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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4 로마·피렌체·볼차노·빈

8월 25일 (일) : 산타막달레나 가는 걸음

새벽 3시, 골목에서 울리는 고성에 잠이 깼다. 같은 상황이 3일째 반복되고 있다.

오늘은 볼차노 기온이 34도-헉-로 예보된 날, 아침을 챙겨먹고 오전 7시 40분, 볼차노역으로 간다.

 

브레사노네 기차역
붉은선 : 그제와 어제 갔던 오르티세이&소프라볼차노,클로벤슈타인

오늘은 볼차노 근교의 브레사노네 Bresanone와 산타막달레나 Santa Magdalena로 움직인다.

우리는 오전 8시 2분에 떠나는 브레사노네행 Regionale-지역열차-에 탑승했는데, 볼차노 근교 지역열차는 물론

근교 동네의 버스도 볼차노카드로 무료 탑승이 가능하다.

 

오전 8시 35분, 브레사노네역에 도착했고, 이곳에 온 첫째 이유는 산타막달레나로 가는 경유지이기 때문이다.

브레사노네에서 산타막달레나 가는 버스의 배차는 1시간에 1대이고 우리가 기차역에 도착하기 1~2분 전에 떠나버렸으니

다음 버스까지는 약 1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성 게오르기우스(성 조지)
Perif성

원래 계획대로라면 브레사노네에서 산타막달레나를 오가면서 시간을 내어 브레사노네 구시가도 둘러볼 예정이었으나

1km 거리의 구시가까지 걷기엔 가깝지 않았고 버스로 오가기엔 배차가 원활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산타막달레나에서는 긴 산책(?)이 예정되어 있어서 더운 날씨에 미리부터 힘을 뺄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기차역 주변 둘러보기. 

오, 근데, 역 근처 주택가에 Perif성이라 쓰인 이정표가 있다.

성 게오르기우스가 지키고 있는 작은 건축물, 형태는 성처럼 생겼으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산타막달레나 초입의 물길
산타막달레나

운행시각표상 오전 9시 34분에 브레사노네를 출발해야 하는 330번 버스는 5분 이상 연착했고 그만큼 늦게 출발했다.

브레사노네를 떠난 버스는 산으로 산으로 거칠고 사납게 달렸고, 거센 운행은 St.Magdalena Filler 정류장에서 30분 만에 멈췄다.

버스정류장 뒤편으로 초록초록하게 펼쳐진 이 동네, 초입부터 형언할 수 없이 정말 예쁘다.

 

산타막달레나

마을 어귀에서부터 산타막달레나 뷰포인트까지는 1.4km.

우린 그저 구글맵 따라 그리고 놓여진 길 따라 멋진 풍경을 기분 좋게 즐기면서 천천히 가기만 하면 된다.

산마루나 능선이 약간 흐린 곳도 있고 때로 구름 뭉텅이도 떠다녔으나 산타막달레나의 하늘은 대체로 푸르다.

 

산타막달레나

그러나 11시도 안된 시각인데 여기 너무 뜨겁다.

초원을 가르는 길이라 그늘도 거의 없고, 간혹 놓여있는 벤치도 땡볕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 핫한 곳에 있다.

너무나 환상적이고 멋진 곳인데, 이탈리아 한복판 도시도 아닌 돌로미티의 8월말 날씨가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산타막달레나 뷰포인트

뜨거움 속에서도 뷰포인트로 가는 사람들이 우리 말고도 많다.

타오르는 태양을 이고 지고 가는 길, 고지가 얼마 남지 않은 듯했지만 진짜 뷰포인트는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했다.

운동화는 신었으나 복장 불량-원피스-인 나는 낙상 염려에, 뷰포인트 꼭대기까지는 가지 않고 정상 직전 비탈에서

산타막달레나의 정경을 맞이했다.

 

아,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아침 역광에, 능선의 뿌연 기운까지 더해져 기대했던 풍경이 펼쳐지지 않았다.

 

산타막달레나

산타막달레나의 결정적 경관은 기대에 못 미쳤으나 왕복 산책길에 만난 동네 경치는 모두 근사했다.

오후라면 뷰포인트 정경이 제대로 나올까. 아니, 이 날씨에 오후 도보는 애초에 불가능하기에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산타막달레나

나무가 만들어준 가냘픈 그늘에 서서(!) 준비해온 크루아상과 도넛을 먹었다.

오가는 길에 음식점이나 카페가 아예 없다는 정보에 따라 챙겨온 것인데, 완전 탁월한 준비였다.

한참을 또 걸어 다시 버스를 타야 할 시간, 11시 50분에 산타막달레나를 출발한 버스는 12시 20분, 브레사노네에 다다랐다.

 

산타막달레나 버스정류장 앞
산타막달레나에서 브레사노네 가는 330번 버스

브레사노네역에서 볼차노로 가는 기차는 또 좀전에 떠나버렸다.

뭐 그렇다면 다음 기차 승차까지 남은 여유 시간은 역 앞 카페에서 쉬어주면 된다.

브레사노네 구시가를 가지 않은 아쉬움이 있으나 그곳에 갈 체력이 우리에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캬페 야외 자리에서 파인애플주스와 콜라를 주문하며 얼음을 요청했더니, 감사하게도 얼음을 컵에 가득 가져다 주었다.

 

브레사노네 기차역 앞 카페

일요일 오후 1시 25분, 볼차노행 열차에 승객이 가득하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간식을 먹고 야구 하이라이트를 시청한 후 남편은 짧은 낮잠을, 난 깊은 휴식을 취했다.

 

볼차노대성당
볼차노 구시가

뜨거운 온기가 조금 가라앉은 오후 6시, 마지막 볼차노 탐방에 나섰다.

숙소에서 1.2km 거리인 Castel Mareccio까지 가는 버스가 일요일에도 운행했으면 1~2시간 더 일찍 나왔을텐데

기진해서 시도조차 못한 그제보다는 낫지만 오늘도 걸어갈 여력까진 없으니 포기해야 한다.

 

볼차노 구시가

한낮보다 기온은 좀 내렸으나 여전히 볼차노는 더웠다.

자전거가 질주하고 전동킥보드가 인도를 오르내리던 정신없는 모습들은 온데간데없이, 한적하고 차분한 일요일 저녁이다.

너무나 예쁘고 산뜻한 거리를 찬찬히 다녀보니 잘츠부르크나 인스브루크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볼차노 구시가
무염시태 & 두 언어의 병기

구시가 건물의 벽면엔 무염시태-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 12개별 왕관과 발아래 초승달-조형물과 두 언어가 나란히 이웃이다.

오후 7시 10분,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빗방울이 떨어져 피자 포장은 단념한 채 숙소로 후딱 들어갔더니, 이내 강한 비바람이 휘몰아친다.

 

라자냐를 굽고 모차렐라와 올리브를 저녁 탁자에 올렸다.

어느 새 비가 그치고 바람이 멎자 저녁 대기는 아주 서늘해졌다.

심야나 새벽의 고성이 없기를 바라는 볼차노에서의 마지막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