 잠시 겪어본 비첸차는 스케일이 엄청나고 성대하며 예스러운 도시라 매우 기대가 크다.

물론 그 중심에는 안드레아 팔라디오(1508-1580)라는 위대한 건축가가 있다.

 

산타마리아 안눈치아타 대성당
산타마리아 안눈치아타 대성당
산타마리아 안눈치아타 대성당 : 수태고지

오전 10시, 시뇨리 광장 가는 길에 눈길을 끈 건축물은 산타마리아 안눈치아타 대성당-고딕 르네상스 양식-이다.

이전 성당의 주요벽이 무너지면서 현재 대성당은 15세기에 건립되기 시작했고 16세기에 팔라디오가 돔을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심하게 손상되어 이후 복원했으며 안눈치아타라는 이름처럼 정문 위쪽에 수태고지 프레스코화가 있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시뇨리 광장
시뇨리광장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앞

드넓은 시뇨리 광장이 밤새 대변신을 했다.

뜻하지 않게, 여행자로서는 반갑지 않게 꽃 장터가 열리고 있고 이 행사는 일요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꽃은 아름답지만, 역사적인 건축물과 팔라디오 건축물이 꽃들에 묻혀버리니 온전히 비어있는 광장은 월요일 아침에야 볼 수 있다.

 

테아트로올림피코 및 인포, 매표소 앞
테아트로 올림피코
테아트로 올림피코 Teatro Olimpico

시뇨리 광장을 스쳐오긴 했으나 그곳의 바실리카 팔라디아나는 두번째로 갈 곳이고 첫 행선지는 테아트로 올림피코다. 

Teatro Olimpico 테아트로 올림피코 입구 근처에 자리한, 관광 인포메이션센터를 겸하는 티켓판매소에서 4뮤지엄티켓을 구입한 후

안드레아 팔라디오(1508-1580)가 설계한 테아트로 올림피코-올림픽극장-로 입장했다. 

 

안드레아 팔라디오는 16세기 북부 이탈리에서 활동한 건축가로, 서양 건축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팔라디오는 주택 평면을 체계화했고 포티코-포르티코, 주랑 현관-에 고대 그리스로마 신전의 정면 형태를 적용했다.

팔라디오 이전엔 이름을 남긴 건축가는 없었는데, 석공이었던 팔라디오는 고대 건축물을 연구하고 인문학적 지식과 건축 이론을

정립시켜 위대한 건축가가 되었다. 그의 건축론인 <건축 4서>는 고전 건축 양식과 장식을 대중화했고 팔라디오 건축과 출판물의 영향은

18세기 건축 특히 영국, 아일랜드, 미국, 이탈리아에서 팔라디오-팔라디안-양식을 창출했으며 팔라디오 양식은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

 

팔라디오의 걸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테아트로 올림피코는 1580년 2월, 팔라디오 자신이 회원으로 있던 문학, 과학, 예술 분야

비첸차 주요인사들의 협회인 아카데미아 올림피카에서 의뢰한 건축물이다. 1580년 5월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팔라디오 사후인 1585년,

수제자 빈첸초 스카모치에 의해 완공되어 1585년 3월, '오이디푸스왕'이 초연되면서 개장하였다고 한다.

테아트로 올림피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붕 있는 극장으로, 조형물 및 조각과 부조는 대리석이 아닌 목재와 회반죽으로 제작했고

무대의 문 너머 7개 거리는 원근법에 의해 고대도시 테베를 만들고 그렸다. 

 

테아트로 올림피코
테아트로 올림피코
테아트로 올림피코

큰 기대를 안고 입장한 공간이라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와 조형물을 본 순간, 경탄을 멈출 수가 없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연극 무대를 실내로 들여오다니 말도 안 되게 기발하고 창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천장엔 구름 흘러가는 푸른 하늘이 그려져 있고, 계단식 객석 뒤엔 도열한 조각상과 코린트식 열주가 멋진 조화를 이룬다.

 

방송이 시작되고 아련한 연주가 흐르더니 다채로운 불빛을 무대 이리저리로 옮겨가면서 7-8분 동안 쇼타임이 진행된다.

테아트로 올림피코에도 현장학습 중인 학생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을 비롯한 관객들은 이 황홀한 쇼를 기꺼이 즐기고 있다.

 

Osteria Il Cursore
Osteria Il Cursore
트러플파스타

비첸차 숙소 호스트가 어제 식당 4곳을 추천해 주었는데, 그 중 3곳이 우리가 미리 찍어온 곳-우연이 과함-이다.

오후 1시, 구시가 중심을 살짝 비껴난 레스토랑을 골랐고 당연히 예약없이 들어갔는데, 직원이 예약 여부를 묻는다.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 앉을 좌석이 있었고 탄산수와 맥주, 아주 맛있는 트러플파스타를 주문했다. 

식사 후 자리에서 일어나니 어느 새 생긴 대기줄의 맨 앞 사람들이 우리가 앉았던 좌석을 잽싸게 차지한다.

 

에르베광장 :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뒤쪽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Basilica Palladiana 입구 : 왼쪽 문

멋진 에르베 광장과 다시 온 시뇨리 광장. 날씨는 물론이고 도시 분위기가 정말 좋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0층은 팔라디오 건축물의 특징인 회랑과 열주로 둘러싸여 광장과 맞닿고, 회랑엔 샵들이 입점해 있다.

원 건물에 회랑을 덧붙여 개축하여 고대로마 공공건물인 바실리카로 이름지은 이곳은, 팔라디오 사후에도 60년 이상 공사가 계속되었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직사각형인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0층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1층 회랑이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의 긴 두 면은 시뇨리 광장 및 에르베 광장과 접하고 짧은 한 면은 피아제타 안드레아 팔라디오와 이어진다.

회랑 난간엔 동일한 비례로 같은 모양의 아치가 늘어서있는데 아치 양쪽의 좌우엔 앞뒤로 이중 이오니아식 기둥을 만들었고

회랑 천장은 벽돌을 이용해 리브볼트를 본딴 듯한 형태로 개방감 있게 조성했다.

회랑 안쪽 벽면에 그위 부조 장식이 다른 출입문과 창문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벽면 안쪽이 바실리카 공간인 듯하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전망 : 로지아 델 카피타니아토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전망 : 산빈센초 성당

1층 회랑-지상층 아님-에서 보이는 조망이 참 멋있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주변의 광장과 건물, 거리 모습에서 비첸차의 개성과 특성이 드러난다.

특히 시뇨리 광장 전망이 근사한데 16세기에 팔라디오가 지은 로지아 델 카피타니아토도, 종려나무 가지-천국과 순교 의미-를 든

성인 조각상들이 있는 산빈첸초 성당도 다 멋지고 화려하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테라스
지구를 든 아틀라스 그리고 비사라탑과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테라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테라스

2층으로 오르면 테라스가 펼쳐지고 바실리카 내부공간의 바깥쪽 벽면과 둥근 창 그리고 청동지붕을 볼 수 있다.

3월 홈페이지엔 테라스 폐쇄가 공지되었었는데 다행히 4월부터는 테라스를 오픈하였다.

테라스에선 12세기에 건립된 82m짜리 비사라탑이 제대로 보이고, 시선을 더 올리니 사방이 더 훤하다. 

 

그런데, 광장에서 올려다 본 조각상은 멋졌으나 눈앞에 펼쳐진 조각상-신화 속 신들-은 낡고 금가고 구멍까지 뚫려있다.

조각상마다 긴 지지대가 부착되어 있고 다리에 석고 붕대나 쇠장화를 달고 있는 신들도 많았다. 사람이든 유적이든 세월엔 장사가 없다.

아, 근데 회랑 안쪽 공간은 미개방인가.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테라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테라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사진 출처 : museicivicivicenza)

유로스파Eurospar로 가는 도중 마주한 거리와 광장에도 장엄한 건축물들이 있다.

12세기에 지어진 포르타 카스텔로 탑-성문 탑-은 중후한 모양새로 비첸차를 내려다보고, 팔라디오 설계대로 제자 빈첸초 스카모치가

16세기 후반에 건립한 포르토 브레간즈 궁전은 미완성인 채로 광장을 지키고 있다.

 

포르타 카스텔로 탑 (성문 탑)
포르토 브레간즈 궁전

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트인 Eurospar가 비첸차 숙소 근처에도 있으니 장보기도 편리하고 구경하기도 좋다.

1시간 동안 우유, 요거트, 계란, 호박, 오이, 감자, 양파, 일리커피캡슐, 바나나, 오징어, 삼겹살 등 먹을거리들을 쓸어담았다.

 

저녁 메뉴는 오이무침과 올리브, 삼겹살구이와 깔라마리 버터구이 그리고 맥주다. 

그리고 2회차 '감빵생활' 14-15화를 즐거이 시청한 후 새벽녁에야 잠이 들었다.

 

비첸차에서의 실질적인 첫날, 엄청나고 대단하고 위대해서 가슴이 뛰었다.

르네상스 건축의 천재가 창조한 도시, 꿈이 구현되고 바람이 실현된 도시, 이곳은 비첸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