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에 이어 올 여름, 다시 로마로 향한다.
나는 5번째이고 남편은 2008년 12월 이후 16년 만에 3번째로 만나는 로마다.
어제 오후, 반찬거리를 만들었고 캐리어도 꾸려두었으며, 막내-강아지-를 보살펴줄 아들까지 귀환했으니 우린 가뿐히 출발만 하면 된다.
지지난주 남편이 옮겨준 코로나19를 세게 앓아버린 탓에 체력은 완전히 방전된 상황이었지만 여행 출발은 늘 그렇듯 설렘 만발이다.
공항버스를 타러 집을 나서니 이른 아침임에도 후텁지근하다.
공항버스 정류장 근처엔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아주 길다. 나의 과거가 투영되듯 아침 출근 모습은 늘 그저 짠하다.
버스 내부는 한산했으나 월요일 출근시각과 맞물려 올림픽대로가 많이 막혔기에 2터미널엔 예정보다 20분 늦게 도착했다.
대한항공 프리미엄체크인카운터인 A카운터에서 대기없이 체크인을 했으나 보안검색엔 30분이 넘게 소요됐다.
12개 보안검색대 중 패스트트랙-노약자,임산부,장애인 등-인 1번과 승무원용인 12번을 제외한 일반 검색대는 달랑 3개만 열려있어서
몰려드는 탑승객들의 보안검사가 많이 늦어지고 있었다.
보안검색과 출국심사를 마친 후엔 바로 대한항공 프레스티지라운지 West에 들었다.
KAL라운지엔 5년 만인가. 살짝 낡았으나 복작거리지 않아 좋았고, 면세점 인도장이 가까워서 후딱 다녀오기 편리했다.
간단 비빔밥을 비롯한 음식도 괜찮았고 스타벅스 커피와 과일, 음료도 나쁘지 않았다.
라운지를 나와서 탑승구에 다다른 12시반, 여행의 설렘이 극에 달하는 곳인 탑승교를 밟아 신나게 항공기에 오른다.
낡은 보잉 777-300 항공기의 프레스티지슬리퍼 좌석 배열은 2-3-2인데, 중간열 3좌석 배치는 정말 프레스티지답지 않다.
게다가 중국 항로도 러시아워란다. 웰컴드링크는 이미 제공되었으나 출발이 늦어지자 추가 음료와 에피타이저가 서빙되었다.
프레스티지석을 70-80%쯤 채운 항공기는 30분 늦게 게이트를 출발했고 오후 2시경 로마를 향해 드디어 이륙했다.
우리 좌석은 로마 갈 때도, 인천으로 돌아올 때도 모두 10H, 10J다.
KE 777-300기엔 일등석 뒤에 프레스티지석 7~8열 14석이, 그 뒤 공간엔 프레스티지석 9~15열에 42석이 배치되어있다.
10열은 9~15열-대부분의 항공기엔 13열이 없음-중 상대적으로 앞쪽에 위치해 있어서 비행 내내 차분하고 아늑한 분위기였고,
유럽행 항공기 진행 방향의 오른쪽 좌석이라 빛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오후 2시반, 첫번째 기내식 서빙이 시작되었다.
우린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 미리 기내식 사전 주문을 해두었기에 담당승무원은 주문 내역만 확인했다.
이륙 전부터 시청하고 있던 영화 '댓글 부대'를 보면서 하이네켄과 전식을 받았다. 음, 수프와 관자요리 다 맛있다.
이어서 등장한 버섯소스 쇠고기안심스테이크.
기내식으로 늘 한식을 선호하긴 하지만 이번엔 스테이크를 사전 주문했고,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괜찮았다.
스테이크 양이 많은데 하면서도 다 먹었는데, 나중에 속탈이 난 이유였을까.
주요리까지만 먹어도 배는 그득 찼으나 후식으로 과일과 치즈, 아이스크림-또는 케이크 선택가능-에 커피가 제공되었다.
1시간에 걸친 첫번째 식사를 마친 다음 현실 그 자체인, 열린 결말이지만 주제는 다 드러난 영화 '댓글 부대'도 마무리했다.
다음에 고른 컨텐츠는 화제성 넘쳤던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그러나 이건 내가 볼 드라마가 전혀 아니다.
영상을 대충 즐겼으니 이제부터는 다리와 허리 컨디션 유지를 위하여 무조건 푹 누워줘야 한다.
이륙한 지 5시간쯤 지났을까.
승무원이 간식을 나눠주고 있고, 동시에 사방에서 라면 냄새가 강렬히 풍겨온다.
남편은 떡과 물만두가 들어간 라면 하나를 요청했고, 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한 나는 맛있는 라면을 딱 한 입만 먹은 후 다시 잠을 청했다.
비행 중 심하지 않는 난기류가 계속되자 예전과는 달리 주의를 당부하는 방송이 잦아지고 벨트 사인이 켜져있는 시간도 길다.
로마 시각으로 오후 4시, 좌석 앞쪽 갤리에서 그릇 달르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오후 4시반, 두번째 기내식이 서빙되었다.
인천 공항을 출발한 지 어느덧 9시간반이 넘어가고 있다.
두번째 기내식도 첫번처럼 사전 주문한 광어 요리인데, 이건 사전 주문을 통해서만 먹을 수 있는 식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여겼던 속은 계속 부대끼고 메슥거렸기에, 전식은 물론 주요리까지 거의 입을 댈 수 없었다.
후식은 아예 상차림조차 거절했더니 승무원이 소화제를 건네주었고 그 덕분에 위가 점차 편안해졌다.
다시 누워 속 편히 얕게 취침하는 중, 40분 후에 착륙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오후 7시반, 로마 공항 건물 내부로 향하는 탑승교가 후끈하다.
자동 입국심사를 후딱 해치웠고 캐리어도 금세 나왔으며 테르미니역 앞까지 가는 버스도 대기 없이 출발한다.
로마 숙소는 작년에 친구들과 묵었던 곳 바로 옆집-같은 호스트-이라 기차역 버스정류장에서부터는 눈감고도 갈 수 있는 위치다.
작년과는 출입 방법이 달라졌으나 시원한 아파트에 무사 도착하였고, 짐을 푼 후엔 곧장 아들과 톡을 했다.
앗, 해마다 낡아가고 있는 우리는 지금껏 유럽엘 오면서 한 번도 하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멀티플러그-'가는 3핀' 콘센트라 필수-를 챙겨오지 않았다는 사실, 다행히 이곳에 멀티플러그가 하나 있으니 일단 이걸로 쓰자고.
애정이라고는 하나없는 아니, 반목 그득한 로마에 또다시 날아왔다.
날씨마저 뜨거운데, 이번엔 로마와 잘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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