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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4 로마·피렌체·볼차노·빈

8월 27일 (화) : 빈의 구시가 성당

빌헬름넨베르크궁전 호텔

어제 이른 취침 덕분인지 오전 5시, 눈이 떠졌다.

이미 깨어있던 남편이 새삼 일출을 보러 호텔 정원으로 나간다기에 5시반, 따라나섰다.

근처 주민들도 자주 드나드는 듯한 호텔 정원에는 바지런한 강아지-보고 싶은 우리 막내-들이 벌써 산책 중이다.

서늘한 아침, 여름 해는 힘차게 올라오고 있었으나 구름 떼가 많아 일출 관람은 실패다.

 

빌헬름넨베르크궁전 호텔 조식당
빌헬름넨베르크궁전 호텔 조식당
빌헬름넨베르크궁전 호텔 조식

오전 7시반, 테라스석도 마련되어있는 호텔 조식당에 인기척이 크다.

호텔 내에 숙박객이 많아보이지 않았는데, 조식당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딱 훈제연어만 없을 뿐 메뉴가 다양하게 구비되어있고 치즈, 과일, 빵, 절임, 볶음 등 대체로 모두 맛있었다.

객실로 돌아오는 도중에 본, 0층 복도에 문이 열려있는 작은 공간 앞엔 도서관이라 쓰여 있다. 

 

호텔 도서관
호텔 리셉션과 로비
오스트리아국영방송 ORF

호텔 객실에서 TV를 켜니 오스트리아방송 ORF에서 근사한 경치를 곁들여 실시간 날씨를 알려주고 있다. 

오전 9시 40분,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말끔한 차림의 40대 백인남자와 10살쯤 된 남자아이와 강아지 푸들을 만났다.

서울 집에서 아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막내 생각에, 푸들에게 사랑스러운 눈길을 주면서 단순한 인사를 주고받았는데

호텔 주차장에서, 체크아웃 후 떠나는 그들이 오른 말짱한 차량의 번호판은 뜻밖에도 우크라이나 번호판이었다.

이후 영세 중립국인 오스트리아 빈 시내에서 우린 우크라이나 번호판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빈 16구에 위치한 빌헬름넨베르크슐로스 호텔에서 구시가로 가려면 버스를 먼저 탄 후 지하철로 움직여야 한다. 

호텔 바로 앞엔 버스정류장이 있고 46A,46B가 지하철역인 U3 오타크링까지 비교적 자주 운행하기에 귀찮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U3 헤렌가쎄에 하차하여 미노리텐성당으로 가는 중, 그 앞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경찰견의 공개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우리 앞쪽에 앉아있는 꼬마들이 집중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눈을 뗄 수가 없다. 

 

Minoritenkirche

미노리텐성당 Minoritenkirche은 13세기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또는 그들을 위해 건립된 고딕 양식의 이탈리안 성당으로,

내부에는 성프란체스코를 그린 회화가 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복제한 그림도 있다.

수없이 와본 곳이지만 또다시 찾아온 곳, 성당 앞 게시판의 공지사항은 이탈리아어와 독일어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성미카엘성당 페디먼트 위의 미카엘대천사
St. Michael 성미카엘성당 : 섭리의 눈과 미카엘대천사

왕궁 앞 미카엘러플라츠가 온통 뒤집어져 있다.

고대 로마 유적터가 있던 곳인데 추가 발굴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덮어버리려는건가.

 

광장에 위치한 성미카엘성당은 13세기초 후기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고 출입문 위엔 악천사와 싸우는 미카엘대천사 조각상이 있다.

내부 중앙 제대엔 섭리의 눈-세상을 보는 눈과 뻗어나간 선, 삼각형은 삼위일체-아래 악마와 싸우며 열일하는 미카엘대천사를 조각했다.

성당 앞 어수선함에 비해 성당 안은 너무나 평화롭다.

 

Augustinerkirche

발길을 옮겨 다다른 곳은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과 같은 건물에 자리한 아우구스티누스성당Augustinerkirche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서 1327년에 설립한 이곳 지하에는 합스부르크 가문 일원의 심장항아리와 심장이 있다고 한다.

이 성당은 이름은 많이 들었으나 처음 와 본 곳이다.

 

오르간 앞 실내악단
안토니오 카노바 : 마리아테레지아의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 묘
안토니오 카노바 : 마리아 크리스티나 묘

성당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내부가 화려하면서도 깔끔했다.

그런데 입장하는 순간 뒤편 오르간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음악이라니, 성당을 거니는 내내 수준 높은 실내악이 연주되었다.

오른쪽 측랑에는 이탈리아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가 장식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묘가 있는데,

죽음의 강을 건너는 인물들 또는 누군가를 저승으로 보내야 하는 생명체들의 비통한 표정과 몸짓이 절절하게 표현되었다. 

 

Domkirche St. Stephan
성슈테판성당 : 오른쪽 설교대 부조는 서방교회 4대 교부

구시가의 중심 슈테판플라츠 앞에 자리해 있어 늘 시민과 여행객으로 붐비는 성슈테판 성당으로 걸음을 옮긴다.

슈테판-스테판-은 투석으로 순교한 카톨릭 최초의 순교자로, 성슈테판 성당은 12세기에 건립된 대주교성당이다.

설교대엔 서방교회 4대 교부인 성암브로시우스, 성아우구스티누스, 성에로니무스, 성그레고리우스1세가 부조되어 있는데,

신랑에선 미사가 진행 중이니 조용히 둘러보고 후딱 나가야겠다.

 

성세바스티아누스
고딕양식의 천장 : 확장된 리브볼트

벽면 한쪽에선 성세바스티아누스가 온몸으로 화살을 맞고 있고 올려다본 성당 천장은 영락없는 고딕이다.

이제 밖으로 나가 슈테판성당 외관을 천천히 둘러보기로 한다. 

 

가고일 : 작은 첨탑 옆
그리스도의 부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성당 뒤편 창문 위 작은 첨탑 옆에는 저승세계에 존재하는 가고일이 올라가 있다.

가고일은 죄를 지으면 가고일 있는 지옥으로 간다는 경계로 삼기도 했고 현실에선 악령을 퇴치해주는 존재로 여기기도 했다.

성당 외벽에선 겟세마네동산에서의 기도, 부활 등 예수 생애의 주요 사건을 다룬 부조를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Ebi1

오후 1시, 빈에 여러 지점이 있는 초밥 뷔페 Ebi1-1구-에 입장했다.

원래 1구 아닌 현지인들 가는 곳으로 예약하려 했으나 하루 전에도 평일 런치가 예약마감이라 차선으로 1구 에비를 예약하였다.  

이곳은 테블릿으로 주문하면 직접 가져다주는 시스템으로, 음식 나오는 속도가 늦다보니 늘 가던 프라터 회전초밥식당보다는 불편했다.

그래도 초밥, 튀김류는 물론 과일, 아이스크림까지 꿋꿋하게 다 먹었는데 가성비 있는 초밥식당으로 나쁘지 않았다.

 

최신형 트램
Ruprechtskirche

뜻하지 않게 구시가에서 성지 순례 아니 성당 순례를 하고 있다.

오늘 갈 마지막 성당은 빈에서 가장 오래된 루프레히트성당Ruprechtskirche이라, 트램을 타고 슈베덴플라츠로 이동했다.

 

그런데 빈 시내에 구형 트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작년 봄, 친구들과 빈에 왔을 땐 분명히 구형 트램이 꽤 남아있었고 또한 최신형 트램도 약간 도입되어 있어서, 불편하지만 낭만적인

구형 트램과 편리하고 실용적인 신형, 최신형 트램 이렇게 3종이 시내를 활보했었다.

이제 영화 '비포선라이즈'에 등장했던 구형 트램은 빈 시내에서 전혀 운행을 하지 않는 건지, 빈에 머물던 2주동안 볼 수 없었다.

 

Ruprechtskirche

8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루프레히트성당Ruprechtskirche은 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성당 첨탑엔 횡선이 2개 있는 대주교 십자가가 있고 아치 형태의 출입문 옆 벽면엔 예루살렘 십자가가 새겨져 걸려있다.

예루살렘 십자가문장은 1차 십자군전쟁에서 이슬람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점령한 십자군이 1099년에 세운 예루살렘왕국을 상징한다. 

우리는 처음 방문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유서 깊은 성당을 찾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다시 트램을 타고 칼스플라츠에 내려 구시가 최중심이다.

국립오페라하우스를 지나고 캐른트너 거리를 걸어 H&M에 들렀고 남편 티셔츠 2개를 구입했다.

 

오페라하우스
캐른트너 거리

오후 4시반,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약간 더운 객실, 아주 긴 타워형 선풍기를 작동시키니 매우 시원하다.

오후 6시반, 컵라면-남편만-과 포도, 쿠키로 저녁을 채운 후 정원을 산책한 다음 내일 일정을 의논했다.

 

비몽사몽하던 오후 9시반, 객실 열린 창으로 갑자기 말벌이 들어왔다.

20분 동안 말벌과 사투를 벌였고 결국 피렌체에서 사용했던 모기 기피제로 말벌을 혼수상태로 만들었다.

빈에서의 하루가 또 이렇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