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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4 베니스·로비니·비첸차

4월 20일 (토) : 산타코로나와 키에리카티

오전 8시, 식탁에 오른 메뉴는 무려 유부초밥과 아스파라거스수프, 올리브와 오이무침이다.

토요일 아침, 9시반 넘어 우선 시뇨리 광장으로 향한다.

 

시뇨리 광장엔 어제처럼 꽃들이 광장을 뒤덮고 있다.

어제 우린 시뇨리 광장에 있는 '바실리카 팔라디아나'에 입장을 하긴 했는데, 회랑과 테라스 그리고 바실리카로 추정되는 공간의 외벽만

보았을 뿐 건축물 중심에 있는 바실리카엔 들어가지 못했다.

어디에도 입구가 없었고 막연히 공개하지 않나보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정확한 영문은 알고 싶었기에 오늘이라도 문의를 해야 했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 지상층 귀금속가게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 어제 관람
어제 찍은 사진 : 바실리카팔라디아나 0층 입구. 일반입장(회랑,테라스)은 왼쪽, 전시회입장(바실리카)은 오른쪽
전시회장으로 활용 중인 바실리카 (사진 출처 : museicivicivicenza)

남편이 직원에게 물어보니 바실리카 공간은 존재하지만 늘 전시회장이나 행사장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입장권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전시회 티켓을 구입해야만 입장 가능하다고 한다.

아니 그럼, 바실리카를 뗀 그냥 팔라디아나 입장권이라고 해야지, 아니면 바실리카가 보이는 입구까지만이라도 들어가게 하던가.

바실리카를 들여다보고 싶긴 했으나 제목만 봐도 현대미술-관심무-관련 전시회가 열리는 중이라 어쩔 수 없이 패스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지상층에도 팔라디오 건축의 주요 특징인 회랑과 열주가 배치되어 있다.

도로와 접한 건물 지상층에서 한 칸 안으로 들어가서 그곳에 지붕 있는 회랑을 내어 시민들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광장과 이어지는 바실리카 팔라디아나의 지상층 회랑엔 귀금속샵이 많은데, 예부터 비첸차에 금속세공술이 발달했다고 한다.

 

산타코로나성당
산타코로나성당
산타코로나성당 : 팔라디오가 설계한 발마라나 예배당(1576)

시뇨리 광장에서 테아트로 올림피코 방향으로 400m쯤 걸어가면 산타코로나성당과 키에리카티궁전-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예수의 가시관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13세기에 건립한 산타코로나 성당에 먼저 입장했다.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 성당으로, 비첸차 뮤지엄카드로 입장 가능한 곳이다.

 

산타코로나성당 중앙제대 : 맨위- 예수의 부활
중앙제대 아래쪽 : 예수의 부활, 최후의 만찬
산타코로나성당 목재성가대석 : 중앙제대 뒤 앱스

입장객은 적고 예술품은 넘치는, 미술관 같은 이곳의 압권은 대리석 상감으로 제작한 중앙 제대다.

제대 중심엔 예수의 일생과 수난, 성인들의 일화를 새겼고 양 끝엔 헬레나, 마리아막달레나, 히에로니무스 등 성인 조각상이 배열되어있다.

이곳엔 팔라디오가 설계한 발마라나 예배당이 있는데, 군더더기 없이 자연광을 잘 담아낸 공간이다.

 

조반니 벨리니, 그리스도의 세례 (1501-1502)
로렌초 베네치아노&마르첼로 포골리노, 별의 성모 (1360, 1519)
베로네세, 동방박사의 경배 (1573)

예배당마다 가득 채운 그림과 장식은 정말 아름답고 화려했다. 

오랫동안 베네치아공화국 영향하에 있던 도시라서 베네치아파 화가인 조반니 벨리니, 베로네세, 로렌초 베네치아노의 그림이 많았다.

카톨릭 국가의 카톨릭 성당은 역시 예술의 결정체이자 집합체다. 보고 느끼고 찍다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키에리카티 궁전 박물관 Museo Civico di Palazzo Chiericati
키에리카티 궁전 박물관

키에리카티 궁전은 1550년 팔라디오가 설계했고 17세기말에 완성되었으며 1855년 시민박물관으로 개관했다.

아래층 바깥면엔 열주와 회랑을 배치했으며, 위층 바깥쪽 중앙은 실내로 들이고 양 끝은 이오니아식 기둥이 있는 테라스로 만들었는데,

건축물 꼭대기의 조각상과 조형물까지 전면에서 보면 완벽하게 좌우가 대칭되고 비례된다. 

 

천장화 : 파에톤의 태양마차
잠바티스타 티에폴로, 시간-크로노스-이 밝혀낸 진실 (1744) 251*338 세로*가로
잠바티스타 비토니, 디아나-아르테미스-와 요정들 (1725) 146*197

한산하고 고요한 키에리카티 궁전 박물관의 시작은 재미난 그리스로마 신화부터다.

아폴론 이전 태양신 헬리오스의 숨겨진 아들 파에톤은 존재감과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아버지의 태양마차를 몰다가 삶이 끝나고

시간의 신 크로노스는 낫으로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한 후 신들의 왕이 되지만 신탁에 따라 아들 제우스에 의해 축출된다. 

달과 사냥의 여신이며 순결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둘러싼 요정 중 훗날 곰이 되고 별자리 큰곰자리가 되는 칼리스토는 누굴까.

 

<중앙> 바사노, 성마르코와 성빈첸초 사이 성모자 앞에 있는 조반니모로 (1573) 342*519
파울로 베네치아노, 성모마리아의 죽음과 성프란체스코,성안토니오 (1333)
성 크리스토퍼

카톨릭 성화의 세계는 끝이 없다.

반원형 그림으로만 채워진 전시실은 처음인데, 밑면 가로 5m 내외인 거대한 그림 터널을 우리 둘만 걷고 있다.

베네치아노가 그린 아름다운 삼면화엔 예수 제자들에 싸인 성모마리아가 죽음을 맞고 좌우를 성 프란체스코와 성 안토니오가 지키고 있다.

 

독일 코헴성 외벽에도 그려있던, 이 작은 세로 그림엔 커다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물살 거친 강을 건너게 해주는 일이 생업인 거인 크리스토퍼는 자기보다 힘센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한 아이를 어깨에 메고 강을 건너는데 그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더니 온 세상을 어깨에 짊어진 듯하여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너는 지금 전 세계를 옮기고 있다. 나는 네가 찾던 세상의 창조주이며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이다.”라고 하며 강을 건널 때

쓰던 막대기를 땅에 꽂아보라 했다. 다음날 막대기는 커다란 종려나무로 자랐다.

 

바르톨로메오 몬타냐, 오노프리오와 세례자 요한 사이의 성모자 (1485-1486) 196*160
니콜로 론디넬리, 산타 마리아막달레나 (1495) 142*47 / 안드레아 부사티, 파도바의 성안토니오 (16C) 167*85
<중앙>바르톨로메오 몬타냐, 세례자요한,바르톨로메오,어거스틴,세바스찬,연주천사들과 함께 있는 성모자 (1485) 460*240

크리스트교 성인들의 일화가 흥미로운 것은 플롯으로 엮인 해피엔딩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기적이라 부르는 현상들을 무신론자의 관점에서 이성적으로 주시하면 그건 환상이나 몽환이다.

성서 속 이야기나 성인들의 이야기-황금전설-도 그리스 신화처럼, 우리 건국 신화나 무속 신화처럼 판타지인 것이다.

무신론자 입장에서는 그 이야기 속에서 은유와 상징 안에 숨겨진 본뜻을 찾아내면 되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가느다란 십자가를, 마리아 막달레나는 향유병을 들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몬타냐의 회화가 가득찬 전시실 정면엔 베아토 안젤리코나 조반니 벨리니의 그림과 비슷한 삼각구도 성화-성스러운 대화-가 있다.

성화 속 세 천사가 악기를 연주하듯, 이 전시실에서도 곧 연주회가 열릴 예정인지 악기를 배치하고 세팅하느라 분주하다,

 

바사노, 산타카타리나와 마리아막달레나 사이의 성모자 (16C) 159*127
프란체스코 베첼리오, 요한,요셉,카타리나와 함께 있는 성모자 (16C) 79*106
틴토레토, 환자를 치유하는 성 어거스틴 (16C) 255*175 / 조반니 파올로 로마초, 나를 붙잡지 말라 (1568) 231*142

산타카타리나는 자신의 고문도구인 쇠갈퀴 바퀴와 함께 표현되고, 성모자와 같이 등장하는 세례 요한은 아기 예수처럼 아기 모습이다.

카톨릭 4대 교부인 성아우구스티누스는 아픈 이를 치유하고, 부활한 예수는 자신을 붙잡는 막달레나에게 'Noli me tangere' 라 말한다.

차분하고 나직이 1시간반 동안 성화 속을 걷는 시간이 참으로 즐겁고 흥미로웠다.

 

팔라디오, Palazzo da Schio (16세기)
팔라디오&빈센초스카모치, Palazzo Trissino-Baston(왼쪽 1592)

키에르카티 미술관 앞 도로인 Corso Andrea Palladio를 따라 서쪽으로 걷기로 했다.

800m에 이르는 이 거리의 많은 건축물을 팔라디오가 설계했고, 이후 지어진 건물들도 팔라디안 양식에 따라 지어졌다.

도로 폭에 구애받지 않고 장대하게 또 성대하게 지은 팔라디안 건축물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으니 눈이 즐겁게 압도된다.

 

Palazzo Trissino-Baston
Corso Andrea Palladio

이 거리 서쪽 끝 즈음에 있는 dm에 들르고, 코르소 안드레아팔라디오를 벗어나자마자 보이는 유로스파에도 들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예기치 않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오후 2시에 먹는 점심은 맛있는 한국 라면이다.

비는 잠시만 살짝 내렸는지 하늘빛이 여전히 맑고 푸르다.

 

시뇨리 광장과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Casa Pigafetta (1481) : 마젤란의 첫번째 세계일주에 참여한 생존자, 안토니오 피가페타의 궁전

오후 6시 20분, 구시가로 저녁 산책을 나간다.

시뇨리 광장엔 여전히 꽃들이 활짝 피어있고, 그 주변은 주말을 맞아 현지인과 여행객이 섞여 인산인해다.

비첸차에 처음 왔으니 미니어처 기념품을 구입하려 했으나 아침에 본 가게 말고는 기념품 파는 곳을 찾을 수가 없다.

 

또, 맥주의 시간이다. 매일이라 해도 여행 중인 우린 과음과는 거리가 멀다.

쇠고기와 깔라마리 그리고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지만 진짜로 맛이 없는 소시지를 안주로 간택했다.

벌써 사흘째, 성대하고 찬란한 비첸차의 밤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