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마지막 날.
지난 주 폭염이 미안했던지 오늘 오스트리아 날씨는 완전 정상이다.
지금은 다 회사와 학교에서 각자 임무에 충실한 평일 오전, 나 혼자 평화로운 때다.
방금 찍은 마당 사진엔 바람이 잔뜩 묻어있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한 채, 정원 나무 사이로 보이는 좁은 도로가 희미하다.
어제 일이다.
저녁 식사 후 두 남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시각에 어디 갈 데도 없는데.
한참 뒤 돌아온 남자들 손엔 마을 거리에 핀 꽃이 들려 있었다.
"엄마를 위해 준비했어요"라는 기호.
유리컵에 꽂아 부엌 창가에 놓으니 쓸만한 분위기이다.
그런 뒤, 남편은 클림트 그림을 넣어둔 액자를,
오늘은 결단코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기호에게 망치를 구해오라는 특명을 준다.
재주 좋게 망치를 챙겨온 기호.
그림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나보다. 벽에 빛이 난다.
5월이 간다.
시간이 가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참 좋겠다.
어제 꽃을 안겨주던 두 남자의 마음.
세월이 흘러 그 마음이 돌아서더라도 그 순간의 기억만은 그대로겠지.
아직도 여기저기에는 바람이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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