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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4 베니스·로비니·비첸차

4월 23일 (화) : 베네치아에 부는 바람

베네치아 주데카에서 본 본섬

꿈속에도 염려가 한가득이었는지 새벽 2시 잠에서 깼고 5시가 돼서야 다시 잠을 청했으며 7시반에 자리를 털었다.

가지볶음과 볶음김치뿐인 아침 식사는 아주 단출했으나 케이크와 요거트, 사과와 일리 캡슐커피로 부족함을 채웠다.

바람은 어제만큼 강하지만 비가 그쳤으니 천만다행이다.

 

산조르조마조레 성당
산조르조마조레 성당 앞에서 본 베네치아 본섬
중앙제대와 1733년에 제작한 오르간 그리고 틴토레토 그림

2번 수상버스를 타고 주데카섬 바로 옆 조르조섬의 산조르조마조레 성당으로 간다.

여행할 때마다 늘 찾아오는 곳, 성당 앞 크지 않은 광장은 베네치아 바다는 물론 바다 건너 본섬의 산마르코 종탑과 두칼레 궁전

그리고 산타마리아살루테 성당이 한눈에 잡히는, 가장 멋진 조망권이다. 

 

틴토레토, 사막의 유대인 (1592-1594)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1594)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설계로 1610년 완공된 이 성당은, 두 페디먼트와 코린트식 벽기둥으로 장식한 정면 파사드가 매우 아름답다.

성당 내부의 중앙제대 뒤엔 1733년에 만든 오르간이 제대스크린처럼 자리하고, 제대 좌우엔 틴토레토의 성화가 선물처럼 걸려 있다.

 

마테오 폰초네, 악룡을 물리치는 산조르조 (1648-1649)
중앙제대 뒤 성가대석 성조르조(=성조지, 성조르디, 성게오르기우스)
성당 정면 파사드의 성조르조

산조르조마조레 성당은 전투력 뛰어난 로마병사였으나 순교한 성인-조지, 조르디, 게오르기우스-에 공주를 구하는 영웅담이 덧붙여진

산 조르조를 명명한 성당이다. 성당 내부엔 무장한 채 말을 타고 칼과 창을 휘두르며 용을 무찔러 공주를 구하는 산조르조 그림이 있고,

중앙 제대 뒤 성가대석의 목조 장식물도 조르조이며, 외관의 정면 파사드에서도 산조르조 조각상을 찾을 수 있다.

 

바람의 기세가 살짝 꺾인 틈새로, 하늘 일부에 구름이 걷히고 있다.

어제 오후의 위력적인 비바람을 떠올리면 지금 날씨는 그나마 감사할 일이다.

다시 2번 바포레토를 타고 베네치아 대운하의 끝자락에 위치한 산타마리아델라살루테 성당으로 간다.

 

산타마리아델라살루테 성당

살루테 성당은 아카데미아 다리에서 보는 대운하 전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고, 이곳 앞에서 보는 대운하 전망도 멋스럽다.

물론 이 바로크 성당은 외관도 화려하고 아름다운데, 작년 봄에도 그러하더니 올봄도 외관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팔라 디 루카 조르다노, 성모마리아의 성전 봉헌 (1674)
티치아노, 성령강림 (1555)

공사 가림막 사이로 입구를 찾아 성당에 들어서면 둥근 돔 아래 우아한 조각상과 부조, 기둥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다.

중앙 제대의 성모자상을 비롯하여 그 주변과 벽면을 가득 채운 성인상들을 보고 있으니 정교함과 섬세함에 감탄사가 나온다.

채플에 걸린 성화도 다양했는데 수태고지, 마테오와 천사, 성모마리아의 성전봉헌, 티치아노가 그린 성령강림 등이 있다.

 

현대미술관-과거 세관-과 살루테성당
산마르코 광장

베네치아 본섬의 명소인 산마르코광장에 다다랐다. 

바람 강한 궂은 날이지만 인파는 여전하고 베네치아에서 유일하게 패키지여행객의 한국어가 수없이 들려오는 곳이다.

아직도 구름은 베네치아 상공에 미련이 지대하고 파란 하늘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오락가락하고 있다.

 

레덴토레 성당
레덴토레에서 숙소 가는 길

2번 바포레토를 타고 팔라디오가 설계한 레덴토레 성당 정류장에서 내려 바닷길을 걷는다.

오전에 2시간 넘게 돌아다녔으니 고단한 육체는 숙소에서 푹 쉬어줘야 한다.

그런데 휴식시간 동안, 하늘은 점점 파래지고 햇빛은 더없이 쨍해진다. 

 

베네치아 주데카
베네치아 주데카

하늘이 말도 못하게 푸르러진 오후 1시 50분, 밖으로 나왔다.

주데카 바닷길을 걷다보니 이곳에 마지막 숙소를 정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속상함이 한가득이다. 

바다를 보면서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려 했는데, 섬을 횡단하여 산책하려 했는데, 비바람과 추운 기온은 이 모든 계획을 앗아가버렸다.

 

베네치아 주데카
주데카 골목에서 본 바다 전망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서 아무 것도 없을 듯한 곳에 묘하게 자리잡은 coop에 도착했다.

어제 오려 했으나 100m도 이동할 수 없는 비바람 때문에 들르지 못했는데, 다양한 식재료와 간식들을 보니 비바람이 야속할 뿐이다.

치즈와 케이크, 잼, 파스타 등을 구입하여 숙소에 넣어두고는 베네치아 오후 산책에 나선다.

 

Zattere 정류장 앞 산타마리아델로사리오 성당
리알토 다리
아카데미아 다리

오후 3시, 다른 계획은 다 접고, 레덴토레에서 2번 바포레토를 타고 산마르코까지 수상버스 유람을 시작한다.

Redentore를 출발한 바포레토는 Palanca를 거쳐 본섬 Zattere - Tronchetto - P.le Roma(로마광장) - Ferrovia(산타루치아기차역)

- Rialto - Accademia - San Marco까지 운행한다. 산마르코에 도착하면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2번 수상버스를 타면 된다.

 

Tronchetto에서 로마광장으로 가는 도중 수상버스에 검표원이 등장했다. 배에서 검표원을 만난 건 처음이다.

일기가 고르지 않으니 수상버스 유람이 쉽지 않다. 해가 숨으면 추워지는 날씨 탓에 바포레토 실내와 맨앞 바깥을 여러 번 왔다갔다 했다. 

대운하를 가르며 달려준 바포레토 덕분에 리알토 다리-7박+2박 머물면서도 가지 않은-도 조망하고 아카데미아 다리도 기쁘게 마주했다.

 

베네치아 주데카
베네치아 주데카
베네치아 주데카

오후 6시, 어제 갔던 숙소 근처 피자리아 대신 600m 거리의 다른 피자리아로 향했다. 

어제보다 훨씬 더 친절한 피자리아가 있는 이 지역은  주데카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숙소 근처와는 다른 정경과 매력을 보여준다.

바다 전망이 아주 좋은 야외엔 좌석이 마련되어 있으나 강한 바람과 낮은 기온 탓에 그림의 떡이다.

 

베네치아 주데카 Redentore정류장
베네치아 주데카

종일 찬바람을 맞으며 다녔더니 몸에 열감이 있고 고단하다.

실질적인 여행의 마지막 날, 포장해 온 맛있는 피자를 먹으면서 여행 소감을 서로 묻고 또 서로 답한다.

예기치 않은 날씨 덕에 마지막 2박은 아쉬움이 무성하지만 뭐 어찌하랴, 또 어떠랴.

삶이 그렇듯 여행도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 나이까지 살아온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새로움을 발견한 기쁨이 지속된 시간이었다.

벅찬 감동이 그득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