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눈이 떠졌다.
유럽 땅에 와서 몸이 시차를 따라가려면 1주일쯤 걸리기에 이 정도 이른 기상은 뭐, 그러려니 한다.
아들과 톡을 하며 그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6시도 안된 시각에 열무김치, 김, 멸치볶음, 깻잎 등으로 근사한 아침상을 차렸다.
아침 6시-위도가 낮아 여름 해가 늦게 뜸-가 되자 날이 밝아오고 6시반, 우린 테르미니역 앞 광장을 향해 숙소를 나섰다.
낮 최고기온이 36도로 예보된 날, 이른 시각이라 아직은 덥지 않다.
오늘의 첫 일정은 바티칸의 성베드로-산피에트로-대성당이다.
성베드로대성당으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은 테르미니역에서 지하철 A선을 타고 Ottaviano역에서 하차하여 이동하는 방법이지만,
오타비아노역이 폐쇄된 기간이라 테르미니역 앞 500인광장에서 64번 버스로 움직이는 방법을 택했다.
작년에 지하철 탈 때 사용했던 트래블월렛카드를 쓰지 않기로 하고, 7시에 오픈한 티켓 매표소에서 1회권 8장을 구입했다.
로마 시내버스에서도 지하철처럼 트래블월렛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로마에서 트래블월렛을 쓰기 않기로 한 것은 작년엔 인지하지 못했던 이슈 때문이다.
로마에선 대중교통에서 검표-지하철은 승차시 서울과 같은 방식인데, 왜 굳이-를 자주 한다고 하는데, 트래블월렛카드는 일반 결제시엔
바로 해당 금액이 빠져나가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엔 2-3일 후 해당일 요금이 한꺼번에 결제된다.
정상적으로 카드를 찍고 승차하더라도 검표원에게 무임승차가 아님을 증명하기가 불가능하기에 대중교통에서 카드는 사용하지 않았다.
7시 살짝 넘은 시각인데도 맨앞에 대기 중인 64번 버스엔 승객이 가득하다.
잠시 기다려 다음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오래된 도시의 좁은 도로를 지체없이 마구 달린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뜨거운 기운 퍼지는 성베드로 광장에 도착하니 7시반즈음인데도 입장줄이 예상보다 길다.
보안 검색을 지나 들어선 성베드로대성당. 작년-5월 아침8시-엔 줄이 엄청 길었기에 입장을 포기했던 이곳엔 나도 4년반만이다.
사도 베드로는 네로황제 재위 말기인 64년 로마대화재가 발생했을 때 체포되어 순교했다.
349년 베드로 무덤 위에 옛 배드로성당이 지어지고 1505년 공모전을 통해 브라만테의 새 성베드로대성당 설계안이 채택된다.
고령의 미켈란젤로는 1546년부터는 18년간 대성당 건축에 전념하고 중앙 쿠폴라는 그의 설계대로 1590년에 완성된다.
이후 성당은 그리스십자가형-내부 가로세로길이 동일-에서 라틴십자가형-세로가 더 긺-으로 설계가 수정되고 현재의 대성당 파사드는
1614년에 완공되었다.
본격적으로 대성당에 들기 전, 성당 현관격인 길이 71m, 높이 20m의 나르텍스부터 압권이다.
나르텍스 중앙 입구 바로 위엔 조토 디 본도네의 반원형 모자이크인 '나비첼라'가 있다.
작은 배를 의미하는 '나비첼라'는 물 위를 걷는 예수 이야기를 표현했고 원래는 직사각형이었다고 한다.
나르텍스 오른쪽에 자리한, 대성당과 바티칸궁을 연결하는 계단인 스칼라 레지아는 16세기 건립 후 17세기에 베르니니가 리모델링했고,
역시 베르니니가 제작한 '콘스탄티누스의 계시'라는 조각상도 계단 입구에 있다고 하는데, 공사 중인지 다 막아버려 초입조차 볼 수 없다.
내년이 카톨릭 희년이라 베드로대성당뿐 아니라 로마가 온통 공사판이어서 이번 여행에서 제대로 못본 건축물과 그림이 많다.
성서에 등장하는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번 지난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로, 은혜의 해이자 자유의 해다.
1470년 교황 바오로 2세는 25년마다 희년을 개최한다고 선언했으며, 그후부터는 25년마다 희년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정기희년 외에 교황의 특지로 선포하는 특별희년이 있는데, 2015년 2차 바티칸공의회 50주년을 기념해 선포한 희년이 그것이다.
나르텍스에서 대성당으로 향하는 문은 5개로, 왼쪽부터 죽음의 문, 선악의 문, 필라레테의 문, 성사의 문, 성년의 문이라 칭한다.
중심에 자리한 정문인 필라레테의 문은 유일하게 옛 베드로대성당에서부터 있었던 문으로, 교황의 대미사 때에만 열린다.
필라레테 문의 상단엔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 가운데엔 바오로와 베드로, 하단엔 끌려가는 베드로와 베드로의 순교를 새겼다.
맨 오른편에 있는 성년의 문은 희년에만 1년간 열리는 문으로, 16개의 찬란한 금빛 패널에 16가지 성서이야기를 부조해 놓았다.
일반 입장객은 대성당에 성사의 문-4번째-으로 들어가서 선악의 문-2번째-으로 나온다.
대성당 입구 가운데 바닥에 있는 원형의 붉은 대리석 위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거대하고 화려한 대성당 중앙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근데 베드로 무덤 위에 세워진 천개인 발다키노는 어디 있지. 베르니니가 만든 발다키노는 최상부만 보일 뿐 휘장에 폭 싸여있다.
오른쪽 네번째 기둥 아래에 자리한, 천국의 열쇠를 든 베드로 청동상이라도 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성베드로 축일인 6월 29일엔 이 청동상에 금실로 수놓은 제의를 입혀 예식을 진행한다고 한다.
대성당 중앙 안쪽에서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지름 42m, 높이 120m의 쿠폴라를 만날 수 있다.
쿠폴라 아래쪽엔 16개의 창문이 설치되어 있고 창문 바로 위 반원형 프레임엔 대성당에 안장된 16명 교황의 초상화를, 그 윗부분엔
성모와 그리스도, 성요셉과 세례요한 그리고 12사도를 그려넣었다.
쿠폴라를 받치는 드럼 둘레에는 거대한 글자가 쓰여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 베드로를 후계자-초대 교황-로 삼는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는 마태복음의 라틴어 구절이다.
또한 쿠폴라와 기둥을 연결하는 스펜드럴에는 4명의 복음사가를 표현한 원형 모자이크가 있다.
신랑-네이브, 신자석-의 끝에 자리한 앱스-후진-는 베르니니가 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몽땅 공사 중인데다가 입장과 통행마저 제한되어 있어서 근처에 갈 수도 없다.
성베드로의 의자는 철제 기둥들로 완벽히 가려져 있고 그 위쪽의 황금빛 퍼지는 글로리아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대성당 중앙엔 카톨릭 성인들의 대형 조각상들이 많은데 그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상징물과 함께 있다.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자신의 형틀이었던 X자형 십자가를 부여잡고 있고,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베일-수건-로 그리스도 얼굴의 땀을 닦아준 베로니카는 그리스도 얼굴이 찍혀있는 바로 그 베일을 휘날리고 있다.
베로니카의 베일은 '십자가의 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6처-으로, 드라마틱하고 허구적인 요소를 모조리 갖춘 단계다.
훗날 크리스트교로 개종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로마 병사 롱기누스는 바로 그 긴 창을 들고 있다.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대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꿈속에서 십자가를 본 후 326년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난다.
그녀는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못박혔던 십자가를 찾아내고 십자가와 못 등은 17세기가 되어 성베드로성당으로 옮겨온다.
십자가, 베로니카의 베일, 롱기누스의 창은 성베로니카 조각상의 벽감에 보관되어있으며 이 성물들은 사순절 5번째 일요일에 공개된다.
대성당의 오른쪽과 왼쪽 익랑-십자가 가로 날개-마다 자리한 채플과 제대, 작품들도 대단하기 이를데없다.
오른쪽 익랑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그레고리오 채플과 대천사 성미카엘 제대, 성히에로니무스 제대, 나비첼라 제대 등이 있다.
성히에로니무스 제대화는 성히에로니무스가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제자들을 불러 마지막 영성체를 받는 모습을 표현했다.
1612년에 도메니키노가 그린 원작을 1744년 모자이크로 만들었으며 원작은 바티칸박물관에 소장되어다.
나비첼라 제대화는 1727년에 모자이크로 제작한 것이다.
사도들이 탄 배가 호수에서 풍랑에 휩싸여 사도들이 불안해하자 예수가 물 위를 걷는 기적으로 배에 다가가고, 베드로가 자기도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해 달라 하여 물 위를 걷다가 물에 빠지자 예수는 베드로의 믿음이 약함을 꾸짖는 장면을 표현했다.
왼쪽 익랑과 채플에는 교황 알렉산데르7세 기념무덤, 기둥의 성모마리아 제대, 성베드로 십자가형 제대, 성요셉 제대, 변용 제대 등이 있다.
베르니니의 마지막 걸작품에서 알렉산데르7세는 정의, 신중, 자비, 진실의 알레고리 조각상에 둘러싸여 평화로운 기도를 올리고 있다.
기둥의 성모마리아 채플엔 옛 베드로성당 신랑의 원기둥 위에 그려져 있던 성모마리아 제대화가 있다.
'교회의 어머니'-마테르 에끌레시아-라 명명하였고 1981년 모자이크화를 복제하여 성베드로 광장에서 잘 보이는 사도궁 외벽에 설치했다.
성베드로 십자가형 제대가 있는 채플은 사도 베드로가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칼리굴라경기장이었던 곳이며 베드로가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이야기를 그린 모자이크 제대화의 원작인 귀도레니의 작품은 바티칸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성요셉이 아기예수를 안고 있고 천사들이 경배하는 모습을 표현한 성요셉 제대화 아래에는 사도 시몬과 유다타대오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 좀 어수선하고 미사 중이거나 출입 금지인 경당도 꽤 있어서 아쉽다.
라파엘로의 원작을 모자이크화로 제작한 그리스도의 변용 제대 앞을 지나면 대성당 출입문 근처 측랑이다.
그리스도의 세례 그림 아래서 세례반을 세척 중인 채플과 복원공사 중인 맞은편 피에타 채플을 지나 대성당을 빠져나왔다.
대성당을 나오니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입장줄이 길다.
푸른 하늘 아래 꽤 뜨거워진 아침 9시, 그늘은 아직 덥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대성당 파사드가 잘 보이는 광장에 서니 성당 앞 좌우에 배치된 베드로 조각상과 바오로 조각상에 다 휘장을 둘러놓았다.
건축가이자 바로크 최고의 조각가 베르니니는 1656년부터 1667년까지 성베드로광장을 설계 건립했다.
대성당은 그리스도의 몸, 양쪽 회랑은 그리스도의 양팔을 뜻하며 이곳에 오는 이들을 하느님의 집으로 초대하는 의미를 담았다.
오벨리스크 주변을 둘러싼, 타원형의 흰 대리석 표지석들은 각 방향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양쪽 회랑 위에는 140개의 대리석상-성인과 교황-이 있고 300개가 넘는 기둥들-16m-이 4개 열을 이루고 있다.
회랑 앞 두 분수 근처 바닥에는 원형 표지석이 있는데, 이곳에 서서 회랑을 바라보면 기둥들이 겹쳐져 완벽히 1개 열로 보인다.
높이 25m에, 무려 320톤에 달하는 오벨리스크는 칼리굴라경기장을 장식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운반해왔다고 한다.
옛 베드로성당을 세우면서 경기장은 철거되었으나 오벨리스크는 계속 그곳에 남아있었고 1586년 대성당 앞으로 옮겨왔다.
기원전 2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오벨리스크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지 않다.
대성당 파사드를 바라보면서 광장에 서면 대성당 오른편에 사도 궁전이 있다.
그 외벽에 옛 베드로성당 원기둥에 있었던, 지금은 대성당 '기둥의 성모마리아' 제대화인 마테르 에클레시아-교회의 어머니-
복제 모자이크가 평화로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9시반도 안된 시각, 대성당을 나와 잠시 머무른 광장에 불볕이 예상보다 빨리 쏟아지고 있다.
오늘 남은 일정은 몇몇 성당에 들른 후 정오쯤 식사를 한 다음 숙소로 갈 예정인데, 벌써 정말 걱정스러운 기온이다.
이제 우린 테베레강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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