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집을 지키는 토요일 저녁이다.
남편은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앞집 아저씨와 함께 가출한 지 오래.
오늘은 아침부터 작심하고 안방 침대 위의 이불을 걷어냈다. 어제 Laa에서 새로 산 이불 커버로 바꾸기 위해서다.
이 나라에서 판매되는 이불 커버나 이불 속통(이불 솜)은 거의가 1인용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더블사이즈의 커버와 솜은 흔하지 않다. 새로 산 커버도 1인용 커버 두 개.
짙은 남색 커버와 오리털 속통을 들어내고 가벼운 커버와 속통을 덮어놓으니 꽤 여름 느낌이 난다.
오후부터 내리던 비가 아직도 떨어진다.
낮엔 1-2시간이면 제 역할을 다하던 비가 오늘은 지치도록 계속된다.
잠시 잊었던 우리나라 정서를 돋워내기 위한 것인지. 지금 쏟는 비는 꼭 우리나라 여름 장마 같다.
같은 줄기가 내리다가 어느 순간 장대가 되고, 그 시간이 지나면 또 같은 흐름이다. 그 흐름은 영원처럼 이어진다.
오늘 같은 날. 비 쏟아지는 창에 기대어 환히 웃음짓던 예쁜 아이들이 생각난다.
맛있는 해물파전이 아른거리고 더 맛있는 동동주가 기억되고 또 그 자리를 함께 지키던 좋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어느 새 빗줄기가 차분해졌다.
오스트리아도, 내 마음도 지금이 환절기인가 보다.
여름 채비를 해야겠다. 집도, 추억도 그리고 마음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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